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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트앤너트 Oct 24. 2021

<제 6장>디자인은 먼저하는 것이 아니다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각 단계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기획, 디자인, 기구설계, 회로설계, 기계설계, 금형, 생산과 같이 과정은 제품과 분야에 따라서 매번 달라집니다. 그리고 각 과정은 다른 과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들 속에 정해진 순서가 존재할까요? 앞 장에서 우리는 각 제품별로 분야와 과정을 비롯한 만드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같은 순서가 있거나 각 과정별로 같은 작업만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제품은 회로를 먼저 개발한 후 테스트하고 기구나 기계설계를 진행해야합니다. 다른 제품은 기구설계를 먼저한 후 테스트를 진행하고 나서 다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순서는 유동적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어떤 제품에든 꼭 들어가야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중 대표적으로 말하시는 것들 중 하나는 디자인입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언제 진행해야할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디자인은 먼저 진행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많은 제조창업자 분들께서는 놀라십니다. 당연히 디자인을 제일 먼저 진행해야한다고 인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듣고 접하는 것이 디자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은 제품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보이는 외형을 결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가장 먼저 진행해야한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디자인 작업은 가장 선행되지 않아야 합니다. 심지어 단순 디자인 제품일지라도 생산을 공장을 찾고 공장의 가이드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것의 까닭에 대해서는 아래의 예시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품 제조 작업을 이사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사를 가게 되면 당연히 들고가야하는 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필수적인 짐들도 있지만 버려야하는 짐들도 있습니다. 원래 살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가게 되면 버려도 되는 짐들 중 일부는 버리고 이사를 가야합니다. 조금 더 극단적인 케이스로 만약 30 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다가 3 평짜리 원룸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된다면 필수적인 짐들까지도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필수적인 짐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면 가장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평 원룸에 쇼파와 대형 장롱까지 모두 넣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다시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봅시다. 비유에서 집은 디자인한 제품이고 제품의 기능을 위해 들어가는 회로, 배터리 등의 부품은 짐입니다. 이사를 가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필수적인 짐을 버릴 수 있겠지만,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품에는 필요한 기능이 있고, 필수적인 부품이 들어가지 못하면 그 기능은 구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면 클라이언트의 선택은 큰 집을 찾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디자인 작업을 새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미 디자인을 했으니 거기서 일부만 고치면 되지 않나요? 굉장히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제조를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제조창업자들의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맞아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디자이너에게 약간 수정하는 것은 새로 작업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일입니다. 이는 디자인의 특성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부에 들어가는 배터리 크기 확보를 위해 2cm 만 뒤로 늘려야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그냥 직육면체 형태로 2cm 를 키우면 될까요?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디자인은 곡선 요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2cm 를 늘리더라도 전체적인 조화와 비율을 보고 디자인을 정해야 합니다. 즉, 처음부터 새로 그려야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애초에 협의되지 않는 변수 때문에 수정요청이 생겨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디자인을 먼저 진행한 제조창업자들은 지속적인 디자인 데이터 수정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리소스와 비용을 소모하게 됩니다. 어떤 클라이언트 분은 ‘우리 제품은 부피가 꽤 되어서 그 작은 부품이 안 들어갈 것 같지 않은데요?’라고 물으셨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들이 내부 부피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제조의 특성 때문입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외형 부피가 10 이라고하면 내부의 공간은 3-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합 방식에 따른 기구적인 구조나 작동을 위한 물리적인 공간들, 제품의 크기가 크다고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부품의 부피가 크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추후 서술하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설계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게 됩니다. 때문에 디자인을 하기 전에 기구 검토를 통해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과 실제 최소한 어느정도 이상의 부피를 가져야하는지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B2C 제품들은 디자인이 컴팩트하게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디자인은 절대 가장 먼저 진행되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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