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위함이 아닌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방식
2018년 4월 14일.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이맘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게 있어 가족의 죽음은 처음이었고 상복을 입고 가족들과 장례를 치르며 진정으로 상실과 애도를 알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7남매를 낳고 기르신 덕분에 이모와 삼촌, 이모부들과 사촌들까지 대가족인 집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신발을 정리하고, 문상 오신 손님들을 안내하고 어른들의 잔심부름을 처리하는 일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틈틈이 오랫동안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댁과 우리 집은 도보 10분 거리에 가까이 살았다. 큰 외삼촌 가족들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계셨는데 나랑 동생 또래의 사촌 동생들이 늘 있으니 우리는 방과 후 마당이 있는 그 집에 기거하다시피 시간을 보냈다. 큰 사거리 코너 평상 있는 집이라 학교 가는 길 사촌들을 만나 함께 가기도 하고,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셔서 집에 동생과 남게 될 때면 저녁 먹으러 자연스럽게 가곤 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키가 크신 편이셨고 우리가 하는 부탁에 대체로 온화한 미소를 띠며 순순히 들어주시곤 하셨던 분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로 부고 소식을 듣는 순간에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의 사진을 둘러싼 국화와 화환들, 무엇보다 언제나 유쾌했던 이모들이 그 앞에서 눈물을 쏟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손자 손녀들이 워낙 많은 집이라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은 없다. 다만 엄마가 종종 말씀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성향, 식성이 나와 놀랍도록 겹칠 때 그의 조각들이 내게 이어져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아 나는 진 씨 집안의 손녀구나. 할아버지처럼 나도 백발이 잘 어울리는 할머니면 좋겠다. 그때도 할아버지처럼 고구마를 좋아하고 있으려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모와 삼촌들이 모두 모여 각자 자신의 아버지와 나눈 특별한 기억들을 회상하는 시간이었다. 예를 들어, 큰 이모는 맞이로서 아버지에게 받은 첫 정에 관한 경험, 엄마로부터는 중학교 졸업식 때 함께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 등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7남매가 한 명씩 돌아가며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던 나는 장례식에서 저래도 되나 싶어 생경하기도 했지만 팍팍한 현실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낭만을 잃지 않으려 애쓰시던 할아버지를 애도하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장지는 고향이 아닌 가족들의 거주지와 멀지 않은 수목원에 모셨다. 가까워야 자주 찾게 된다는 지극히 자식들의 편의에 맞춘 결정이었지만 덕분에 나무에 연둣빛이 올라오고 봄내음을 머금고 있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가족들은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살아생전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간식거리를 사들고 수목원으로 향한다. 정말 딱 날씨 참 좋다 하는 계절이 되면 나무 밑 한 자리에 계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죽음으로 인해 사랑했던 이를 잃는다는 건 슬픔과 상실이라는 감정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나의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 감정은 애틋함, 그리움, 미웠던 모습은 거르고 좋은 것만 남겨두는 미화로 완성된 포근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올해 4월은 유독 할아버지를 문득문득 자주 떠올린다. 그의 따뜻했던 미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