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by 낭만 언니

낯선 통화


안녕하십니까?


낮고 굵은 남자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귀에 붙였던 핸드폰을 떼어

눈으로 다시 확인했다.


010-xxxx-xxxx


저장되지 않은 번호.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다시 누구냐고 물었다.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몇 년 전 나의 아파트를 매수한 사람이었다.


통화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동산 거래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처음 듣는 음성(전화상으로)과 내용에

대충 통화를 끝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다운 계약서


경찰서와 세무서에서 오는 연락만큼

반갑지 않은 게 있을까?


통화 내용이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부동산 사무실 전화번호를 찾았다.


부동산 소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내가 판 아파트가

실거래가보다 낮은 금액에 거래가 되어

다운계약서를 쓴 게 아닌가 하고

세무서에서 관련 자료를 소명하라는

전달이 왔다는 것이다.


매수자, 매도자, 부동산 중개업자

모두에게 서류가 송달되었다고 했다.

기한 날짜까지 서류를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


나에게 왔어야 할 서류는 어디에 있는 건지?

나만 모르고 있었단 사실도 어이가 없었다.


23년 1월 며칠.

거래날짜란다.


계약금부터 잔금까지

받은 경위와 받고 난 후의 돈의 행방까지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기억.


16년을 넘게

살았던 집을 내놔야만 했던 기억.


20년 가까이

해 오던 사업이 힘들어졌다.

아니 망했다.

거짓말처럼 그날이 왔다.

당장이라도 급전이 필요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일단은 막아야 했다.

닥치는 대로 정리해야만 했다.


오죽하면 살던 집을 내놨을까.


집이 없어지면

갈 곳도

살 곳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급박했고 절박했다.

무조건 팔아달라고 했었다.


시세의 반을 조금 넘는 금액.

시세의 3/5 정도 되는 금액에

거래를 마쳤다.


그날의 기억은

그날과 함께 깡끄리 잊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파묻었다.


뒤늦게 찾은 서류. 작성해야 할 서류가 꽤 있었다.




은행에서 은행으로


아무튼 처리해야만 할 일이 생겼다.

몇 년 동안 전쟁 같은 난리를 치르면서

남아있는 통장도 없었다.

그 당시의 은행거래 내역을 찾아다니는 일은

악몽을 다시 꾸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나의 주거래 은행,

주로 사용하던 통장, 입출금 내역.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국민은행을 갔다.

농협을 갔다.

대구은행을 갔다.

신한은행도 갔다.


은행에서 받은 인쇄물들을 넘겼다.


내가 살던 집은

은행과 낯선 이에게 넘어갔다.


지금은 재산세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다


내 소유의 집이 아니어도

내가 쉴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성취이고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소유하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란 것도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추신)

갓난아기 적 나는 울보였다고 했다.

작은 소리에도 울고,

사람이 있어도 울고, 없어도 울고,

잠도 자지 않고, 울기만 했다고 했다.


등에 업고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겨우 그쳤다나.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살던

큰 언니 같은 고모의 말이다.


아이고, 내가 네 때문에 학교도 매일 지각하고.

업고 있다가 내려놓을라 하면 울고,

친구 만나러 나가려고 방에 눕히면 또 '앵'거리고.

말도 마라.

내 새끼도 아닌 너를 업고 온 동네를 누볐어.

그뿐인가,

몇 걸음 걷다가 노래라도 흥얼거려야 조용해졌지.


남진의 왕팬인 고모는

나를 업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


희한하지.

그 노래만 하면

그렇게 울던 애가 잠잠해지니 말이야.


고모는 지금도 입버릇처럼 그 이야길 꺼낸다.

난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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