영화 <지니어스 Genius>
친구들과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한 친구에게 “그것도 못하냐?”라고 하면, 그 친구는 “야, 그럼 네가 해봐”라며 반발한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런 대화는 운동 혹은 게임을 할 때도 이어진다. “거기서 그걸 못 넣냐?” “그럼 네가 해봐” “거기서 그렇게 하니까 지는 거야” “그럼 네가 해봐”
어릴 적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와는 다르게 사회적 현실에서는 이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축구감독은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기도 하고 때론 질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선수도 감독에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지시인 줄 아느냐, 네가 해봐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수와 감독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감독과 배우, 평론가와 작품 등과 같은 관계다.
편집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은 누가 만드는가. 작가? 출판사? 편집자? 창의적인 글과 작가를 선택하고, 독자가 읽기 좋게 편집하는 '편집자'라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온전히 작가가 받는다. 영화 <지니어스>는 독특한 생각과 문체를 가진 작가와 당대 최고의 문학가들을 담당한 편집자가 만나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다.
영미 문학의 황금기였던 1929년,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문학가들을 담당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에게 어느 날 무명작가의 방대한 양의 원고가 배달된다. 그는 ‘토마스 울프(주드 로)’가 쓴 그 원고를 접하고 천재성을 알아본다. (그 작품은 훗날 불멸의 작품으로 20세기 미국 교과서에 수록된 ‘천사여, 고향을 보라(Look Homeward, Angel)’의 오리지널 원고다.)
맥스는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토마스에게 출판을 제안한다. 천재적인 작가를 만난 맥스와 자신을 알아주는 편집자를 만난 토마스는 문학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탐색하며 즐거워한다.
한편, 자신의 무명생활을 지지해준 연인 ‘번스타인 부인(니콜 키드먼)’과 토마스의 관계는 작품의 성공과 함께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제 글은
푼돈도 안 된다고 했죠
영화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어느 한쪽도 홀로 일어설 수 없는, 공조해야만 하는 관계다. 맥스가 알아보지 못했다면 토마스의 작품이 그 시대에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독특한 문체로 대부분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그의 작품은 안목 있는 편집자에 의해 ‘이상한’에서 ‘천재적’으로 수식어를 바꿔 달게 된다.
좋은 글을 알아보는 편집자 ‘맥스’는 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쉽게 답하는 방법은 다른 분야의 예를 드는 것이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왜 송강호 같은 배우가 되지 못하는가. 축구감독 히딩크는 왜 박지성 같은 선수가 되지 못했는가. 이상하다.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니까. 그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니까. 글 쓰는 능력도 다르지 않다. 창의적인 생각과 글을 통해 만들어진 작가는 운동 능력과 그에 따른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축구 선수와 다르지 않다. 연기도 그렇다.
좋은 글을 알아보는 사람이
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가
그럼에도 ‘좋은 글을 알아보는 사람이 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글을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년시절 글자를 쓸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글을 쓴다. 학교에서 글짓기를 하고, 직장에서 보고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 막 가족 혹은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도 일종의 글이다.
누구나 글을 쓰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 쓰는 일을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 글 쓰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JTBC 예능프로그램 <잡스> ‘평론가 편’에 출연한 평론가들도 이에 동의하는 표현으로 ‘글로 먹고사는 것의 고단함’을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일'을 가치 있는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특히 대중음악평론가 중 가장 유명한 임진모 평론가는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편집자 맥스와 작가 토마스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된다. 맥스는 편집은 하지만 창작은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문장은 걷어내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표현을 추가하진 않는다. 토마스 또한 편집자의 역할을 존중한다. 창의적인 문장을 썼지만 거절당했을 때, 편집자의 판단을 존중해 새로운 문장을 고민한다. 두 번째 장편소설 ‘때와 흐름에 관하여(of time and the river)’을 완성했을 때 편집자 맥스는 작가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언제나 두렵소.
당신의 책을 망친 건 아닌지
애초의 뜻을 훼손시킨 것은 아닌지
완성된 소설은 누가 만든 것인가. 한 편의 영화는 감독이 만든 것인가. 축구 경기는 감독이 승리로 이끄는가. 많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한 영화로 상을 받게 되면 함께한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리고, 많은 축구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뛴 동료와 코치진들의 수고를 언급한다. 좋은 나라를 만든 것이 대통령만의 업적이 아니듯이 성공한 소설 또한 작가만의 승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토마스 울프는 죽기 전 편집자 맥스에게 편지를 남긴다. 편지를 통해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가 만나 인생의 보트를
함께 밀며, 함께 정상을 정복한
그 나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