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Nov 27. 2018

혼자 있고 싶어.

신혼이라고 늘 붙어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5년의 롱디를 포함한 8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고 파리에 온 우리는, 스튜디오에 살고 있다.


부엌이 분리되어 있고, 현관 복도와 방 사이에도 문이 있지만 방은 어쨌건 하나다. 이집 저집 비교할 여유 없이 예산에 맞는 집 중 바로 골라 들어오게 되었는데, 장점이 많다.

아파트 건물이 깔끔하고,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다. 이 정도면 엄청 새 아파트다. 오래되었어도 고풍스럽게 잘 정비된 아파트가 있는 반면, 오래된 만큼 단점 많은 아파트도 많았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관리인이 있으며, (또 그런 아파트 중에 관리인 없는 곳이 많다.)

보안이 이중으로 잘 되어 있다. (비밀번호 또는 키가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 아파트 외부 현관문이 2개다.)

아파트 내부 공간에 정원도 있고, 지하철역과 1분 거리고, 볕도 잘 든다. 화장실에 욕조가 있고 세면대 공간은 파우더룸처럼 꾸며져 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점은 2명 사는 집에 독립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집을 구하기 전, 4주 간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아파트에서 살았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거실에 널찍한 방도 별도로 있는 투룸 아파트였다. 나중에라도 이런 크기의 집에 살면 좋겠다며 남편과 둘이 참 좋아했었다. 


파리에 도착한 후 첫 일주일은 시내를 구경하고 행정상 준비해야 할 것들을 체크해가며 여유로이 보냈다. 아침에 빵집 가서 갓 구운 크루아상과 바게뜨를 사와 먹고, 인근 마트에서 장봐서 점심과 저녁을 해먹고, 산책하고, 미술관가고, 책읽고 - 모든 시간을 그와 함께 했다. 

오르세 미술관 나들이.


2주차 때부터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상의 느낌을 느끼면서 내 생활 리듬을 가지려는 찰나, 미묘한 불편함이 함께 찾아왔다. 예를 들면 난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은 타이밍인데 옆에서 무슨 영상을 보고 있다거나 지나치게 부스럭거려서 주의를 빼앗길 때. 다행히 해결은 어렵지 않았다. 같이 거실에 있었다면 내가 방에 들어가면 되고, 같이 방에 있었다면 내가 거실로 나오면 됐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가 내가 뽀로록 이동하는 것이 좀 잦나 싶었지만 이게 서로에게 좋은 것이니까. 


그런 행동을 반복하며 느꼈다. 내가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꼭 필요로 한다는 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12년 남짓 혼자 산 것이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어쨌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그것을 밖으로 분출하기보다는 조용히 내 공간에서 쉬면서 이를 해소하곤 했다. 남자친구랑 통화도 간단히 하고.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 에너지가 불가피하게 쓰이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대화를 잇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기분이 안 좋을 때, 화가 났을 때도 난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져' 있고 싶다. 내가 서핑을 잘 못하면서도 그렇게 줄기차게 좋아하는 것이, 바다 위에 동동 떠서 파도를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 온전히 자연과 나만 존재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다. 음, 생각지 못하게 갑자기 나를 성찰해버렸다. 난 잠시 단절되어 있기를 좋아하는군.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6월, 비아리츠. 장판 파도에서의 서핑도 반가워엉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렇게 독립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은 가운데 우리가 구한 집은 원룸이었다. 같은 공간에 내내 붙어있다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괜히 짜증부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 공간을 분리해보자고 제안했다. 책장으로 침대 공간과 테이블 공간을 분리해서 침대는 완전히 쉬는 곳, 테이블을 먹고 공부하는 곳으로 쓰기로. 인터넷으로 책장 이것저것을 찾아보다, Conforama 라는, 저렴한 가격에 조립 가구를 판매하는 상점에 갔다. 


허리보다는 높고 가슴께 못미치는 2열짜리 책장을 골라 계산하는데, 매장에 재고가 없다며 재고가 들어오는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책장과 함께 책상 의자도 구매한 터라 우리가 직접 집에 들고오기는 어차피 어려울 일이니 재고 들어오면 같이 집으로 배송해달라고 해두었다. 그것이 4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5월에 한번 문자가 왔다. 아직 입고가 안되었고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는 문자였다. 역시 프랑스, 은행계좌를 트고 카드를 받아 사용하기까지 아무리 못해도 2주는 걸리고 행정서류 처리는 3개월은 기본이니까, 이 정도야 뭐~ 하고 넘겼다. 


그러는 사이 우린 이 공간에 익숙해져 갔다. 게다가 남편과 내가 학교 가는 시간이 달라져서, 자연스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아침에 함께 운동하고, 남편이 먼저 나가고, 나는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나가고, 그러면 남편이 돌아와 자기 시간을 가지는 식이었다. 방 가운데 꽤 큰 원형 테이블 하나만 있었는데, 조립식 책상을 하나 사서 한쪽 벽에 붙여 두었다. 그래서 둘 중 누군가 공부하고 싶을 땐 그 책상에 가서 벽 보고 집중하면 되었다. 주말이 되면 함께 도서관에 가거나 밖에서 데이트를 했다. 


6월 내내 연락을 받지 못하고 이젠 공간을 분리할 책장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7월이 되어 콩포라마에 다시 갔다. 그들의 대답은 책장은 입고되어 있는데 의자가 계속 품절 상태라 내게 연락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난 너무 오래 기다렸고 이젠 그냥 둘 다 딱히 필요가 없다고 환불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흔쾌히 환불을 받았다. 


그렇게 우린 도망갈 곳 없는 스튜디오에서 잘 살고 있다. 내가 조용한 시간을 원할 때면 아마도 그 아우라를 내뿜고 있나 보다. 남편은 대개 알아서 이어폰을 끼고 '아는 형님'을 시청하고, 웃음을 참아가며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낸다. 나도 그가 공부하고 있을 때 부엌문과 화장실문을 살살 열고 닫고 그의 공부 공간에 넘어들어가지 않는다. 3주 후에 프랑스어 시험이 있어서 오늘부터 벼락치기 공부에 돌입했다. 오늘도 내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동안 그는 친구에게 온 전화를 받다가 이내 전화를 끊고 이것저것 하더니 잠이 들었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면서. :)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의 당혹감과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