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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19. 2020

미국의 국립공원, 캐피톨리프 외전

캐피톨 리프(Capitol Reef) 국립공원을 지나며

아름다운 길(Scenic Byway) 12번이 끝날 무렵 유타 지방도로 24번과 만난다. 이 도로에는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이 있고,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도 있을뿐더러 이 길이 지나는 구간의 경치가 아름다워 꼼꼼하게 둘러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12번 여행을 마치고 캐피톨 리프의 겨울 모습은 어떨지 둘러보기 위해 24번으로 갈아탔는데, 12번이 끝날 무렵부터, 즉 딕시 국유림을 벗어나면서부터 눈이 그치고 24번에 접어들어서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높은 산이나 응달 부분에만 조끔씩 눈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번 겨울 폭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땅이 넓어서라기 보다 원래 날씨라는 것이 지형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 왕국을 방금 지나와서 마주하는 맨숭맨숭한 땅을 보니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으므로 공원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은 어렵게 됐다. 다음 목적지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캠프 그라운드에서 자고 다음 날 이동하는 방법과 밤에 이동해서 모뉴멘트 밸리 근방에서 자고 아침에 모뉴멘트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한 여행의 원칙에 따라 이동은 밤에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공원 굴뚝 바위(Chimney Rock) 근방에는 잔설이 남아있다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방법

지난 이야기에서 소개했듯이 캐피톨 리프는 자주 여행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공원을 여행하는 코스는 꽤 여러 가지가 있다. 24번 도로를 지나며 그냥 구경만 해도 장엄한 캐피톨 리프 공원의 모습을 맛볼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중간중간 서서 짧은 트레일 한 두 곳 해 보면 더 맛깔스러운 공원 여행을 할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난다면(아마도 3-4시간쯤) 오늘 소개하는 '시닉 드라이브(Scenic Drive)' 길을 다녀오면 캐피톨 리프 공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이 길에서 이어지는 오프 로드가 두어 곳 있는데, 이 곳까지 다녀가려면 한두 시간은 더 할애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몇 번인가 이야기했듯이 캐피톨 리프를 좀 더 깊이 볼 수 있는 경로로서 사륜구동 차량을 이용해 오프로드를 들어가야 하므로 보통은 하기 쉽지 않은 경로며, 여기까지 하려면 이틀은 머물러야 한다. 

머미 클리프(Mummy Cliff)는 양지바른 곳이라서 그런지 잔설도 없다. 


캐피톨 리프 공원 가운데 돈을 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시닉 드라이브' 구간이다. 방문자 안내소를 지나고 캠프 그라운드를 지나면 무인 요금소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개인 정보를 적은 쪽지와 입장료를 봉투에 넣어 통에 넣으면 된다. 다른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길은 잘 포장되어 있고 볼 만한 곳에는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중간에 그랜드 워시, 그리고 마지막에 캐피톨 고지 이렇게 두 곳의 비포장 도로가 있는데 그다지 험하지 않아 SUV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시닉 드라이브를 들어갔다면 이 비포장 구간은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그만큼 특이한 바위들이 많이 있고, 공원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포장된 구간에서 보는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의 시닉 웨이에서 맞은 석양


남 유타의 지형은 대체로 사암으로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붉은 빛깔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국립공원지역은 물론이고 그와 연결돼 기반이 되는 주변 지형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이런 특징을 가진 곳은 대체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부터 석양 무렵까지 빛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더욱 붉어지고,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적당한 곳에 머물며 지는 해를 보노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특별히 노을을 찍는데 좋은 곳은 없다. 낮에 다니다가 어디가 좋을지 미리 봐 두면 좋겠지만 시간만 잘 맞춘다면 어디에 있든지 붉은 바위들은 석양의 빛을 잘 보여준다.

공원의 바위들은 대체로 붉은 계통이다


어느덧 해가지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모뉴먼트 밸리까지는 대략 4시간쯤 걸리는 거리니 서두를 것은 없다. 어두워 경치를 볼 수는 없어도 기억을 더듬으면 지나는 길의 풍경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이는 또 다른 여행이므로 천천히 마음 편하게 이동하기로 했다.


캐피톨 리프 공원에서 모뉴멘트 밸리로 가는 길은 70번 고속도를 타고 가면 5시간이 넘게 걸리고, 국도를 타면 4시간 조금 덜 걸린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이 맞다. 네비도 그렇게 안내를 하고 있으니 망설일 것은 없다. 24번 국도와 연결된 유타 95번 도로를 이용해 모뉴멘트 밸리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길 또한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도로다.  도로의 경치도 좋을 뿐만 아니라 글랜 캐니언과도 연결되어 있고, 내추럴 브리지 준국립공원도 이 길에 있고, 크게는 캐니언 랜즈 국립공원과도 이어진다. 

공원을 떠나기 직전 햇살이 산마루에 걸쳤다


죽음의 드라이브(이 구간은 밤이기도 하고 운전에 집중하느라 사진은 없다.)

95번 도로에 접어들 무렵 날은 어두워지고 주변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캄캄해졌다. 하늘에 구름이 적었고, 캐피톨 리프 지역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모뉴먼트 밸리로 갈 때까지도 눈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길 초반에 살짝살짝 눈발이 보였지만 이 정도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95번이 지나는 이 지역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고 나서야 처음부터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5번 길을 크게 반으로 나눴을 때 전반부는 평지나 계곡의 골짜기 부분을 지나므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후반부는 높이가 거의 3000M에 달하는 산간지역을 통과한다. 다시 말해서 저지대에서는 약간의 눈발이 날려도 이 정도 고지대로 가면 함박눈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한 결과로 95번 후반부를 통과하는 것은 거의 죽음을 무릅쓴 드라이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발이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함박눈으로 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강한 바람까지 불어 바람에 날리는 눈 때문에 하이빔을 켜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전조등을 하향으로 해도 안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두어 시간 동안 지나는 차를 한 대도 만나지 못했다. 뽀송뽀송했던 아스팔트에는 차츰 눈이 쌓여만 갔다. 최대한 천천히 운전해보지만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은 물론이고 갓길 차선도 보이지 않으니 도로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중앙선도 무시하고 도로 한가운데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손에 땀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앞을 보느라 상체를 거의 운전대에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나중엔 팔이 저렸다. 


진퇴양난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계속 가자니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어딘가 차를 대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니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할 수도 있다.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교차했다. 그 차도 물론 조심하면서 천천히 운전하고 있겠지만, 속으로 그 차의 안전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세 시간을 눈과 사투를 벌였던 것 같다. 


그런데 도로 저 앞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불안한 생각이 스친다. 


"혹시 길을 막아놓고 안전표시를 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밤을 새울 수도 없다."

"....."


불빛이 가까워져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불빛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좀 속도를 올려 거리를 좁혀봤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그 불빛은 제설차들이 켜놓은 경광등이었다. 그것도 세 대가 한 조를 이뤄 제설을 하고 있었다. 


"휴~, 이제 살았다."


제설차의 속도에 맞춰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렇게 당황스럽고, 이렇게 긴장되고, 이렇게 위험했던 여행은 처음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눈보라가 거셌다. 거북이 운전이라  마치 걸으면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신들의 계곡으로

죽음의 드라이브에서 벗어나 모뉴먼트 밸리와 가까운 화이트 메사까지 왔다. 이제 잠자리를 마련해야 할 차례다. 어제의 경험을 살려 호텔 앱으로 예약하고 체크인을 할 요량으로 검색을 해 보니, 모뉴먼트 밸리 근방의 숙소가 동이 나고 말았다. 어쩔까 고민하다 결국 지난번 디스퍼스드 캠핑을 했던 신들의 계곡(Valley of the Gods)*이 떠올랐다. 30여분 거리에 있으니 그리 멀지도 않아 이번에도 신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신들의 계곡'에 대한 지난번 글은 여기에서 확인.



>>>다음 이야기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의 겨울 풍경을 그린 "그곳,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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