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의 겨울

잃고 떠나야 하는

by 숨결



망향의 겨울




무엇을 사랑해야하나

나는 떠나지 않는 영원불멸한 것들을 사랑하련다

옆에서 살다가 떠나는 것들에는

그저 안녕이라 말하리


봄이면 찾아오고

겨울이면 떠나는

고향을 잃은 변덕쟁이 여행자에게

작은 손짓하나만 남기리







떠나가는 것들을 사랑했습니다. 헤어짐 뒤에 더 큰 만남이 있을거라 한없는 기대를 품으며 사랑을 했습니다.

한걸음 걸으면 한걸음 뒤로 잊혀질 여행길을 사랑했고, 안녕이란 인사 뒤로 알량한 추억 한푼 남겨질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것들을 사랑한 결과 멈춰진 걸음과 함께 하는 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한 비어버린 두 손 뿐이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한 때는 동행도 없이 수백키로미터를 두 발로 걸어다니기도 했고 또 수백키로미터를 자전거 바퀴에 의지해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탔습니다. 물론 배도 탔지요. 뜨고 지는 해와 달과 별을 벗삼아 높은 산능성이를 넘고 산장에서 고된 잠을 청하기도 했었습니다. 순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간을 살아갔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한 이탈리아인 청년도 그런 순간의 삶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위스를 넘나들며 카페나 식당에서 일을 해 어느정도 돈이 생기면 곧바고 배낭을 메고는 다른 나라로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길 위에서 땅과 우주의 기운을 느끼며 사색에 잠기고 스쳐가는 동행들을 만나 와인 한잔에 서로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때였을것 같습니다. 남루한 옷과 허름한 외모였지만 그의 맑은 눈에 나는 그만 그런 삶을 동경하는 내 모습까지도 정당화시켜버리는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지요. 나는 지금 일년에 단 며칠의 여행도 꿈꾸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기회라는 것이 그저 희망과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계단으로만 생각했지요. 내가 이 한 단을 넘으면 어딘지 모를 높은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뒤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단 생각을 하기에는 생각이 어리고 미숙한 경험으로 가득해 말랑말랑할 때였나봅니다. 그래서 나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창업이란걸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나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 맹신하며 살았습니다.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펼치는 원대한 꿈이 얼마나 가소로운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마침내 사랑이지요.

오래전 지나간 수많은 사랑은 끄집어내지 않으렵니다. 얼마 지나지 못한 사랑에서 나는 얼핏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연인과의 사랑이란것도 어떤 형태로든 헤어짐이 다가오기 마련일텐데 말이지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잊었겠지만 나는 기억합니다. 우리의 끝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로 인하여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던 그 날을요. 그 이유란것도 몹시나 현실적이었습니다.

나는 단 한번의 실패였지만 그로 인한 빚과 원망, 그리고 자괴감이 아직까지도 내 삶의 발목을 잡고 내 목을 죄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이 바라는 소박한 삶 또한 내게는 몹시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눈앞에 그 현실이 닥쳐왔을때 버텨낼 수 없는 사람이란걸요. 그리고 당신의 그 실망감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걸요. 매정하지 못한 당신이란걸 알고 있기에 내가 마지막을 대신했습니다. 슬프고 아프지만 나는 그것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당신을 과거로 남겨두고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서 나로 인해 아프지 않을테니까요.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떠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 갈 수 없기에 나는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를 마치 신과 같은 영원불멸한 무언가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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