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루가 쓴 그림책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에 삽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니카와 슌타로가 쓰고 와다 마코토가 그린 '구덩이'이라는 그림책의 내용이다. 히로라는 이름의 소년이 구덩이를 팠다. 계속해서 구덩이를 파내려 가자 사람들이 다가와 훈수를 둔다. 왜 파는 거냐. 이렇게 파라, 저렇게 파라.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묵묵히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 깊이가 아이의 키를 넘기자 사람들은 또 연못을 만들자, 함정은 어떠냐, 참견이 이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구덩이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년은 애써 판 구덩이를 다시 덮어버렸다. 구덩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루는 우리나라에는 있지만 일본에는 없는 관용어구 '삽질하다'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구덩이'에 감탄한다. 최근 들어 삽질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삽질할 일은 포클레인이 대신하고 있으니 삽질은 관용어구인 '헛된 일을 하는 것'에 주로 쓰인다. 군대에서 가장 위험한 감정은 무료함이라고 한다. 그 무료함 때문에 하급 병사들을 괴롭히는 사고가 나기 때문에 필요 없는 삽질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이다. 크게 보면 필요한 일이지만 병사 입장에서는 파고 다시 덮는 삽질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을 할 때 사람은 참을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구덩이'의 소년 히로는 무의미한 삽질을 한 것이 아니다. 삽질을 하는 동안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아프고 귀 뒤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애벌레가 구덩이 아래쪽에서 기어 나와 도로 흙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구덩이 안은 조용했으며 흙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구덩이 벽에 생긴 삽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히로는 이렇게 삽질 자체가 목적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즐겼다. 결코 우리가 말하는 삽질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요즘하고 있는 미술관 탐방이야말로 삽질이다. 미술관에 관한 글은 너무 많고 나 같은 문외한이 왈가불가할만한 소재도 아니다. 그러니 콘텐츠로서 가치도 없고 이 글이 어디에 쓰일 일도 없는 일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립 미술관 탐방이라는 목적을 세워두고 계획을 세우며 갈 곳을 손으로 꼽고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 나도 히로처럼 도로 덮을 구덩이를 파며 흙냄새를 맡고 있다. 손으로 삽자국을 더듬고 있다. 일요일 오후 네비를 켜며 기름값 정도는 삽질에 써도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출발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외곽 순환도로를 거쳐 송추 IC를 통해 간다. 나는 중부고속도로 상행선도 외곽 순환도로도 처음 운전해 보는 도로였다. 그 넓은 도로를 달리려니 긴장해서 등이 조금 뜨거웠다.
동주 할인이라고 해서 양주와 같이 끝에 '주'자가 들어가는 도시에서 온 사람은 신분증 확인을 통해 50프로 할인이 되었다. 덕분에 5천 원인 미술관 입장료를 2천5백 원만 내고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반대편 쪽 문이 보인다. 그 문을 통해 나가면 갑자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은 미술관을 품고 있는 공원 자체가 전시의 한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더군다나 지금은 오월 아닌가. 오월의 신록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색감을 보이고 있다. 나는 초록을 가로지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속으로 푸르름이 빨려 들어간다.
지금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서는 '상상정원'이라는 제목으로 김이박, 변연미, 복창민, 장욱진,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자연과 소통하기 위한 특별한 지각방식을 가져와 예술적 상상력을 덧붙인 작품들이다.
김이박은 식물 표본을 이용한 작품으로 식물 아카이브나 사물의 정원을 전시했다. 변연미의 스펙트럼 숲은 대형작품으로 밀림인 듯 단단한 껍질을 가진 나무와 무성한 잎 그리고 서로 엉켜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가지들을 커피가루와 아크릴물감으로 구현해 냈다. 복창민은 소철나무 우드 팔레트를 제니퍼 스타인백은 영상으로 흔들리는 자작나무 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술관의 주인인 장욱진의 나무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문제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술관 밖의 풍경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안에 전시된 정원보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더 작품 같았다.
차라리 상상정원이라는 테마의 전시가 겨울에 이루어졌다면 을씨년스러운 바깥 풍경과 초록의 실내가 대비되어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상상정원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면 장욱진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동화적이고 심플한 표현과 독창적인 색채를 선보인다. 장욱진의 그림이 전시된 상설 전 제목은 '완전한 몰입'이다. 예술에만 몰두하여 철저한 고요와 고립 속에서 비움과 단순의 철학을 실천한 장욱진의 정신을 기리는 기획전에는 제목조차 무제인 단순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거장의 단순함은 보는 사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나는 언제나 곧게 서 있는 커다란 나무에 끌린다. 어쩌면 내가 오행이 갑목인 사주를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 중에서도 나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이 가장 좋았다. 이제 막 떠오른 초승달과 나무속에 까치를 가진 이 그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장욱진미술관을 나와 길을 건너면 민복진미술관이 있다.
1927년 양주 장흥에서 태어난 민복진은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조각에 입문해 재학시절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그의 예술세계는 가족과 모자상에 천착하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 민복진 작가의 가족과 모자상 하나하나에는 차가운 돌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다정함이 스며있었다. 민복진의 작품들이 미디어 아티스티인 소마킴과 문선우를 만나면서 수장고에 시대를 초월한 활력이 느껴졌다.
육아 휴직 중인 딸과 사위가 손녀를 데리고 외출해서 보낸 사진 속 꽃 같은 가족과 민복진의 가족이 겹치며 나의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민복진의 가족은 점점 단순해져 나중에는 마주 보는 형태만 남는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주는 미학은 장욱진의 그림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든다. 거장의 단순함에는 내부로 응집하는 힘이 있다. 아무리 미학을 몰라도 그 아우라는 느낄 수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린아이가 예쁜 것을 알듯 미술에 대해 알지 못해도 아름다운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 본능을 따라 예술을 즐긴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