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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an 14. 2022

감옥


 사람이 말이야 죄를 지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어있어.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라 그거야.


 그런데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런 곳에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거지.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없었다 그거야. 답답했어. 누가 나를 어떻게, 무엇보다 나를 왜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너무 긴 시간을 이곳에 있었나 봐. 이제는 이런 독백도 지겹다. 참!


 여긴 정말 컴컴해.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단 말이야. 또, 얼마나 적막한지. 상상을 해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을.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데 있을 수 있겠느냐고. 뭐 그렇다고 내가 미쳤다는 건 아니야. 여튼 이렇게라도 주절거리지 않으면 미쳐버렸을 거라는 거지.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이유 없이 이곳에 왔을 리 없어. 이유는 모르겠고 우선 나를 이렇게 만들 법한 인간들을 떠올렸어. 그 뭐냐, 영화에서도 나오잖아. 최민식이 사설 감옥에 갇혀 자기가 상처 입혔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올리는 장면 말이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누가 날 이곳에 가뒀는지를 한참을 고민했다고. 참,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영화는 엉터리야. 십오 년을 갇혀 있다 나왔는데 복수를 꿈꾼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런 곳에 갇혀서 한 달만 지나 보라고. 감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아. 십오 년 동안 복수의 감정 하나로 산다고? 택도 없는 소리지. 고독은 물과 같아. 색색의 설탕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모든 감정이 녹아 경계가 없어지고 만다고.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망 이런 게 다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한 달만 있어 보라 그거야. 과연 복수심이 남아있기나 하는지 말이지. 감정은 상황에 기반한다는 걸 알아야 해. 이렇게 고독하게 갇혀 있으면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말이야.


 여튼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나도 분노나 억울함보다는 호기심만 남아있어. 누가 나를 이곳에 잡아넣었는지 그런 호기심 말이야. 그럴법한 사람을 떠올리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추려졌는데. 좀 뭐랄까. 쪽팔리긴 하는데 추려보면, 아버지가 회사를 물려주실 때 내가 쫓아낸 형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 공장에서 일하다 암으로 고생하던 직원들. 다른 병에 걸려 죽어가던 그 직원들의 부모들. 지분 증여 문제로 불거진 문제로 회사와 다투던 사람들. 나를 이곳에 가둘만한 사람들은 제법 떠오르더란 말이지. 아니면 회사에 삶을 바치다 결국 투병 끝에 죽었던 직원의 가족들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그렇게 죽었던 직원들 부인 중에는 회사 앞에서 제법 과격했던 부류들도 있었거든. 일 밖에 모르던 남편이 일에 매달리다 병을 키워 암이라는 것을 알고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떴다고 하면서 자기 남편이 어찌나 원통해하던지 죽기 전날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더라면서 소리를 하면서 악악 질러대는데 나 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라고 안 힘들겠어? 나는 더 힘들다고. 나도 회사를 위해 내 삶을 던졌다 이거야. 그렇게 회사를 이끌었으니까 수많은 직원들이 먹고사는 거라고. 그걸 알아야 해. 누구에게나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는 거지.


 이런 생각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어느 순간에는 가족도 의심이 되기 시작하더란 말이야. 특히 애들 엄마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긴 했어. 뭐 자식들이야 나를 워낙 좋아했으니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고. 근데 애들 엄마는 좀 그랬어. 우리 사이가 사실 한 십 년 전부터는 워낙 안 좋았으니까. 뭐 혹시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몇 년 전에 하필이면 내가 다른 여자랑 잤던 걸 누군가가 알리는 바람에 사이가 더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해. 사실 잘 모르겠어 그 여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전엔 우리 사이도 좋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 근데 어느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더라고. 언젠가는 날 보고 ‘당신은 결국 당신의 탐욕과 가족을 맞바꿨어.’라더군. 기가 찼어. 만일 회사가 없었으면, 회사가 이렇게 크지 않았으면 자기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텐데.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살게 해 줬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런 거야. 내 참 한심해서. 뭐 이제는 남남이나 다름없어. 서로한테 기대도, 화도 없지. 심지어 그 사람은 내가 다른 여자랑 잤다는 걸 알았을 때도 화를 내지도 않더라고. 오히려 평소와 다른 느낌조차 들지 않더라니까. 괜히 나만 긴장했던 게 억울할 정도로.


 한동안 나를 가둘 사람의 리스트를 추리고 추렸었지. 그렇다고 딱히 시원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이 없더라고. 지금 생각으로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 이곳에 온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 결론이야. 내가 큰 잘못 없이 살았던 것이 주요 이유지만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 장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해. 완벽에 가까운 어둠과 적막함. 이런 공간을 만들 정도라면 단순한 원한 관계는 아닐 거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집중한 것은 이 공간이다 그거야. 대체 공간의 정체는 뭐냐는 거지.


 완벽한 어둠. 완벽한 적막. 그 때문인지 모든 감각이 차단된 느낌이 들기도 해.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이게 말이 되냐는 거야 이런 상황이. 여튼 이게 내가 겪는 상황인데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건 그만해야겠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거야.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으로 가는 길이라는 거지. 그래서 난 누가 나를 이곳에 집어넣었는지는 제쳐두고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궁리하기 시작했어. 마지막 내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 했는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 너무 평범한 하루였던 것 같아. 그 있잖아. 너무 평범해서 투명한 느낌의 하루. 아무리 되돌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하루. 여튼 머리를 쥐어짜고 쥐어짜서 생각해낸 마지막 기억은 이래.


 그 마지막 날이 아마도 토요일이었을 거야. 내가 회사를 나가지 않았던 기억이 나니까. 뭐 회사야 평일에도 잘 가진 않았지만, 그날은 보고도 올라오지 않았던 걸로 봐서 토요일이 틀림없어. 아침에 어깨가 너무 결려서 일어났던 기억도 나고.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 오늘은 완전히 쉰다!라고 마음먹었던 것도 같아. 그러면서 일층 정원을 보는데 꽃이 참 이쁘게 피어있더라고. 정원 관리가 제법 잘 되어있어서 관리팀한테 수고했다고 이야기했고 그 꽃들을 한참 넋 놓고 봤던 걸로 기억이 나. 강아지를 무릎에 앉히고 봄바람을 맞으며 말이지. 그래 그때가 아마 5월 중순 정도 되었을 거야. 그래, 점심은 빵을 먹었어. 크림빵이랑 단팥빵이었을 거야. 사람들은 내가 고기에 미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뭐 한 때는 그랬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잘 먹지 않는다고. 여튼 그렇게 저녁이 됐는데 어깨 통증이 명치로 내려와 있던 걸로 기억이 나. 헬스케어 팀 호출하고 30분이 넘어서야 팀장이라는 놈이 어슬렁 들어오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그렇게 할 거면 그만두라고 했던 게 마지막 기억이야. 이후 아무런 기억이 없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는 거지.


 이 기억을 끄집어내느라 얼마나 힘들던지. 여튼 그 기억을 토대로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 시작했어. 누가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왔는지에만 집중해서.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어. 뭐 의심이 되는 것이 있는데, 아마 그건 아닐 거야. 그러면 안돼.


 여튼 그 의심되는 가설은 ‘락트인 증후군’이라는 건데, 영어로 Locked-in. 갇힌다는 거지.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 가설에 불과하니 너무 단정 짓지는 말자고. 아무렴. 아, 락트인인가 뭔가를 어떻게 아느냐고? 예전에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그 친구가 52년 생이니까 나 보다 좀 어린 친군데 불란서 잡지 중에 엘르 있지? 그 잡지 편집장인가 그랬거든. 그 친구가 한 10년쯤 전에 운전하고 가던 중에 뇌졸중이 왔다더라고. 운전 도중에 말이야. 어째 살긴 했는데 전신 마비가 와버렸다는 구만. 왼쪽 눈인가? 거기를 빼놓고는 싹 다 마비가 왔다고 하더라고. 왼쪽 눈 움직이는 거 말고는 온몸이 전부 감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안되더라 그거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 더 기가 막힌 건 그 친구가 남은 왼쪽 눈으로 글자판을 보고 눈을 깜빡여 책을 썼다는 구만. 하여간 글쟁이들은 대단해. 그 상황에서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그 친구는 한쪽 눈이나마 남아 세상과 소통을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 양반이 쓴 책을 봤어. 뭐 읽어보니까 눈 말고도 귀도 들리고 맛도 보긴 한 것 같더라고. 여튼 대단하긴 대단해. 아무튼 이 이야기를 떠올리자 내 가설의 한 귀퉁이가 딱 맞아 들어가더란 말이지. 그 순간 나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마주해야 했어. 그 책에서 그 불란서 양반은 20일 정도 지나서 깨어나 보니 자기가 그 모양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20일 또는 그 시간 전후하면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생기더라고.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만일 이미 깨어난 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었어. 만일 내가 이미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상태인데 왼쪽 눈 마저도, 귀와 눈을 포함해 모든 감각이 끊어져 있는 거라면 어쩌냐는 거지.


 일단 최악의 상황은 고려하지 말자는 것이 지금의 나의 결론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잖아. 실제로 내가 이곳에서 생각을 시작한 이후 줄곧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직 잠들어있는 것인지 모호하긴 해. 뭐랄까 수면과 각성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이랄까. 눈을 뜨고 활동을 해야 잠에서 깬 것일 텐데, 그게 아니니 정신이 들었다가도 다시 정신을 잃고를 반복하는 거지. 감각이 없으니 정신 상태를 규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더 미치겠는 건, 감각이 없으면 시간도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건데. 여튼 지금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내가 지금 깨어있는 것인지 잠들어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그리고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길이 없어.


 그저 간절히 빌뿐이야. 내가 깨어난 것이 아니기를. 만일 최악의 상황이라면, 락트인 상태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깨어났다는 걸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막막해. 어쩌면 내 뇌파를 보고 내가 이미 깨어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몰라. 밖에서 나를 깨워줄 방도를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야지 머. 만약 내가 깨어있음을 알지 못하고 호흡기를 떼거나 한다면, 이건 정말 큰일인데 말이지. 나를 깨우려고 노력은 하고 있겠지? 알 수가 없어, 그 점이 가장 무서워. 혹시 내가 몇 년째 이렇게 지냈던 것이면 어쩌지?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흐른 걸 수도 있겠다 싶어. 요즘 들어는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 버거운 느낌이야. 아휴 이 새끼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누가 책임자인지 가물가물해.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서 깨어나면 누구를 혼내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아. 이거 참 미치겠구먼.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말이야. 제법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은데도 이 적막과 어둠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정말 지긋지긋한 감옥이야.






 사람이 말이야 죄를 지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어있어.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라 그거야.


그런데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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