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에서 나를 함부로 쓰지 않는 법
프롤로그
낭만, 신조어도 유행어도 아니다.
교육적이거나 철학적인 단어는 더더욱 아니다.
좁고 어쭙잖은 기억력이지만
나의 기억이 닿지 않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는 그런 말이다.
'낭만'이 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시리즈로 이어져 몇 년에 걸쳐 (2016~2023) 방영됐지만,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낭만이니 로맨스 같은 감정이 없었다.
두 아들, 남편, 시댁, 친정까지 크고 작은 집안일과
남편의 일도 함께 하고 있었던 터라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 나의 최애는 CSI 시리즈였다.
2025년 9월.
여름의 뜨거움이 여전한 어느 날, 다음 책의 구상으로 생각에 잠겼다.
소설, 다음은 소설?
아니면 에세이 도전!
글쓰기, 출간의 시작은 에세이였다.
처음엔 모르고 썼다.
아니 몰랐으니까 쓸 수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써야 하니까, 책을 내야 하니까 열심히 쓰면 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막힌 나의 글은 끝날 때까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주차 브레이크가 걸린 자동차 같았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지만,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속속들이 나를 털어내는 것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여곡절 끝에 첫 에세이가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내 이름이 걸린 에세이는 나오지 않았다.
출간기획서만 몇 개를 썼는지.
호기롭게 시작한 출간기획서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원고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나를 불렀다.
정확한 이유나 계기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나만 아는 비밀 암호 같은 느낌이랄까.
아브라카다브라
열려라 참깨
낭만.
누군가는 구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나이 든 사람들의 말이라고 했다.
최백호 아저씨는
옛날식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마담을 찾았다.
낭만의 이름을 붙인 드라마가
한창 방영중일 땐 현실을 사느라 바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랬던가.
잘 되길 바라고 달렸을 뿐인데
길은 끊기고 다리는 꼬여 버렸다.
길은 사라졌고 맨홀과 터널이 이어졌다.
그 속에 갇혀 지내 온 시간은 기억도 하기 싫었다.
터널의 끝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를 따라가는 나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희미해도 나를 이끄는 그 빛이 나에게 낭만인 것 같다.
살고 싶은 마음
포기하지 않는 마음
나에게 낭만은
고달픈 현실에서 잠시 딴청 피울 수 있는
위안의 상상이며 기분 좋은 설렘이다.
나는 낭만 언니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