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주는 혜택 중에 내가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은 '시립'이라는 말이 붙은 시설이다. 시립 중에 최고는 도서관이어서 그 도시의 수준을 나는 시립 도서관으로 평가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고장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도서관은 시립도 아니고 도립이었으며 시장통 끝자락에 위치한 주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공부하다 쉬러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벤치 주변은 더러웠으며 시설은 낡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름만 크고 규모는 작은 이 도시(?)는 서울 전셋값이 올라가면서 외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사람들로 인구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드디어 시립 도서관이 생겼고 빠른 속도로 읍면동에 도서관이 늘어나서 현재는 작은 도서관포함 16개의 도서관이 생겼다. 서울처럼 멋진 도서관은 아니지만 나름 신경 쓴 면면이 보여서 숲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올라 도서관 입구를 향할 때면 살짝 들뜨는 기분이 된다.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학교 도서관 이용을 너무 열심히 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는다고 담임한테 혼났던 나는 도서관이 좋으면 도서관 사서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걸 미처 몰라 마음속에 아쉬움을 품고 산다. 그 선생님이 혼을 내지 않고 너는 문헌정보학과에 가야 하겠구나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서관이 풍족해져서 더는 아쉬운 것이 없어지자 시립의 다음 수혜인 '미술관'이 떠오른다. 그림보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음악보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 나는 미술과 음악도 책으로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듣고 있는 오디오북도 전영범의 삶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 '당신을 위한 클래식'이다. 이런 식으로 즐기면 잡지식은 늘어나지만 정작 콘텐츠 자체에 대한 심미안은 늘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시립 미술관은 그 고장 출신의 화가가 사후 기증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어쩌면 시청에서는 그림을 기증받고 더 난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림 때문에 미술관을 지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언제까지나 나의 뇌피셜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고장에는 그림을 기증한 화가가 없어서인지 시립 미술관이 없다. 그래서 틈틈이 다른 고장을 방문할 때 도서관 다음 타자인 미술관 그중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시립 미술관 위주로 방문하고 그 이야기를 기록해놓을까 싶다.
이제 여행을 가면 목표가 생겼다. 시립 미술관을 통해 그 도시의 면면을 살펴보자. 그림을 봐도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림을 가지고 엉뚱한 소리나 해보자. 그림보다 그림 보는 내 이야기 말이다. 이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그러다 보면 그림 자체에 대한 감상문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일단 목적이 생기면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동안 미술관에 가면 그림 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는 조금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접근성이 좋아서 시립 미술관이지만 기회 되면 다른 미술관도 가볼 수 있겠다. 시립을 너무 애호한 나머지 딸도 시립대학교에 보낸 나도 가끔은 큰돈 내고 미술관대신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기도 한다. 그 가끔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해 볼 예정이다. 자주 가지 못해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