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시립 월전 미술관

by 은예진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는 나는 오후의 시간을 이용해 근무지에서 가장 가까운 시립 미술관인 이천의 월전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천의 시립 미술관은 월전 장우성 선생이 평생의 화업을 공익 화하기 위해 설립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통해 기증받은 1,532점의 작품과 소장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전 장우성 선생은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 한국화의 발전을 이끈 한국화의 대가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한 가지만 알면 그가 어떤 화가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건 바로 1953년 아산 현충사에 봉안된 충무공 영정을 그가 그렸다는 것이다. 장우성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충무공의 영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정에서 충무공은 문무를 겸비한 강직한 장군의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선생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진 화가 김은호에게 사사했으며 서울대와 홍익대의 교수를 지냈고 충무공의 영정을 그릴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수많은 상을 받고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94세까지 장수했다. 조용헌 교수는 그래서 월전 선생이 오복을 누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빛의 이면에는 어둠도 있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찬양한 친일 논란이 있는가 하면 후손들이 100원짜리 동전에 있는 충무공 영정에 사용료를 받겠다고 소송했다가 패소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주초에 눈이 내리고 몹시도 바람이 불던 날씨는 주말이 되자 20도까지 오르며 변덕스러운 삼월 날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설봉공원 내에 있는 월전 미술관을 가기 위해 우회전을 하자 설봉저수지의 윤슬과 벌써 반팔을 입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였다. 곧 저수지 주변을 둘러싼 벚나무가 만개하면 공원이 분홍빛으로 물들지 싶었다.


월전 미술관에서는 세 개의 전시관에 각기 다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띠 그림전 ‘뱀巳’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의 주인인 월전 선생의 뱀 그림을 시작으로 권해승, 김봉경, 김태형, 박경묵, 윤진초, 오아, 이승미의 뱀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혐오와 외경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뱀은 예술의 소재가 되기 좋은 대상이다. 사람들은 뱀을 지독히도 무서워하지만 태몽으로 뱀꿈을 꾼다. 나는 언젠가 초록 뱀이 발목을 무는 꿈을 꾸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에로틱한 상징은 기혼자가 꾸어서는 안 될 꿈처럼 느껴졌다.


화가들의 뱀은 아름다웠고 섬세했으며 손이 무척이나 많이 가는 대상이었다. 비늘 하나하나를 가는 붓으로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이 상상되었고 그들의 팔목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대부분 예술은 천재의 영역으로 보지만 예술의 성취는 끈기와 노력이다.


영감은 순간적이지만 그 영감을 구현해 내는 과정은 예술가의 육체를 갈아 넣는 것이다. 그건 천재적인 재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념하지 않고 견디는 집념으로 하는 것이다. 뱀은 끈기가 아주 많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화려한 뱀의 전시실을 지나 이 층으로 올라가자 ‘선線과 색色’ 전시가 있었다. 미술관 소장 중국 서화전시였다. 그러니까 이 작품들은 월전 선생이 생전에 모은 중국 서예와 회화 작품인 것이다. 오복을 누렸던 선생은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걸 기증해서 단돈 이천 원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셨다.


18~19세기 청대의 작품들인데 특이한 것이 오십이 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약력의 작가들이 눈에 뜨였다. 작품보다 작품 설명이 더 감동 적이다. 평균 수명이 오십을 넘기기 어려웠던 시절 지천명 이후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설명에 위로받는다. 우리 아직 한창때지요? 오십 넘어도 시작할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 전시장이 월전 장우성 선생의 그림이 있는 전시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신문의 만평처럼 시사적인 풍자 그림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쥐 그림 옆에 월전 노인이 장난으로 그렸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것으로 봐서 선생은 지금 누군가를 비웃으며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눙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전시실에서 나는 지금까지 문인화가 한 번도 대상으로 삼은 것을 본 적 없는 특이한 그림을 만났다. 제목 하여 ‘단군일백오십대손’. 젊은 여자가 한 손에 핸드폰을 다른 손에 담배를 들고 배꼽이 드러나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채 거만하게 서 있는 그림이다. 그 그림에 월전 선생이 여자를 흉보는 내용으로 가득한 시를 적고 신사년 한창인 봄 반벙어리 월전 노인이 한벽원에서 그리니 나이 90세 때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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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노인인 월전 선생은 더벅머리 붉은 루즈에 색안경을 쓴, 담배를 연거푸 피우고 커피도 여러 잔 즐기며 가계를 묻는 말에 단군 백 대손이라 답한 미스 한이 가히 충격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하나도 충격스럽지 않은 모습의 여자에 충격받는 선생의 개탄이 재미있어 히죽 웃고 말았다. 그리고 슬쩍 선생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도 다 한때랍니다.’


나는 ‘단군일백오십대손’이 제작된 2001년보다 삼사 년 전인 1990년대 후반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던 나는 서너 살 된 딸도 있는 아기 엄마가 미친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얼룩말 무늬가 있는 반짝이는 소재의 원피스였는데 신축성이 좋아서 몸에 달라붙는 옷이었다. 어깨와 목이 모두 드러나는 홀터넥 스타일에 치마 부분의 트임도 긴 옷을 입고 머리는 히피펌을 한 채 아이 손을 잡고 다녔다.


그때 당시를 생각하며 온라인 게시판에 미친 옷의 추억이라는 글을 썼더니 별별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의 추억이 댓글로 등장했다. 맨몸에 조끼만 입고 머리에 두건을 한 채 찢어진 핫팬츠에 가죽 부츠를 신고 남의 결혼식장에 간 이야기부터 다양했다. 그리고 그런 옷차림으로 돌아다녔던 자신을 잡아다 가두고 싶다고 부끄러워했다.


‘그러니 말입니다. 단군 백대 손이라고 센스 있게 말할 줄 알았던 미스 한도 지금쯤은 젊은 날의 자신을 잡아다 가두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월전 미술관 뒤편으로 선생의 작업실을 구현해 놓은 기념관이 있는데 선생의 밀랍인형이 꼿꼿하게 서 있다. 인형에게서도 이렇게 꼬장꼬장한 기운이 풍기다니 놀라울 일이다. 그런 90세 노인이 미스 한을 보고 개탄한 것이 나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월전 미술관에 현재 전시된 선생의 그림은 모두 풍자화뿐이어서 그분의 성격은 짐작이 가나 화풍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 다음 기회에는 그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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