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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04. 2024

애도의 방식

- 동전의 앞, 뒤를 정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시놉시스도 줄거리도 알지 못한 채 극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손등에 동전을 놓은 남자의 포스터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굴까? 무대에는 작은 나무 소품 하나와 의자가 몇 개 보일 뿐이다. 황량하고 적막하다. '애도'라는 제목에서도 느꼈지만, 아무래도 즐겁고 신나는 연극을 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촉이 왔다.




이 극을 이끌고 가는 인물은 소윤과 동주다. 과거에 벌어진 어떤 일 때문에 소윤은 동주를 만난다. 소윤은 '가만한' 사람이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여야 하지만, 가만하기 위해서는 생존도 내려놓을 때가 있다. 가만하기 위해 생존조차 포기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예사 상처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런 소윤이 동주를 만났다. 동주는 소란한 것을 좋아한다. 소란한 곳에서는 소란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므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소란한 것을 택하는 동주 역시 작고 움츠려든 존재다.


'가만한 사람'이란 표현에서 짐작했지만, 연극이 끝난 다음 프로그램 북을 확인한 후 안보윤 작가의 소설 3편을 각색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윤과 동주는 폭력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애도'할 대상이 생긴다. 하지만 연극의 제목처럼 '애도의 방식'은 동일하지 않다. 어떤 방식이 훌륭하고 그렇지 않다고 가늠할 수 있을까? 입구 포스터의 남자는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각자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림이 있는 쪽이 앞일까? 숫자가 적힌 쪽인 동전의 앞면일까?



다시 말하지만 기쁘고 후련한 작품은 아니다. 신진호 연출의 전작 <카르타고>처럼 암울하고 무겁다. 극을 다 보고 나온 이후에도 찝찝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남는다. 하지만 인물들의 선택을 바라보며 나라면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말처럼 쉽지 않다. 극을 시작하며 이미 소윤이 말했듯 이들은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그저 바쁘게 몸을 움직여 살아남는 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르겠다.


이 연극에는 총 6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동주 역의 최호영 배우를 제외하고 전부 멀티다. 그리고 최호영 배우를 포함해 전부 멋지고 아름답다. 최태용, 김정아, 이은정, 신소영, 김의태 배우 모두 하나하나 호명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찰진 연기 덕에 이따금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순간순간 숨을 돌리지 않았다면 그 무거움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소품이나 자막 없이 극이 진행되지만 서사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없다. 100분의 시간 동안 몰입감이 대단하다. 웃기고 신나는 것이 연극 관람의 목적이라면 절대로 추천할 수 없는 연극이지만, 어둡더라도 진지하게 삶의 어떤 부분을 생각해보고 싶은 분에게는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연극은 10월 1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만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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