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하지 못한 나
"나 요즘 이상해-"
"뭐가?"
"요즘 내가 나 같지 않아. 나 변한거 같아, 어쩌지?"
본인이 변한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그 언젠가 나 역시도 내가 변해버린 것 같아 샤워를 하다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던 그 때가 떠올랐다.
내가 그린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었나보다. 점차 변해가는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왕이면 남들은 나의 변화를 알아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던 거 같다.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변할 때 조금씩 변하는 내가, 중심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썩 어른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썩 멋져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친구의 "너 요즘 변한 거 같아." 한 마디에 어쩔 줄을 몰랐다.
'내 생각보다 많이 변한걸까?'
'줏대없이 보일라나'
'우스워 보이진 않을까'
그 말을 듣고 며칠은 샤워할 때마다 물을 맞으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은 그 친구 앞에서는 그 친구가 기억하는 이전의 나의 모습처럼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예전의 나는 어땠는지를 생각해가며-.
물론 쉽지 않았고,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멋지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인간에게 내려진 망각이라는 축복 덕에, 어쩌면 생각은 많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나의 축복받은 성격 덕에, 얼마지 않아 내가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쉽게 말해 고민거리를 까먹었다.
아마도 그렇게 한참을 굳이 이전의 나를 재현하려는 노력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또 다른 어느 날, 이번엔 나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한 다른 친구가 내게 한 마디를 남겼다.
"이제 진짜 너 같아-! 요즘 너가 더 너 답다고나 할까?"
이 말을 듣고, 이전의 고민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지? 나 변한 거 아니었어? 이게 더 나 다워? 그럼 뭐가 나야?'
또 다시 샤워 시간은 길어졌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의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이 생각으로 샤워를 오래하는 날들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새로운 생각거리들이 나의 샤워시간을 지배하곤 하지만.)
한 친구가 말했던 '변한 나'와 다른 친구가 말했던 '더 나 다운 나'는 유사한 모습의 '나'이다. 뭐 아주 똑같진 않을지라도 엇비슷할 것이다. 또 한 친구가 말한 '변하기 전 본래의 나'와 다른 친구가 말한 '더 나답지 않은 나' 역시 비슷한 모습일테다.
한 친구와 다른 친구가 바라본 내 모습이 상이하여 흥미로웠다. 나의 부모가 보는 내 모습과 나의 친구가 보는 내 모습과 내 연인이 보는 내 모습과 내 선생이 보는 내 모습과 동료들이 보는 내 모습과 자주 가는 가게 주인이 아는 내 모습은 모두 다르다. 그 안에서 친구는 수많은 부류로 또 다시 나뉘어지고, 연인도 또 나뉘어진다. 선생도, 동료도 가게주인들도 모두.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페르소나가 많은, 여러 개의 탈을 바꿔치는 사람인가. 대체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운 '나 다운 나'인가.
며칠의 샤워 상념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모두 다 나 다운 나 인데, 어쩔 것인가." 였다.
다양한 '나'가 내 안에 있고, 난 그때 그때,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특정한 '나'를 공개한다. 공개하고 싶은 나를 선택하여 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결국 솔직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초등학교 시절 많은 친구들을 과시하며 인기를 원했던 '나'도, 중학교 시절 공부 열정이 불같이 피어나 모범생을 자처한 '나'도, 고등학교 시절 새로 사귄 친구들과 일탈을 즐기며 자유를 만났던 '나'도, 대학시절 사랑스러운 여대생의 모습을 따라하던 '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모두 '나'이다. 지금도 이 모든 '나'는 내 안에서 공개되고/공개 되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한 친구에게 물었다.
"나 변했어?"
친구는 답했다.
"아니, 또 다른 너를 만났을 뿐이지.
앞으로 난 어떤 너를 만나도 변했다고 생각치 않을거야. 난 너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의 부분을 알 뿐이지. 우린 23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잖아."
적어도 이 마지막 친구에겐 23개의 나를 공개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