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오펜하이머의 연극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가 상영되는 극장의 로비다. 오펜하이머와 힌덴부르크라니, 작가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연극 <더 라스트 리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처럼 유명인이란 성만 말해도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성을 들으면 영국의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곧장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로 오펜하이머라고 말하면 그것이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를 지칭한다는 것을 관객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든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을 지낸 인물이다. 즉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떠올리게 한다.
힌덴부르크(Hindenburg)는 또 무엇인가. 한때는 '하늘 위의 타이타닉'이라 불리기도 했던 나치 시대 독일의 비행선 이름이다. 1937년 5월 6일, 힌덴부르크 호는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 허스트 미 해군 기지에 착륙하던 중 폭발했다. 즉 오펜하이머의 연극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이곳에서 뭔가 거대하고 폭발력 대단한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음울한 예감을 갖게 된다. 세 명의 중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시작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신문 보는 남자가 이미 앉아 있는 로비로 우산을 든 여자가 들어온다. 하지만 유명하고 위대한 작품인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의 마지막 공연일인 오늘도 표는 매진이다. 여자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왔든 말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티켓 판매소의 직원은 혹시 취소된 표가 있다면 연극이 시작되기 10분 전에 재판매될 것이라는 점을 공지한다. 취소표는 많을 수도 혹은 한 장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취소표를 원한다면 질서 있게 줄을 서서 대기하라. 규칙은 없다. 원하는 손님들이 룰을 정해 기다리면 그뿐이다.
우산을 든 여자의 마음속에 가느다란 희망이 솟아난다. 작은 확률에도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여자의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하긴 무작정 취소되는 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정이 다들 딱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오늘은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의 마지막 공연일이다. 즉 오늘이 정말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우산을 든 여자는 굳은 다짐을 하며 취소되는 표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취소표를 기다리는 줄이 좀 이상하다. 자신보다 먼저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문 보는 남자’가 1번으로 취소표를 구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알겠는데, 가방만 놔두고 사라진 여자가 2번? 우산을 든 여자 뒤로 분홍 두건을 쓴 여자와 군인이 로비로 들어선다. 오늘 이 마지막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은 이들 중 누구일까?
이 연극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소냐 캘리(Sonya Kelly)가 202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극장 로비'라는 공간은 절박함과 약간의 분노가 더해지는 순간 투쟁과 암투가 난무하는 정글로 변한다. 양보나 관용은 찾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사정이 가장 절박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총알이 딱 하나 든 러시안룰렛 게임이 벌어진다면 상냥함과 사회적 이미지 따위가 대수일까. 어떤 수를 쓰든 그 한방만 피하면 된다. 누가 맞을지는 알 수 없고, 만일 그게 당신이라면 기꺼이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내줄 수도 있겠지만, 나여서는 안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자라나고 뻗어 나가는 무대를 바라보며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관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연극을 보는 내내 소박한 극장 로비를 전쟁터로 바꿔버리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나 같은 경우, 한 달에도 네댓 번은 찾게 되는 곳이 극장 로비다. 사정에 따라 쾌적한 장소도, 문제가 많아 투덜거리게 되는 곳도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결투가 벌어지는 매력적인 장소로 바뀔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연극의 주제가 주는 묵직함도 좋지만 그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 주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연극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희곡인만큼 등장인물들도 현실적이다. ‘신문 보는 남자’로 규정되는 위선적인 지식인, ‘우산을 든 여자’로 형상화된 소시민, PTSD를 앓고 있는 군인과 유럽 열강들에 의해 차례차례 점령을 당하며 5개 국어까지 할 수 있게 된 어느 난민까지 등장인물들 모두가 친근하고 생생하다. 물론 유럽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우리 실정과 딱 맞는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외신에 관심이 있었다면 쉽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생명을 얻어 무대를 누빈다.
조용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등장해 연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빛을 발하는 우산 든 여자 역의 최희진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신문 보는 남자’ 역의 정승일 배우와의 합이 근사했다. 진지한 이야기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유머러스한 대사 덕분에 100분의 시간이 행복했다. 같은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했던 매표소 직원 역의 강혜련 배우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연극, 그 연극의 마지막 공연 일의 취소표’가 이 연극의 인물들이 손에 넣기 원하는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많다. 피곤한 퇴근길 꽉 찬 버스에 남은 노약자 석이나 몇 번이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통과해야 얻게 되는 사원증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는 몹시 쉽게 손을 넣을 수 있는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노력과 음모, 배신 같은 것들을 통해야 겨우 움켜쥘 수 있는 것이 된다. 똑같이 쏟아지는 폭우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로 이어지는 길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반지하를 빠져나오지 못해 죽음과 연결되는 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이 진행되는 100분의 시간 동안 잠깐도 시선을 뗄 수 없다. 그만큼 이 연극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추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무릇 연극이란 이런 것이지,라고 인사 나온 배우들을 보며 박수를 칠 수 있는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