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립미술관

by 은예진

직장에서 제일 가까운 이천 시립 미술관을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양평군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물 맑은 양평은 수도권의 식수원인 팔당호 때문에 개발이 제한적이어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카페나 식당이 많은 북한강 근처보다 농지가 있는 골짜기 마을에 들어가 보면 양평이 주는 아늑함과 순박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양평은 예술인들이 선호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양평군립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예술가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2위라고 적혀있는데 그럼 1위는 어디일까? 1위는 통영쯤 되려나 생각하면서 AI에게 물어봤더니 엉뚱하게 2위는 부산, 1위는 서울로 나온다. 아무래도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예술가 선호도 2위라는 말도 AI의 부산, 서울도 그다지 근거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2위의 진위는 몰라도 양평은 확실히 예술가들이 선호할만한 곳임은 틀림없다. 양평에 가면 나도 이런 곳에 별장이나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니 말이다.


차는 퇴촌을 지나 강하면으로 접어들었다. 하늘은 맑은데 눈발이 날리는 봄날이다. 누군가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니 분홍색 벚꽃이 만개한 곳에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매화도 아닌 벚꽃잎과 어우러진 눈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에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길에 서 있는 벚나무에 꽃이 피려면 아직도 멀어 보인다. 이곳은 서울보다도 봄이 늦게 오는 산골짜기인 것이다. 드라이브하기에 안성맞춤인 길을 사십 분쯤 달려 양평군립미술관에 도착했다. 도서관 등 군립문화시설과 공영주차장이 같이 모여있는 가장자리에 미술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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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두 가지로 ‘한국 현대 구상미술의 단면 ; 사실과 재구성 전’과 ‘新소장품전’이었다. 미술관은 굉장히 단순한 구조인데 아트샵이나 카페도 없이 오직 전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실이 있는 1층과 2층은 이음길로 설계되어서 관람 동선이 끊이지 않고 연결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입장료는 일반 1,000원 양평 군민은 무료다.


‘신소장품전’은 전시 작품 수가 적고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스치듯 지나갔다. 본격적인 관람은 ‘한국 현대 구상미술의 단면’에서 시작된다. 양평군립미술관의 학예실장 이홍원은 기획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실주의적이고 구상주의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구상회화는 겉으로 보면 모방과 재현을 기조로 하는 형식이지만, 작가가 재구성하고 창조한 허구와 낯선 형태의 결합을 통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를 ‘사실적 재구성’이라 명명하겠다. 기존의 일반적인 형태와 작가의 계획적이거나 또는 무의식이 만들어낸 형태가 만났을 때 제3의 생경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낯선 풍경 속에 작가의 사고와 철학을 녹여 넣는 것이고 관람자가 그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비로소 작가와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은 구상미술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확한 설명이지 싶다. 나 같은 초보자가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래도 추상화보다는 구상화가 수월하다. 그런데 사진이 열 일을 하는 시대에 구상미술의 자리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전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술관 학예실장이 말한 ‘사실적 재구성’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시는 세 파트로 나누어서 1장, 시각의 깊이- 전통적 감각의 현대적 해석과 2장, 공존하는 시간- 서사의 확장 그리고 3장, 이성과 반이성의 경계 – 잠재적 구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가 알차고 발걸음을 붙잡는 그림이 많았으며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었다. 특히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즐겨듣는 음악을 공연장에서 직접 들었을 때 그 감동은 음원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층고가 높은 공연장에서 대형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실황의 맛은 우리가 제법 큰 돈을 지불하고 찾아갈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실제로 볼 때면 너무 익숙해서 사진과 그림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림은 복제품과 실제가 음악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양평군립미술관에 전시된 구상화를 보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이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특히 전통적 감각의 현대적 해석을 표현한 첫 번째 전시에서 이강화 작가의 그림은 내가 그 자리에서 사진으로 찍어보고 알았다. 이 아름다움을 사진은 10%도 담아내지 못하는구나. 반짝이는 재료의 특성도 섬세한 붓질도 어림없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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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작가의 ‘우주를 품은 항아리’도 사진으로 보면 가장자리에 금색 띠가 둘린 캔버스에 달항아리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그림을 보면 노란색 가장자리에 세계 각국의 말로 사랑해요가 가득 쓰여 있다. 나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오른쪽 귀퉁이 끝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쓴 글씨를 찾아내고 혼자 싱글싱글 웃었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지가 넘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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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공존하는 시간- 서사의 확장편에서 석철주 작가를 만났다. 나는 그의 그림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술관은 혼자와야 하는구나. 혼자서 대면할 때 진짜를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석철주의 ‘자연의 기억’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무성한 풀밭을 그렸다. 캔버스 가득 풀밭이다. 그뿐이다. 그 풀밭 가운데, 화초를 심은 화분 하나가 그림자처럼 보인다. 그 그림자 속의 화초는 어느 집 거실에서 인테리어 용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 화초의 기억 속에는 저렇게 푸른 들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시지프스가 돌을 올리듯 날마다 철마를 타고 콘크리트 덩어리 속으로 출근하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저런 풀밭이 숨어 있다는 것을 석철주 작가는 한 편의 시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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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억은 나의 기억 속의 야생 풀과 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화려하게 물감을 덧입히기보다는, 오히려 지워내는 과정을 통해 마치 속살처럼 드러내는 색과 기억을 부각하는 기법이다. 이때 예측 불가능하게 남겨지는 흔적과 흔들림은 자연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어, 관람자의 감각을 일깨우고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 작가의 말

그렇다. 나는 석철주 작가의 그림 앞에서 아침 풀밭에 발을 디딜 때의 그 축축함, 바람에 일렁이는 푸른 물결, 그리고 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림 속의 화분이 되어 그 감각을 품고 돌아선다. 비록 오가는 출근길에 갇혀 살지만 푸른 들판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말이다.

전시가 3장으로 넘어가면서 구상은 점점 더 대담해져 잠재적 구상이라는 이름을 담고 나아간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교차하고 현실과 환상이 부딪친다. 그리고 정해광 작가의 인물들 앞에서 놀란다. 모델을 두고 그린듯한 그림 속 여자들의 자세가 너무 위태롭다. 정말 모델이 저런 자세를 취하고 화가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내내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 있고 누워 있었다.

전시는 끝났다. 미술관 밖으로 나오자 파란 하늘에 눈이 흩날린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 자체로 3월의 매력이다. 이토록 훌륭한 전시를 천원에 볼 수 있는 미술관이라니 떠들썩한 유명 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만족감에 양평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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