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독일'하면 떠오르는 인물들
독일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중앙 집권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30년 전쟁의 비참한 결과의 하나였다…… 독일은 한 사람의 군주 대신에 200 명의 절대군주를 받들게 되었다. 독일 국민은 200이나 되는 궁정의 탐욕스러운 입들을 부양해야만 했다…… 독일의 부르주아 계급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급에 비해서 정치권력에 전혀 참가할 수 없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거의 가질 수 없음이 확실해졌다. 30년 전쟁이야말로 독일을 완전히 파괴하고, 수백 년 동안 대소 전제군주들의 노리개로 전락시켰던 원인이었다.
미국 재무부 장관이자 대통령의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했던 헨리 모겐소 2세는 중부 유럽에서의 완전한 권력 공백이 ‘독일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행정부 내 모겐소의 동료이던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과 국무부 관리들은 전체로서의 유럽이 회복되어 자력갱생하는 데에는 경제적으로 강력한 독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디트릭 올로의 [독일 현대사] 중에서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소비에트는 특별한 행동 계획을 갖고 독일에 들어갔다. 심지어 교전이 멈추기 전에도, 러시아인들은 독일에 소비에트 군정청을 조직했고, 독일이 항복하자마자 군정청은 소비에트 지역에 내각 수준의 독일 부서들을 허가했다. 나치가 아닌 민간 공무원이 각 부서를 주도하도록 했으며, 독일인인 망명 공산주의자들을 이인자로 앉혔다.
- 디트릭 올로의 [독일 현대사] 중에서
그러나 동독의 정치 현실은 헌법의 문구가 아니라 동독 공산주의자들과 모스크바에 있는 그들 동맹이 해석한 대로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처럼 실제로는 헌법에 의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히 동독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토대가 되어야 할 영속성 역시 부재했다. 당 노선이 변경되면 헌법도 함께 개정되었다. 1949년부터 1990년까지 동독에는 각각 구분되는 4개의 헌법이 있었다.
-디트릭 올로의 [독일 현대사] 중에서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도시를 두 개로 분리시킨 그 장벽, 냉전으로 갈라진 세상
그 세상의 상징이 된 혐오와 증오의 베를린 장벽
욕을 했다. 더럽혔다. 침을 뱉었다. 사람들은 그 장벽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라졌다.
사라진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여러분, 헤드윅이 바로 그 장벽입니다.
헤드윅은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습니다.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
당신들이 원한다면 저 장벽도 부숴버려!
아주 복잡한 구역, 여러 해 동안 내가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도로망이 어느 날 사랑하는 한 사람이 그곳으로 이사하자 일순간 환해졌다. 마치 그 사람의 창문에 탐조등이 세워져 그 지역을 빛다발로 분해해 놓은 것 같았다.
– 일방통행로 [응급처치]
나는 여자 친구를 방문하러 리가에 갔었다. 그녀의 집, 도시, 언어가 내게 모두 생소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나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홀로 두 시간 동안 거리를 걸었다. 나는 거리들을 그런 모습으로는 다시 보지 못했다. 집집마다 현관문에서 화염이 솟구쳐 나왔고, 모든 모퉁이에서 불꽃이 튀어나왔으며, 전차는 소방차처럼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 여자 친구는 집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아 전차에 앉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와 그녀, 우리 둘 가운데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상대를 보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 시선의 도화선을 내게 놓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탄약 창고처럼 폭발해버렸을 테니까
– 일방통행로 [무기와 탄약]
제국주의 전쟁은 그 가공할 양상을 두고 볼 때 엄청난 생산수단과 이 생산수단을 생산 과정 속에서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 사이의 괴리(바꾸어 말하면 실업과 판매 시장의 결핍)때문에 생겨난다……. 기술은 강의 흐름이 나아갈 운하를 파는 대신 인간의 흐름을 전쟁의 참호 속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고, 또 비행기를 통해 씨를 뿌리는 대신 화염 폭탄을 도시에 뿌리고 있으며, 아우라를 새로운 방식으로 없앨 수단을 가스전에서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