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이 함께 만들어 낸 걸작, 픽사
픽사의 이름을 널리 알린 건 <토이 스토리>입니다. <토이 스토리>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영화사적으로 이야기 이상의 큰 성취를 거둔 영화입니다. 컴퓨터로 만든 첫 3D 장편 애니메이션이거든요. 그래서 픽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픽사의 이야기가 지닌 예술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술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픽사 스토리>는 과학과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눈부신 성과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픽사의 성공을 일궈낸 주역 세 사람을 소개합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픽사의 기술을 담당한 과학자 에드 캣멀, 픽사의 사업을 담당한 기업가 스티브 잡스. 픽사의 예술을 담당한 감독 존 라세터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픽사를 일궈냈는지 살펴볼까요?
존 라세터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만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고, 디즈니를 동경했죠. 디즈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디즈니를 무척 좋아했으니, 디즈니에 입사한 건 그로서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 때 마침 최신 컴퓨터 기술을 사용한 영화 <트론>을 접하게 됩니다.
존은 컴퓨터 그래픽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컴퓨터 그래픽과 전통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디즈니는 그의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디즈니의 반응은 컴퓨터 기술을 두려워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도 연결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애니메이터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기술이 인간을 도와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학자 애드 캣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죠. 애드는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 자기에게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물리학과 컴퓨터 과학으로 자신의 전공을 바꿨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컴퓨터 기술 중에서도 영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힘을 쏟게 됩니다. 평면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옮기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이죠.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는 애드의 제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봤습니다. 기존 기술의 한계로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이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된 거죠. 애드는 이후 루카스 필름에 합류하여,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많은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존 역시 컴퓨터 기술에 부정적이던 디즈니를 떠나 루카스 필름에서 애드가 일하던 부서에 합류하게 됩니다. 존이 합류하기 전까지 그 부서에는 과학자들만 있었습니다. 즉, 과학자들로만 이뤄져 있던 컴퓨터 그래픽 부서에 실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처음으로 합류한 거죠. 그 전까지는 과학자들의 막연한 느낌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이제는 존이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러니까 보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발전하게 됩니다. 픽사의 전통이 처음으로 확립된 순간이죠. 예술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그렇게 개발된 기술이 예술의 발전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는 굉장히 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했죠. 루카스 필름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큰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존과 애드는 픽사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투자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사실 애니메이션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컴퓨터로 하려는 게 시대를 앞서가는 일이라는 걸 알아보는 눈이 있었죠. 잡스는 그렇게 픽사의 투자자가 됩니다. 자본을 확보한 픽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단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만들어진 단편이 바로 <룩소 주니어>입니다. 픽사 영화 오프닝에 항상 등장하는 요 램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단편 작품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그들의 기술도 조금씩 향상됐습니다. 그렇게 향상된 기술로 픽사는 조금씩 돈을 벌었습니다. 광고 그래픽 작업도 했고, 디즈니와의 협력을 통해 <미녀와 야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픽사는 기획안을 들고 디즈니를 찾아갑니다. 이것이 <토이 스토리>를 향한 도전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픽사에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즈니의 피드백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과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확실히 구분짓고 싶어했습니다. 노골적이고, 씨니컬하며, 성인 유머에 가까운 것을 요구했죠. 디즈니의 피드백을 무조건 수용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주인공 우디가 무척이나 꼴보기 싫은 캐릭터가 되어 버린 거죠.
문제의식을 느낀 픽사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모두 엎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토이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픽사는 이 성공을 발판으로 주식회사로 도약하죠. 하지만 그 성공이 거대했던 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불안함도 커졌습니다. 이 성공이 실력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건지 알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픽사의 두 번째 영화 <벅스 라이프>도 흥행에 성공합니다. 흥행 그 자체도 대단하지만, 흥행 스코어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건 바로 픽사의 도전 정신입니다.
그들은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낸 기술력에 안주하는 대신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군중씬을 구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장대한 군중씬을 만드는 것에 성공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나가는 픽사의 정신은 이후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털 한 올 한 올의 표현을 이뤄냈고, <니모를 찾아서>는 바다 속 여러 부분에 대한 질감 표현을 해냈죠.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던 장면들이 사실은 엄청난 기술적 성취였던 겁니다. 이러한 픽사의 도전은 기술뿐만 아니라 예술 영역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2>에 등장하는 슬픈 장면 기억하시나요? 아이의 사랑을 받던 장난감이 버려지는 장면인데요.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 이렇게 슬픈 장면이, 그것도 대사 한 마디 없는 몽타주 시퀀스로 들어간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해요. 이 장면은 그 도전이 과감했던 만큼,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 장면이 되었습니다.
픽사의 도전은 회사 경영 차원에서도 계속 됩니다. 진정한 스튜디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존 한 사람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되죠.그래서 존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감독을 맡기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피트 닥터 감독의 <몬스터 주식회사>입니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이후 <UP>과 <인사이드 아웃>을 만들며 이름을 날리죠. <몬스터 주식회사> 이후 앤드루 스탠턴 감독의 <니모를 찾아서> 역시 픽사의 자체 기록을 경신하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앤드루 스탠턴 감독 역시 이후 <월e>와 <도리를 찾아서>를 감독하며, 픽사에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픽사는 단순히 예술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기술과 예술 그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회사입니다. 그 밸런스를 참 잘 잡는 회사 같아요.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하는 만큼 자신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무척 클 것 같은데, 픽사가 만드는 영화를 보면 기술을 뽐내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도 훌륭한 영화들이거든요. 그 밸런스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그래픽을 두려워 할 때 픽사는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변화의 길목에서 픽사가 취한 태도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지금 이 시점에
충분히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픽사 스토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