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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Nov 30. 2021

턴테이블

우리 동네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어요.


자전거가 놓이는 곳도 ‘주차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파트 단지 안에 자전거들을 한 곳에 모아둔 곳이 있답니다. 여섯 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라 자전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곳에는 대부분 오래된 자전거만 있어요. 아마도 버려진 자전거인 듯해요. 아끼는 자전거들은 각자의 집 앞에 두고 타는 것 같아요. 체인이 빠지거나 녹슬고 낡아서 탈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나는 그 장소를 좋아해요. 산책할 때마다 그곳에 들러 십 수대의 자전거에 두 개씩 달려있는 타이어들의 냄새를 꼼꼼하게 맡아요. 자전거가 건강히 도로를 누비던 시절 그들의 타이어가 밟고 지나갔던 장소의 냄새가 고스란히 그 타이어에 저장되어 있거든요. 타이어를 시계방향으로 찬찬히 훑어 가면 자전거가 지나온 길의 정취가 나에게도 느껴져요. 그렇게 꼼꼼히 타이어 냄새를 맡고 있으면 같이 산책 나온 아빠는 늘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봐요. ‘너는 무슨 냄새를 그렇게 맡니?’라면서 궁금해해요. 아빠는 냄새가 시공간을 담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나 봐요. 아빠도 한번 와서 맡아보라고 권하는데 아빠는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어요.


참, 아빠가 냄새를 맡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일을 하긴 해요. 타이어처럼 검은색 둥그런 것을 갖고 놀곤 합니다. 아빠는 그걸 LP라고 불렀어요. 종이 주머니에 담긴 그 검은색 플라스틱을 꺼내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기계에 놓고 긴 막대기를 움직이면 나무 상자에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해요. 그러면 아빠는 잽싸게 그 나무 상자 앞 소파에 가서 앉아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그게 불편하게 잠에 든 것 같아 보여 싫어요. 가끔 책을 보면서 들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음악은 아빠의 귀로 들어가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럴 걸 왜 틀어 놓는 건가 싶어요. 나는 들어도 별 감흥이 없던데 아빠는 클래식이 어떻고 재즈가 어떻다는 식으로 나한테 설명을 할 때도 있답니다. 참 싱겁죠. 그렇게 아빠가 설명할 때면 나는 이상하게 밥 생각이 나요. 아빠가 하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밥 생각만 나요. 이상하죠?


엄마는 아빠가 저렇게 음악을 듣는 게 싫은가 봐요. 왜 그렇게 판을 사냐고 타박을 하는데 아빠는 당신이 몰라서 그래 이건 단순히 음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를 한답니다.

“여보 LP는 듣는 게 아니야 하는 거지!”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체념 한 듯 헛헛하게 웃고 말아요.

“그래 많이 하슈 그 LP인지 뭔지!”


아빠가 이야기한 것처럼 LP는 듣는 게 아니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빠 말로는 예전엔 사람들이 모두 LP로 음악을 들었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LP를 듣지 않는다고 하고요. 오로지 옛날 사람들만 LP를 가지고 음악을 듣는대요. 그러다 보니 옛날 사람들의 자식들에게 LP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고 해요. LP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죽으면 자식들은 그 LP들을 한꺼번에 팔아버린대요. 허무하죠. 그래도 다행히 그냥 버려지지 않고 LP장수들이 사고 다시 누군가한테 판대요. 아빠도 그렇게 LP를 사 오는 거죠. 그래서 아빠가 사 온 LP에서는 평소에 맡을 수 없는 냄새가 나곤 했어요. 판 냄새를 맡으면 아빠가 달려와서는 뭐 하는 거냐며 ‘쉭쉭~’ 하면서 저를 쫓아내는 바람에 자세히 맡지는 못했지만 그것들이 아주 멀리서 온 물건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는 새로 판을 사 온 날이면 판을 담고 있던 낡은 종이 주머니를 샅샅이 살피곤 했어요. 안에 들어있는 속지도 꼼꼼히 들춰보고 종이 주머니 어딘가에 있을 비밀스러운 흔적을 찾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메모지 같은 것이 나오면 그 메모지에 쓰여있는 글을 한참 읽기도 해요. 얼마 전 아빠가 사 온 갈색 판은 어느 먼 나라 도서관에서 온 것이었어요. 그 안에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모가 담겨 있었어요. 이 판에 담긴 음악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며 이 음악을 들을 때엔 당신의 생각이 나서 행복하다고 남긴 글이었어요. 아빠는 그 메모지를 읽으면서 너무 흐뭇해했어요. 저도 그 느낌을 알아요. 누군가의 과거를 보며 아련히 탐험하는 기분.


판은 대부분 검은색이에요. 그래서 먼지가 눈에 무척 잘 띄죠. 아빠가 판을 꺼낼 때 ‘아이고 이놈에 개털’ 이럴 때엔 조금 긴장이 돼요. 내가 털이 좀 잘 빠지는 편이거든요. 그럴 때면 속으로 ‘나처럼 털이 잘 빠지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고자 한 당사자는 아빠거든요?’라고 변명을 해봐요. 가끔은 판에 긴 털이 얹힌 채로 나와서 괜히 긴장하곤 해요. 분명히 제 털은 아니거든요. 방금 새로 사 온 판이니 제 털 일리는 없는데도 하얀색 긴 털을 보면 괜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마도 전에 그 판을 듣던 사람의 머리칼인 듯해요. 가서 냄새를 맡아보면 어느 노인의 머리칼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빠는 그런 백발이 판 위에 얹어져 있으면 한참을 그 머리칼을 들고 생각에 잠겨요. 그 머리칼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빠의 아빠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나도 조금 슬퍼져요.


나도 타이어 냄새를 맡으면 그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어요. 우리 동네에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이 있다는 이야기 했었나요? 그 자전거 주차장에 우리 오빠가 어릴 적 탔던 자전거가 있어요. 빨간색 작은 자전거인데 지금은 새로 산 큰 자전거가 있어서 타지 않아요. 그 자전거의 타이어에는 나의 가장 좋았던 기억이 담겨 있어요. 언젠가 내가 강아지 호텔에 맡겨졌을 때 그곳에서 만난 남자가 있었어요. 같이 있었던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금세 친해졌어요. 예전에도 같은 시기에 호텔에 있던 적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며칠 뒤 호텔에서 돌아오고 나서 배가 많이 불러 올랐는데 그때 엄마 아빠의 난감해하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두 달이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저녁 나는 일곱 마리의 강아지를 낳았어요. 나는 강아지를 낳기 직전에도 내 배가 아픈 것이 그날 오후 아빠 엄마 몰래 먹은 음식물 쓰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새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는데 배우지도 않았음에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 나는 탯줄을 끊고 양막을 핥아 벗겨줬어요. 강아지들은 너무 이뻤어요. ‘빼액 빼액’ 우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눈을 뜨고 걸음마를 하고 나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게 엄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의 배에는 열개의 젖이 있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분홍색이었던 나의 젖꼭지는 아이들이 달려들어 볼이 꺼져라 빨아대는 바람에 검게 늘어났습니다. 아프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아가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어요.


아가들이 태어나고 40일 정도 지났을 때 아빠가 아가들을 데리고 나간다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한번 온 가족이 바깥 구경을 한번 하자’며 강아지를 상자에 담았고 오빠들도 같이 따라나서겠다면서 신이나 방방 뛰었습니다. 나도 신이 났어요. 단지에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오빠가 일곱 마리의 아가들을 안고 그곳에서 함께 뛰어놀았어요. 작은오빠는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나왔는데 그 자전거가 행여 아이들을 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나요.


다음날 우리 집에는 손님이 많이 찾아왔어요. 그분들은 저도 많이 이뻐해 주었어요. ‘네가 도리구나. 고맙다.’라면서 간식을 주는 분도 계셨어요. 하루 종일 손님들 맞느라고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십 수 명의 손님이 왔다 가니 집에는 정적과 함께 다시 아빠와 엄마, 오빠들과 나만 남았어요. 아가들이 손님들을 따라간 것 같았어요. 갈 때가 된 거니까 간 것이겠지 싶었어요. 둘째 오빠만 계속 울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은 아기들이 보고 싶답니다. 그럴 때면 오빠가 지금은 타지 않는 빨간색 자전거를 찾아가요. 엄마와 아빠, 오빠들과 일곱 아가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놀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있어요. 타이어의 주름 사이사이에는 그때의 햇살과 바람, 나뭇잎의 냄새와 웃음소리가 스며들어있어요. 언제 다시 맡아도 질리지 않는 냄새예요. 언젠가 아빠는 나에게 LP 소릿골이라는 것이 파여있어 음악이 그곳에 저장된다고 설명해 줬어요. 아마도 자전거에도 냄새를 담는 골이 있는  같아요. 소릿골도 많이 들으면 닳는다던데, 냄새 골도 그런  같아서 걱정이에요. 요즘은 냄새가 예전 같지 않아요.


아무튼 우리 동네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어요. 내 추억이 담긴 자전거 주차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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