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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08. 2022

애기나 섬에 가다

22.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

애기나 섬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피레우스 항으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발급받은 페리 티켓에는 ‘B구역’으로 가라는 강조 표시가 붙어 있었다. 터미널도 아니고, 대기실도 아니다.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전철을 탔다.


표시된 구역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두를 노려보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게이트도, 직원도, 흔한 안내판 하나도 없다. 짐이 든 가방을 몇 개씩 쌓아두고 있는 아저씨와 기내용 가방을 휴대한 커플, 보채는 아이들 안고 있는 가족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두에 정박해 있던 커다란 배 상단에 애기나 섬이라고 적힌 전광판이 지나갔다. 열린 배의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승무원 두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티켓을 보여주는 것으로 승선 조치가 완료됐다.


페리 밖으로 갈매기 한 마리 정도는 날아 줘야지! 멀리 아테네가 보인다.


2층 객실이 있는 큰 배였다. 선실 안쪽에는 좌석 대신 둥근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카페에서는 음료뿐 아니라 간단한 먹거리도 팔고 있었다. 누군가는 둥근 의자에 누워, 누군가는 안쪽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2층에는 수학여행이나 그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30여명 정도의 학생단체가 탑승해 있었다. 그 나이 때 가장 잘하는 일 - 소란스럽게 떠들고 장난치는-에 다들 몰두해 있어서, 1층 객실까지 그들이 뛰어다니는 발소리와 비명소리가 전해졌다. 차라리 나가자, 우리는 선실 둘레에 늘어져 있는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 보았다. 시끄러운 엔진 소음과 파도 소리 덕분에 오히려 인간이 내는 소음은 견딜만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1시간 후 우리는 애기나 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섬 역시 제우스의 시도 때도 없는 연애 때문에 이름이 붙은 곳이다. 제우스는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한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이곳 저곳을 헤매다 코린토스에 도착한다.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는 딸의 행방을 알려주면 물이 부족한 코린토스에 샘물을 솟게 해주겠다는 아소포스의 제안을 받고 천기를 누설한다. 당신의 딸을 납치한 것은 제우스라네. 훗!


시시포스가 괘씸했던 제우스는 죽음의 신을 부른다. 시시포스 저 녀석을 내 눈 앞에서 썩 치워버려! 죽음의 신은 명령을 행하기 위해 출동한다. 하지만 영리한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을 사로잡아 지상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죽음의 신이 이승에 잡혀 있는 동안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이것 참 큰일이다.


신들의 다음 행동을 예견하고 있던 시시포스는 아내에게 ‘만약 내가 죽더라도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일러둔다.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무시무시한 아레스가 직접 나서서 시시포스를 잡아다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인계한다. 상황은 일단락된 듯 보였다.


재판받기 위해 하데스 앞에 나간 시시포스는 아내를 욕하며 운다. 남편이 죽었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며 서럽게 하소연한다. 어이구, 그랬어? 부인이? 이를 어쩐다니...... 너도 참 안됐구나.....  마음이 흔들린 하데스는 아내를 설득하라며 잠시 이승으로 갈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일단 이승으로 돌아온 시시포스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시시포스. 위키 펌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결국 때가 되어 저승으로 간다. 시시포스가 저승에 오기만 기다린 신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하여 시시포스는 큰 돌을 가파른 언덕에서 굴려 올리는 벌을 받게 된다. 시시포스가 아무리 힘껏 돌덩이를 밀어 올려도 경사 때문에 돌은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시시포스는 영원히 돌을 굴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시시포스의 운명은 그렇게 놔두고, 제우스는 자기 욕심을 채운다. 일단 쫓아오는 강의 신 아소포스에게는 벼락을 던져 저지시킨다. 아소포스의 딸을 이 섬으로 데려와 아들 ‘아이아코스’를 낳는다. 이후로 이 섬은 그녀의 이름을 따 애기나 섬이 되었다. 하지만 섬에는 엄마와 아들 둘 뿐이었다. 심심한 아들을 위해 제우스는 개미를 사람으로 만들어 다스리게 했다. 아이아코스의 손자가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이다. 지금 이곳은 인구 7000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섬이지만, 과거에는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의 고향으로 묘사될 만큼 세력 있는 곳이었다.




애기나는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그리스 본토보다 먼저 받은 것으로 보인다. 농사를 짓기에는 문제가 좀 있는 척박한 지만, 교역을 하기에는 알맞은 위치에 있었다. 기원전 8세기에는 그리스 최초로 은화를 만들어 유통시킨(현재 달러가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과 같이) 나라였고, 전성기 때는 아테네를 능가하는 해군력을 보유한 곳이었다. 기원전 5세기 애기나 섬에 거주한 인구는 44만 명에 이르고, 그중 40만이 노예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울릉도 만한 면적에서 44만이 살았다니 입이 벌어진다.


애기나 섬은 아테네의 코 앞이다

아테네와의 관계는 호혜적이지 못해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애기나 때문에 애를 먹는 아테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차 페르시아 전쟁 때(마라톤 전투가 있었던 그 페르시아 전쟁) 애기나는 페르시아의 편이었다. 하지만 2차 페르시아 전쟁(테르모필레 전투가 있었던 그 전쟁) 때에는 그리스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배에서 내려 부두를 빠져나가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마차였다. 도시의 기차역 앞에 택시가 열을 지어 서 있듯, 애기나 섬 관문에는 말과 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길 위쪽, 좀 떨어진 곳에 몇 대의 택시가 서 있었다. 애기나 섬의 특산품이라는 피스타치오를 파는 가판대 옆으로는 바다를 보며 쉴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고, 그 뒤 작은 골목 사이사이에 조그마한 가게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의 간판이 보였다. 문을 닫아 건 가게도 제법 됐지만, 절반 이상은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버스는 어디서 타지?


“거기 가면 투어 스가 있어.”


어젯밤 일행은 인터넷을 뒤적이며 이렇게 말했었다. 애기나 섬은 아피아(Aphaia) 신전으로 유명하고, 신전은 당연히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을 터였다. 가판대 상인에게 신전까지 가는 버스를 묻자, 왼쪽 길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도, 티켓을 파는 쪽도 영어에는 능숙하지 않았다. 티켓 구입과 관련된 영어만 겨우 가능했고, 시간표나 관광자료에 관해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뒤로 줄을 선 여행객들 때문에 우리는 절반쯤 포기하고 티켓 창구를 벗어났다. 어쨌든 아피아 신전을 다녀온 후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한 시간 후 석 대의 버스가 나란히 도착했다. 티켓 창구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원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신전 앞에 얼마나 정차해 주는 걸까? 한 시간에 한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탈 수 있는 걸까?"


버스 기사와 그를 보조하는(?) 조수가 있었지만, 둘 다 영어로는 소통이 불가능했다. 티켓 창구 직원의 영어가 오히려 생각날 정도다. 포기하고 앞을 바라보자 문 위쪽에 1시간30 분 간격으로 적힌 아마도 '간이 버스 시간표'로 보이는 낡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리스 어로 적혀 있어 정류장 명은 알 수 없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만국 공통이다. 투어버스가 아니라해도 1시간 30분에 한 대 버스가 다닌다면 문제는 없다. 괜찮아, 저게 맞겠지.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아피아 신전까지 가는 대형 버스는 투어 버스가 아니었다. 섬 주민들도 이용하는 마을버스였다. 조그만 장애물만 길 쪽으로 나와 있어도 버스가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을 운전기사는 손님과 떠들며, 잔돈을 거슬러 줘 가며 신나게 달렸다. 시장에서 산 물건을 든 할머니가 버스 앞에 나타나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짐을 실어주기도 했다. 전형적인 섬마을 풍경이다. 성 넥타리오스 수도원 앞에서 필리핀 계로 보이는 작고 다부진 인상의 엄마와 가녀리고 수줍음 많아 보이는 딸이 24인치 가방을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동양인 모녀와 우리, 대여섯 명의 관광객이 아피아 신전에서 내렸다. 아피아 신전은 19세기 찰스 로버트 코커렐(Charles Robert Cockerell) 같은 사람들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해 신전의 부조나 조각품, 중요 석재는 독일 뮌헨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그리스 신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돌덩이만 남은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신전의 부지를 보면 엄청난 규모의 신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피아 신전과 관련된 물품들은 뮌헨으로 반출됐다.

애기나가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아피아 신전’이다. 아피아(Aphaia)는 크레타의 수호 여신 딕틴나(Diktynnaion)의 다른 이름이다. 딕틴나는 크레타에서 사냥과 수렵, 사냥꾼과 어업의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리스 신화 속 아르테미스와 유사하다.


전설에 따르면, 미노스의 왕이 아피아(Aphaia)에게 반해 그녀를 쫓아왔다. 아피아는 그를 피해 도망가다 바다에 몸을 던진다. 아피아는 곧 어부의 그물에 걸렸고, 애기나 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부가 그녀에게 반해 들이댄다. 아피아는 애기나 섬 안으로 도망쳤는데, 아르테미스가 그녀의 몸이 보이지 않도록 숨겨주었다고 한다.


로마시대 딕틴나 상. 위키 펌

크레타 섬의 문명이 애기나에 도착해 그리스 본토의 문명과 섞이는 과정이 묘사된 신화다. 기원전 7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아피아 신전은 이후 아테네 여신과 함께 모셔졌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입장료를 내고 신전으로 들어갔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는 4시간 후에 출발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던 것인지, 신전 가이드가 열명이 좀 넘는 관람객의 뒤를 쫓아 올라왔다. 한낮의 해 아래로 이따금 고지대의 바람이 불었다. 신전을 제외하고는 뻥 뚫린 바다만 보인다. 이 바다가 바로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던 그 바다다.


살라미스 해협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아테네 근처에서 은광이 새롭게 개발된다. 당시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은광의 수입을 시민들이 나눠 가질 것이 아니라 애기나와의 전쟁에 쓸 배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킨다. 애기나는 아테네에게 그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돈으로 100척의 전함단을 만들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야심이 컸고,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모든 시민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고, 시민들 간의 문제를 판결할 때는 공정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얼마 후 페르시아가 침공해 온다(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아테네 사람들은 테미스토클레스를 정치, 군사의 일인자인 ‘스트라데코스(최고 사령관)’로 임명한다. 180척의 배가 그의 지휘 아래 있었다. 아테네의 명운을 그의 손에 쥐어 준 것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강제로 도시 밖으로 이주시킨다. 육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야 승산이 없다고 봤던 것이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진 페르시아는 방향을 바꿔 아테네로 치고 들어온다.


페르시아군은 아크로폴리스 맞은편에 있는 작은 언덕-아테네인이 ‘아레스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 에 포진하여 성에 공격을 개시했다.

……

아크로폴리스에는 포세이돈과 아테네가 이 땅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서로 다툴 때 그 권리의 증거로 삼았다는 전설의 올리브나무와 바닷물이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의 방화로 신전과 함께 이 올리브 나무가 사라지고 말았다.

-헤로도토스 역사

이 공격으로 아테네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아테네 외 다른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일 마음이 없었다. 많은 나라가 이미 페르시아에 (항복의 뜻으로) '흙과 물'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테살리아와 보이오타이 같은 나라가 페르시아의 수중에 떨어져 맞게 된 상황을 보자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페르시아는 '흙과 물'을 보냈다고 해서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식량과 군사를 징발했다. 다른 나라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어서, 스파르타에서 온 에우리비아데스는 자신이 연합군 함대의 총 사령관이 되지 않으면 데리고 온 군대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협박한다. 육군의 스파르타가 해군을 지휘한다니. 180척의 배를 동원한 아테네를 제치고 16척의 배를 가져온 스파르타가 총 사령관이 되다니. 그러나 연합군의 이탈을 걱정한 테미스토클레스는 깨끗하게 지휘권을 내준다.


테미스토클래스, 위키 펌


1200척의 페르시아 함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300척 연합군 함대의 지휘관인 에우리비아데스는 후퇴한다. 아무래도 육군이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답답했던 에우보이아 사람들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뇌물을 건넨다. 그는 이 돈으로 연합군을 설득한다. 가까스로 연합군이 진정된다. 이때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 및 연합군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연합군은 다시 어수선해진다. 절반쯤은 도망칠 궁리를 끝낸 것처럼 보였다.


페르시아 군대가 살라미스 만에 진입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심복을 페르시아의 진영으로 보낸다. 그리스 군이 밤사이 퇴각을 시작할 예정이니 포위하여 막으라고 조언한다. 페르시아는 이 말을 믿었고 밤사이 군대를 움직인다. 날이 새자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군대가  모든 도주로를 막아 버렸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이제 연합군에게 남은 선택지는 싸우는 것뿐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야말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사기충천한 페르시아 군이 포위를 좁혀 온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아이갈레오스 산에 앉아 4D로 펼쳐지는 전투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연합군은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싸워서 죽거나 도망가다 죽거나 두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기나 군도 열심히 싸웠다. 그리스의 해군력이 빛을 발한다.

그들은 해가 질 때까지 힘찬 싸움을 벌여 고귀한 승리를 얻었다. 시모니데스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나 여러 다른 나라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바다의 빛난 승리를 얻은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이 해전에서 그리스 군대 중 가장 이름을 드높인 것은 애기나 군이었고, 아테네 군이 그 다음이었다.

 – 헤로도토스 역사


살라미스 전투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했다. 페르시아군은 본국으로 퇴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는 페르시아 군을 쫓아가자고 말하지만, 테미스토클래스는 거부한다.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후  테미스토클레스의 의외의 행각이 시작된다. 그는 잡은 포로 중 페르시아 왕의 부하였던 아르나케스라는 인물을 찾아 내 크세르크세스에게 이런 말을 전하게 한다.

해전에서 이긴 그리스 군은 헬레스폰토스 다리를 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왕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루빨리 그 다리를 건너가라고 전했습니다. 또 그동안 그는 그리스 연합군을 지체하도록 해서 왕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이제 테미스토클레스는 전 그리스적 유명인이 됐다. 그는 방어를 위해 아테네와 피레우스를 잇는 성벽을 쌓기 시작한다. 아테네의 남자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동원했다. 아테네가 최고가 되는 길은 육상이 아니라 바다에 있고, 또한 교역에 있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는 미래를 제대로 예견하고 있었다. 그 자신의 미래도, 아테네의 미래도.


하지만 다른 나라의 미래에는 관심 없었다. 그는 해군력을 동원해 키클라데스에 공물을 강요한다. 페르시아 전쟁 때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나라로부터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의 공금을 착복한 단서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테미스토클레스의 평판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랬겠지, 뭐.


아테네 사람들은 도편 추방법을 통해 테미스토클레스를 쫓아낸다. 그는 페르시아까지 도망친다. 페르시아의 왕을 만나 자신이 살라미스 해전 때 페르시아 군의 안전한 도주를 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다시 그리스와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페르시아의 편에 서서 적극 돕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


페르시아 왕은 그에게 마그네시아의 장관직을 맡기는 등 후한 대접을 해준다. 기원전 449년 테미스토클레스는 6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다행히 그리스와의 전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은 최선이었던 것 같다. 플루코르타스는 그의 책에서 '그리스와의 전투를 원하지 않은 테미스토클래스가 자살했다'고 썼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지금 살라미스 해협의 바다는 평온하다. 앙상한 신전에서 불어 내린 바람은 한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바다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 바다 안에는 과거의 전투가 있고, 그곳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살았던 역사만 존재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 그는 그가 속한 사회를 아무 곳으로도 데려가지 못한다. 다른 사회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을 때 멈춰 선 사회란 금방 동력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처럼 미래를 예견한다면 그건 어떨까. 자신의 미래에 관한 정확한 예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난 후 그가 행한 부정직한 일들이 그의 미래를 결정한 것이 아닌가. 다행히 데미스토클레스가 죽기 전까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테네는 지상 최강의 적수를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찔한 일이다.



신전 주위로 남은 관광객은 없다. 그늘 아래 제복을 입은 관리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신전을 빠져나와 단 하나 있는, 음료와 샌드위치,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음료수를 마시다 문득 벽에 붙여 놓은 시간표에 눈이 갔다. 버스 안에 붙어 있던 간이 시간표와 매우 다르다. 저 시간표가 우리가 탔던 버스 시간표가 맞다면, 되돌아가는 버스는 없다.


아피아 신전에 있다 집에 못 올 뻔 했다

급한 마음에 카페 주인을 붙잡고 버스 시간에 대해 물었다. 곱슬거리는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년의 그리스 여인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그 시간표가 맞다’는 것만 확인해 주었다. 주말이라면 좀 더 버스가 자주 있긴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애기나 섬 관광은커녕 이렇게 해서는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도 놓치게 된다. 일행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카페 주인을 붙들고 대화를 시도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배편 예약 시간이 있단 말이야. 주인은 핸드폰을 들여다본 후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5시가 넘어야 버스가 있어, 그녀가 말했다.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다닌다는 것이 말이 돼? 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긴 한데, 버스가 없어. 그녀가 말했다. 이러는 사이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누군가는 대절해 온 택시를 타고,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음료를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음료수 병이 든 박스를 내리고, 빈 병이 든 박스를 그 자리에 올려놓았다. 저분들에게 부탁해 산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나, 매우 비용이 들겠지만 택시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일행이 나를 찾았다. 일행은 오늘 길에 버스에서 봤던 동양인 모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버스가 와. 우리는 그걸 타고 해변 쪽으로 갈 거야.”


자신의 몸집 만한 가방을 든 엄마가 우리에게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내리면 버스는 회차해서 이곳으로 올 거야. 그때 버스를 타면 항구까지 갈 수 있어. 여기 버스 시간은 부정확하고 엉망이야. 하지만 우리가 잘 알아보고 온 것이니 믿어도 돼. 그런데 애기나 섬엔 왜 왔어? 여긴 아테네 사람들의 주말 휴양지일 뿐이야. 다른 섬이 더 아름다워.”


필리핀 출신으로 그리스에서 1년 정도 생활했다는 모녀는 자신들의 나라로 귀국하기 전에 그리스 여행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대면대면하던 표정은 우리가 ‘한국 사람’ 임을 알자마자 호의적으로 변했다. 한국 드라마와 음식에 깊은 애정이 있다는 그녀는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부부의 세계’에 대해,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내가 본 드라마는 한 편도 없지만, 아무튼 모든 관계자분들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15분 정도 지나자 버스가 도착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꼼짝하지 말고 이 버스를 기다리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 버스에 올랐다. 그녀의 딸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거기서 20분쯤 흐른 후 그녀의 말 대로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는 우리가 내민 왕복 티켓을 슬쩍 바라보고 들어가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래, 이렇게 맘대로 안되야 그게 여행인지. 우리를 태운 버스가 구불거리는 섬 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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