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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Feb 24. 2022

아빠의 사랑이 흐르도록 방문을 열어두렴

이토록 다정한 순간에

아빠, 밤에 왜 그렇게 방문을 자꾸 열어?”


중2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난 가끔 아빠에게 불평을 쏟아놓곤 했다. 자주 때론 가끔 아빠와 방문을 여닫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는 아빠.  


난 보란 듯이 웃는 아빠 앞에서 내 방문을 쾅! 닫으며 소란스럽게 중2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아빠가 나의 생활을 감시한다거나 참견을 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늦은 밤, 내가 잠들면 살짝 방문을 여는 게 다였다.

4남매 북적이는 집 안에서 내 방에 콕 박혀 혼자의 시간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썼던 시절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늦은 밤이면 어김없이 다가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가곤 했던 아빠.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이해할 수 없던 아빠의 사랑법에 불만했다가, 포기했다가, 무감각으로 흘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문득 방문을 열곤 했던 아빠의 의도가 궁금했다.

어릴 땐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아빠의 사랑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흐릿한 짐작이 스쳤기 때문이다.


“아빠, 그때 말이야. 왜 방문을 자꾸 열었어?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웃기만 하고. 왜 그랬던 거야?”

어느새 흰머리 그득한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그때와 변함없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빠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려고. 방문을 꽉 닫아두면 사랑이 흐르지 못할 거 아니냐.

사랑은 둥둥 떠다녀. 그러다 작고 여린 아이들에게 스며들지. ”  

   

30년 만에 듣는 아빠의 뭉클한 변명 앞에서 난 그만 울컥 목이 메고 말았다.

“난 날 감시하는 줄 알았지. 미리 얘기해주지 그랬어.”

몽글몽글 맺힌 눈물을 몰래 닦으며 아빠에게 푸념했다.     


그땐 얘기해도 잘 몰랐을 거야. 적당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거거든.”     


그런 거였다.

깊고 특별한 아빠의 사랑이 스며든 존재. 그게 바로 나다.

쓰다듬고 가만히 붙잡아주고 기다려주던 아빠.


아빠가 우리에게 준 것들을 떠올렸다.

- 모두가 잠든 밤 방문을 열어 둔 채 사랑 흘려보내기

- 귀, 코, 볼, 손, 발...자간자간 깨물어 스킨십하기

- 질문하며 사랑 확인하기(이를테면 아빠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나요?(리듬감있게) / 자전거 타는 아빠가 좋아, 자가용 타는 남의 아빠가 좋아? 등등)

- 공부할 땐 함께 외치기 / 정신일도! 하사불성! (精神一到 何事不成 : 정신을 한 곳으로 하면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않으랴는 뜻)


자루에 담으려면 한가득인 아빠가 우리에게 준 것들...


엄마가 된 난 그런 아빠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훗날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깨닫게 될 어떤 이야기를 품은 채로.  

        

아이들이 잠든 밤. 큰 녀석은 벌써 사춘기인지 문을 꼭 닫고 만화책을 품에 낀 채, 작은 녀석은 이불을 걷어차고 훤하게 배를 들어낸 채 잠들어 있다.    


아빠처럼... 이야기를 머금고 방문을 살짝 열어둔다.

그때가 될 때까지 ‘쓰다듬고 기다려야지’라고 가만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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