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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24. 2019

아침 운동이 있는 삶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아침 운동을 하는 때는 일상에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시기일 때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에 와서도. 


아침 운동을 한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귀찮음을 이겨낼 의지가 작동하고, 아침에 4-50분 일찍 눈뜰 수 있을 정도로 잠을 잤다는 것이다. 혹은 잠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수면 시간을 더 채우는 것보다 운동을 통해 얻는 에너지가 더 크다든가. 말만으로도 건강한 소리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8년 전 서울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땐 운동을 할 시간적, 신체적 여유가 없었다. 불규칙적이지만 야근이 잦았고, 아침 일찍부터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냥 잘 자는 것이 몸에 보약인 것 같았다. 주말에는 스터디를 했고 그외에는 재미있는 것 보고 맛있는 것 먹는 데 시간을 썼다. 


운동을 좀 더 친숙하게 자주 하기 시작한 건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출퇴근 시간이 예전보다 일정했고 저녁에 내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때가 많았다. 자기 전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 때문인지 아니면 해를 거듭할수록 붙는 나잇살인건지 군살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서핑을 배웠는데 엄청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중고 보드를 사서 주말이면 송정 바다에 갔다. 체력소모가 무척 커서 서핑을 하고 나면 와구와구 잘도 먹었는데 나중엔 서핑을 하지 않아도 와구와구 잘도 먹었다. 


내 보드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바다에 더 자주 나가고 싶어서 출근 전에 서핑을 하러 갔다. 승용차 없이 버스로 왔다갔다 해야 했던 난 5시 50분에 일어나서 비키니를 챙겨입고 수트와 출근용 가방을 들고 송정 바다에 갔다가, 1시간에서 1시간 반 남짓 서핑을 하고는 수트와 비키니를 워터프루프백에 넣고 회사로 갔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두어 달을 그렇게 했나. 열정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송정 바다.



겨울이 되어서도 가끔 서핑을 하러 갔지만 아무래도 추워서 매주 가기는 힘들었다.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또 다음해 서핑을 가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식욕은, 퇴근 후 술 한 잔은 줄지 않았고, 배가 점점 동그래졌다. 한편 코어 근육 강화에 대한 욕구가 늘어서, 이래저래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생활 속에서 운동을 비교적 즐기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은, 운동은 한번 하면 그냥 앞으로도 쭉 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살이 찐다. 그리고 아무래도 활력이 줄어든다. 근육량이 늘면 기초대사량이 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느는 만큼 나는 잘 먹었다... 하여튼, 규칙적인 운동을 하다가 몇 개월 쉬게 되면 몸이 찌뿌듯해지고 무거워져서 다시 필라테스를, 웨이트 트레이닝을, 조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야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운동 시간을 아침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아침 운동의 매력을 알게 됐다. 특히 아침에 하는 조깅 말이다. 


부산에서 나의 조깅 코스는 감사하게도 해운대 해수욕장과 달맞이길이었다. 언젠가 부산에 '놀러갔을 때' 해운대 앞을 달리던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참 좋겠다, 평소에 뭐하는 사람들일까' 생각했었는데. 


잠에서 갓 깨면 꼬질꼬질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어차피 바람이 내 머리칼을 날려줄 테니까 모양새를 개의치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조금만 언덕길을 내려오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지점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머릿속으로 떠올려도 좋다.) 그러고 좀더 달려 내려가다 보면 참기름향 짙게 풍기는 전복죽집 앞을 지나, 미포에서 물씬 풍겨오는 비린 바다내음을 맡고서, 너른 해운대를 왼편 시야에 가득히 끼우고는 계속 내달린다. 수평선 위로 시선을 가로막는 것이 없기에 바다를 바라보면 항상 마음이 시원했다. 노보텔, 파라다이스 호텔 앞을 지나고 웨스틴 조선 앞까지 가노라면 여러 관광객과 호텔 투숙객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이질적인 느낌도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일상인 공간이 저들에게는 여행지이자 출장지였고, 그들이 기억하게 될 아름다운 해운대 광경에는 달리고 있는 어떤 사람이 함께 박히게 될지도 몰랐다. '저 사람은 참 좋겠다, 평소에 뭐하는 사람일까' 생각하면서. 저도 부산의 이방인이랍니다. 


이렇게, 가슴 시원해지는 광경.
달릴 땐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숲길을 걷고 싶을 땐 달맞이길에서 청사포를 향하는 산책로로 가기도 했다. 



파리에서 나의 조깅 코스는 또한 감사하게도 에펠탑이 보이는 세느강이다. 강 가운데 산책로가 있는 섬이 있어 매연을 맡지 않고 달릴 수 있다. 한편으로 달리면 에펠탑, 그리고 영화 <인셉션>에 나왔던 비르하켐(Bir-Hakeim) 다리가 나오고, 반대편으로 돌아 달리면 자유의 여신상을 본다. 섬 위에는 나처럼 뛰는 사람들, 혹은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뿐이다. 여유롭고 조용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바게뜨와 크루아상을 산다. 달걀을 흰자만 익도록 삶아서, 바게뜨를 노른자에 푹 찍어 먹고, 맛있는 에쉬레 버터를 발라서도 먹고, 토마토와 양상추 루꼴라 샐러드를 곁들여서 싱그럽게도 먹는다. 하루의 평화로운 시작이다. 


비르하켐 다리에선 웨딩 스냅을 찍는 커플을 종종 만난다. 그렇지 않더라도 늘 여행객이 있다. 그들의 인생에 특별한 기억이 될 어느 순간, 나는 그곳을 달리고 있다. 그들은 몇 시간 후면 여길 떠나겠지만 난 내일도 모레도, 당분간은 계속 찾아가 달릴 것이다. 이 일상적인 순간들이 쌓여서, 당신들이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떠난 것처럼, 나도 인생에 특별한 기억이 될 시간을 얻을 것 같아요.


흐린 날이 부지기수인 파리. 에펠탑을 좇으며 달리다, 뒤돌아서서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을 좇아 달린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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