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넓은 광장에 서 있는 전승기념탑은 매일 한 장씩 뜯는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짜처럼 보였다. 스당의 날을 마지막으로 기념하던 해에 그것을 찢었어야 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스당 전투를 기념하지 않는 해는 단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다. 스당 전투가 끝난 후 남은 것은 오직 퍼레이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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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당 전투가 끝난 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인들이 패배한 이후 세계사는 영광스러운 무덤 속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으며 이 전승기념탑은 그 무덤 위에 세워진 돌로 된 묘비였다. 그리고 그 무덤으로 개선로가 뻗어 있었다.
– 발터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 중 ‘전승 기념탑’]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전쟁이 독일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는 자신이 전쟁을 싫어한다고 말해 왔다(빌헬름 2세와 히틀러도 그러했다). 그러나 1848년의 혁명 후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화당 설립자의 일원이 된 독일인 자유주의자 칼 슐츠에게 ‘2년 안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귀띔한 것은 1867년이었다.
– 스테판 로란트의 [철과 피의 제국] 중에서
어리석은 대중은 정신적 삶에 대한 광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정신적 삶을 확실히 없애버리는 방식은 몸뚱이를 세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허락하기만 하면 그 몸뚱이들은 대오를 맞춰 정렬하며, 집중포화 속으로든 백화점으로든 행군하면서 뛰어든다. 어느 누구도 앞사람의 등 이상을 보지 못하며, 각자는 그처럼 다음 사람에게 모범적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을 남자들은 수세기 전에 전장에서 알아차렸다. 하지만 빈곤을 일렬로 사열시키는 일, 줄 서기는 여자들이 발명했다.
– 발터 벤야민의 [일방 통행로] 중에서
여자들은 손으로 건물을 허물고 벽돌을 한 장 한 장 떼어내서 시멘트를 제거한 다음 ‘폐허 수레’에 실었다. 세면기부터 전선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골라냈다. 맨손으로 집을 다시 세우고 도시를 다시 건설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여자들은 거의 모두 일에 동원되었다.
– 닐 맥그리거 [독일사 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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