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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차 Jan 08. 2022

유니폼은 왜

집안에서 만보 걷기


  야구복은 어째서 하얀색일까. 정기적으로 의문에 휩싸인다. 특히 남편과 둘째가 야구를 하고 돌아오는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그렇다.

  격전 끝에 승리한 날에도, 좋은 플레이를 펼치지 못해 속상한 날에도 유니폼은 더러워진다. 엉덩이랑 종아리 옆 부분은 슬라이딩의 여파일 테다. 무릎이 유독 더러운 날도 있다. 공을 놓치는 바람에 엉금엉금 기기라도 한 건지 모른다. 벗어놓은 유니폼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어떻게 처지할지 고민한다. 세탁기 직행 티켓을 발행해도 될 것인가, 한 땀 한 땀 리얼 손빨래 코스로 돌려야 할 것인가.  


  남편이 야구용품을 사러 갈 때 나도 동행했다. 야구 유니폼 빨기가 얼마나 고된가 얼핏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벌을 놓고 고민하는 옆에서 주저 없이 ‘이지 클리닝’이라는 마크가 박힌 것을 집어 들었다. 첫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유니폼은 예상대로 매우, 매우매우 더러웠다. 황색 흙먼지가 촘촘히 묻어서 솔직히 그냥 세탁기에 넣으면 세탁기를 빨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지 클리닝이라고 했는데? 과감히 돌려 본다. 40분 후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세탁기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때가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는다. 이렇게 잘못 빨아 남은 때는 나중에도 뺄 수 없다. 거대한 실수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아서 눈에 띌 때마다 기분이 떨떠름해진다.


  (말 그대로) 손수 빤 옷을 입고 멋지게 활약하고 돌아오는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 주는 보람을 만끽하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나는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열심히 운동하는 건 기특하지만 흰 운동복을 손빨래하는 건 힘들다. 그 힘듦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누런 운동복을 돌려주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모르겠다. 주부의 가오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어른이라면(어린이는 봐줌!) 자기 유니폼은 자기가 빠는 게 어떨까, 이런 생각도 왕왕 뇌리를 스치지만 남편이 두꺼운 다리를 구기고 욕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거슬릴 것 같다.


  애초에 이 야구 유니폼은 왜 흰색이냐는 것이다.

  야구를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기세 좋게 슬라이딩을 했지만 결국 아웃되었다. 남편이 옆에서 안타까움의 탄성을 터뜨린다. 나도 같이 한숨을 쉬었다.

  “야구 선수들은 옷을 한 번 입고 버리나?”

  아니라면 야구 유니폼은 왜 하얀색인가. 그에 대한 정설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 흰색 옷을 입어서 계속 흰색이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찾은 설명이다. 다만, 원정 경기를 할 경우에는 색이 있는 유니폼으로 바꿔 입는다. 타지에서 흰 유니폼을 빨기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안다면 홈경기 유니폼도 색이 있는 걸 입으면 좋지 않나. 이왕이면 황토색으로. 아마도 유니폼 빨래는 야구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늘 노 득점 1 민폐를 기록하던 남편이 얼마 전 좋은 경기를 하고서 치열했던 경기의 잔영처럼 모래 먼지를 휘감고 돌아왔다. “이건 세탁기에 넣으면 안 되겠지?” 하고 남편이 수줍게 묻는다. 나는 쿨하게 세탁기 위에 올려두라고 대답한다.

  더러워진 유니폼은 표백제를 푼 따뜻한 물에 담근다. 24시간이 이상적이지만 보통 넣고 잊기 때문에, 사실 잊지 않지만 마음의 짐처럼 담아두기 때문에 가끔 48시간이 넘기도 한다. 보통 옷이라면 옷감이 상하겠지만, 이 유니폼은 끄떡없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을 알리기 위해 ‘이지 클리닝’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손빨래에 강합니다. 네.

  뒤적거려서 흙먼지가 빠질 만큼 빠진 것 같으면 물로 헹구고, 운동복 빨래에 효과가 좋기로 정평이 난 파란 빨랫비누를 묻혀서 본격적으로 문지르기 시작한다. 문지르는 반복 작업도 고되지만, 물 먹은 옷을 들었다 뒤집었다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팔이 뻐근해지면 잠깐 생각한다. 버릴까. 3000엔 줄 테니까 새로 하나 살래? 얼마면 되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얼추 깨끗해진 유니폼을 드디어 세탁기에 넣는다. 다시 걱정 반 설렘 반의 시간이다. 기력이 소진해 고만 문지르고 말았던 얼룩은 빠질까. 바지단의 그 고집스러운 땟자국은 어떻게 되려나. 이윽고 세탁 종료음이 들리면 세탁통 안으로 손을 쑥 넣어서 흰 바지부터 꺼내본다. 때가 쪽 빠져서 뽀얗게 빛나는 옷을 보고 허리가 쭉 펴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나는 가족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이 하양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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