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백구 Feb 25. 2017

치명적 상처는 더 깊이 도려내야한다.

<맨체스터바이더씨 ManchesterBy theSea>

‘리’(케이시 애플렉)는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형 ‘조’(카일 챈들러)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고향인 ‘멘체스터 바이 더 씨’에 왔다.

형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인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목했다. 리는 조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혼란스럽다. 그는 조카와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조카 ‘패트릭’은 강하게 반대한다. 이 과정에서 리는 고향에 머무르며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게 된다.  
<갱스 오브 뉴욕><유캔 카운트 온 미>의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5년 만에 연출자로 돌아온 영화다. 런던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서 선을 보이자마자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번 영화로 케이시 애플렉은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에섹스 카운티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다. 제작진은 6주에 걸친 조사 끝에 영화의 각본과 가장 어울리는 공간을 발견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영화의 제목으로도 연결된다.

단어와 문장을 읽기만 해도
얼마나 완벽히 잘 짜인 스토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맷 데이먼은 로너건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 영화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이 영화를 직접 연출하고 출연하려 했지만, 스케줄 문제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영화의 캐릭터들의 경험이 내 일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소개했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처를 간직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 장소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는 과거의 공간이자, 피할 수 없는 현재의 공간이기도 하다.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지만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치명적인 상처일수록 더 깊이 도려내야 한다. 이 영화는 그 상처를 도려내지 고 외면하며 지내온 한 남자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형의 죽음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왜 고향을 떠났을까. 형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리는 문득문득 과거가 떠오른다. 이때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의 과거를 소개한다. 고향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를 고향에서 떠나게 했다. 그 일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영화 중반부에 이 사건이 소개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리의 거친 말투와 행동에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영화 후반부에 반전의 요소로 편집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터 리의 정신적 상처에 더 집중하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소개를 중반부에 위치시켰다.

(*플래시백 Flashback : 현재 시제로 진행하는 영화에서 추억이나 회상 등 과거에 일어난 일을 나타내는 기법)


형의 죽음, 상처의 공간,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등 영화 속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은 무엇 하나 위로해주는 것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 리는 자신의 감정을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마치 일상인 듯이 행동한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온 몸의 상처가 일상적으로 느껴져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없게 한다.


상처의 공간에 집중해보자. 리에게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그곳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그 상처가 만들어진 곳에 다시 가는 것은 그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 어쩌면 후벼 파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없다. 형의 죽음 때문이다. 조카의 후견인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왔다가는 것이 아니라 꽤나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다. 리에게는 상처를 후벼 파는 정도가 아니라 다리 한쪽을 잘라내는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의 정점은 그의 전처 랜디(미셀 윌리엄스)의 전화와 만남이다. 내내 담담했던 리는 영화가 결말에 도달했을 때 그는 그제야 견디기 힘들었던 아픔의 감정을 드러낸다.


I can’t beat it...
I can't beat it...
(못 버티겠어...)



그렇다고 이야기가 내내 힘겹게 기어가는 것은 아니다. 조카 패트릭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지만, 여전히 자신의 열정을 록 밴드 활동에 쏟고 두 명의 여자 친구(?)와의 섹스를 위해 삼촌을 동원하기까지 한다. 조카와 삼촌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유머러스하게 담겨 영화 전반에 깔린 무거움을 상쇄시킨다.


가족의 죽음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몸 마저 무거워서는 생활을 할 수 없다. 남겨진 사람들의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어야 하고, 유산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며, 조카의 성생활을 위해 콘돔을 챙겨주면서 틈틈이 좋아하는 NBA 팀의 경기 중계방송도 봐야 한다. 오늘 아무리 힘든 일이 나를 짓눌러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말했다.


당신이 고통스러워해도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제목 사진 출처 : http://redcarpetrefs.com/, 나머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이전 16화 몇 대 맞아야 훌륭해질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