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역사서사 비판
한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궁예가 세운 국가를 '후고구려'라고 자연스럽게 익혀왔습니다. 하지만 궁예가 세운 국가의 국호는 후고구려가 아닙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견훤이 세운 후백제처럼 후백제라는 명칭은 후대의 명칭이고 당시에는 백제라고 불린 것처럼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 역시 후고구려라는 명칭은 후대의 명칭이고 당시에는 고구려라고 불렸을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궁예가 세운 국가의 이름은 '후고구려'도 아니고, '고구려'도 아닙니다. '고려'입니다. 『시민의 한국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와 있습니다.
궁예는 896년에 철원을 근거지로 삼았다가 898년에 송악으로 옮겼다. 이때까지는 아직 새 국가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901년에 국호를 고려로 내세웠다. (각주 : '후고구려'는 왕건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후대에 붙인 명칭으로, 궁예도 한때 국호를 '고려'라고 했었다.)
- 『시민의 한국사』 173p
사료를 확인해보겠습니다.
唐佋大順元庚戌, 稱後高麗立王旌.
당 소제 대순 원년 경술년에, 후고려(後高麗)를 칭하고는 왕의 깃발을 세웠네.
-『제왕운기 』 권하, 후고려기
孝恭王九年, 弓裔據鐵圓, 自稱後高麗王
효공왕 9년(905)에 궁예가 철원을 근거지로 삼아 후고려왕(後高麗王)이라 자칭하며
-『고려사』 지리지, 북계
신라 말년에 견훤(甄萱)이 후백제왕(後百濟王)이라 일컫고 모두 그 땅을 차지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금산 사람들이 후고려왕(後高麗王) 궁예(弓裔)에게 붙으니
-『세종실록 』 지리지 전라도 나주목
대부분의 사료에서 볼 수 있듯이 궁예가 세운 나라는 '고려'이고, 주몽이 세운 고구려(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후고려'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삼국사기』의 경우 위처럼 궁예가 스스로 왕을 일컬었다라는 언급만 있고, 그때 세운 나라의 국호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기도 합니다(참고자료도 참고)
고구려는 고려라고도 불렸고, 고구려 후기에는 고려를 국호로 하였으리라고 여겨진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닌 국호였다. 단 본서의 찬자들은 왕건이 국호를 고려로 하였음을 의식하여 고려라는 국호를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역주(궁예 열전)
삼국사기는 궁예의 첫 번째 국호인 ‘(후)고려’를 의도적으로 편집 혹은 은폐했다고 생각한다. 고려는 궁예가 아니라 오직 왕건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태조존숭론’을 강조한 삼국사기의 현재적 입장이 과거의 사실을 흐리고 만 것이다.
- 홍창우, 「궁예의 ‘(後)高麗’ 국호 제정과 ‘一統三韓’의 지향」, 『신라사학보』 2023(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올해부터 사용되는 2022개정교육과정 교과서 중 유일하게 1종만이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2015개정교육과정 교과서들 중에서도 딱 1종만이 주석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1종은 2022개정교육과정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둘은 다른 출판사)
그렇다면 그냥 고려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위에서 확인한 것처럼 고려, 조선 시대 사료들의 찬자들은 '후고려'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가 5세기 이전에는 고구려라고 불렸으나 5세기 이후로는 고려라고 주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고구려가 장수왕 대에 고려로 국호를 변경하였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실제로 국호를 변경한 것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5세기 이후에는 주로 고려라고 불린 것이 사실이기에 당대 사람들이 주몽이 세운 고려와 궁예가 세운 고려를 구분하기 위해 후고려라고 부른 것입니다.
무예는 황송스럽게도 열국을 맡아 외람되게 여러 번을 함부로 총괄하며,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일본기』권10, 신구 5년(728) 봄 1월(갑인)
천황은 삼가 고려국왕(高麗國王)에게 문안한다.
- 『속일본기』권32, 보구 3년 2월(기묘)
발해와 관련하여 익히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료에서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예가 세운 고려처럼, 과거의 국가를 모범으로 삼아 계승하고 국호를 그대로 쓰려는 문화는 10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후고구려라고 불릴까요? 삼국시대의 고구려(고려)와 궁예가 세운 고려, 왕건이 세운 고려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고구려-후고려-고려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조경철, 2018)되었으나 20세기 들어 더 쉽게 구분하고자 후고려를 후고구려로 바꾼 것입니다. "고구려-후고구려-고려의 구도는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조경철, 2018)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구려-후고구려-고려'의 구도는 몇 가지 큰 문제를 낳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에서 5세기 이후에 사용한 것이며, 왕건 이전에 궁예가 채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구도는, 궁예가 세운 나라를 고구려라고 잘못 알거나 왕건이 고구려의 '구'자를 빼고 국호를 고려로 했고 이는 궁예가 세운 나라와 다른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는 문제를 낳게 됩니다.
즉,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① 고구려는 5세기 이후 '고려'라고 불렸다(국호를 바꾸었든, 그렇지 않고 단순히 줄여서 부른 것이든)
② 왕건은 고구려에서 '구'를 뺀 것이 아니라 5세기 이후 불린 고려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③ 그리고 그 고려는, 삼국시대의 고려(고구려)뿐만 아니라 궁예가 세운 고려와도 연관된다.
무엇보다 고구려 – 후고구려 – 고려로 이어지는 구도는 역사계승의식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게 큰 문제다.
- 조경철, 「주몽고려, 궁예고려, 왕건고려, 코리아의 단절과 계승」, 『역사와현실』 2018.
결국 후대의 시대구분 용어는 그대로 사용하되 국호가 당대에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역사교육 또한 분명히 필요하다. 원 사료를 보지 않은 채 이루어진 국호에 대한 역사교육은 마치 영화를 보지 않고 그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국호에 대한 오해와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 김병희, 「10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의 국호에 대한 일고찰」, 『역사교육』 2024(강조는 인용자)
후고구려라고 부르는 것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른 방식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조경철, 2018)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도가 놓치는 부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궁예가 세운 국가의 원래 국호가 고려였음을 언급한 유일한 교과서처럼 다른 교과서들에도 이 점이 반영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교수학습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교사용교과서나 지도서에도 언급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참고자료]
한국역사연구회, 『시민의 한국사』, 돌배게, 2022
김병희, 「10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의 국호에 대한 일고찰」, 『역사교육』 2024.
조경철, 「주몽고려, 궁예고려, 왕건고려, 코리아의 단절과 계승」, 『역사와현실』 2018.
홍창우, 「궁예의 ‘(後)高麗’ 국호 제정과 ‘一統三韓’의 지향」, 『신라사학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