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을 허무는 건,
파도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것은 바닷가 건축법으로부터 유래했다
그곳에선 터를 파헤치고
바닥의 골조를 끌어모아 세운 집은 모두 불법이었다
수북이 성채를 쌓아 올리는 순간
다시 모래알로 산산이 흩어놓았다
있는 그대로의 터를 자재로 사용해야 허가가 떨어졌다
조개 건축사무소가 지은 작품집들을 보라
해변에 작은 숨구멍만으로도
수천 세대의 집들을 모래에 짓는다
반지하 보다 지하에 설계되었지만
더없이 실용적이었다
구불구불 기형학적이면서도
오손도손 살비비며 살아가기에
이상적인 공간구조와 인테리어 배치였다
집채만 한 나무를 태풍이 뽑아가는 날에도
집집마다 성탄절 전구를 켠 트리처럼 평온했다
갯지렁이들은 내년 집값을 염려하지 않았고
농게들은 투기에 동참할 집게를 들 필요도 없었다
똘똘한 한 채는 이곳에선 전혀 똘똘하지 않았다
전망 좋은 집을 누구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매일 거실에서 보는 풍경은 걸어둔 죽은 액자 같기에
석양이 물드는 황금빛 저녁 바다만큼은
집 밖에 산책 나와 구경하고는 했다
집으로 간 밤바다 소라 경비소장이 순찰을 돈다
갑자기 조개의 집을 짓고 싶어졌다
거기 파묻혀 살아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