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비방/ 이지은 지음 / 모요사 펴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 장류진 / 밀리의 서재 펴냄
'봉비방'은 좋아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사람이라는 프랑스어다. 그리고 25년 동안 프랑스에 살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찬하는 능력'을 가진 이지은 작가의 온라인 구독 서비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이지은 작가라고 하면 살짝 안면이 있다. 김민철 작가의 파리 한 달 살기에 (무정형의 삶) 등장했던 프랑스 가정식 강좌를 하던 이가 바로 이지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한때 루이뷔통 모노그램 가방을 하도 많이 들고 다녀서 3초 백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흔해지고 명품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오던 시기 사람들은 명품 로고로 자신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샤넬은 가격이 해마다 올라서 샤테크라는 말이 생겼고 에르메스를 제외하고는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끄럽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명품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커다란 로고를 버클로 한 명품 정장 벨트를 한 남자를 보면 괜히 내가 낯 뜨거워졌다.
번쩍거리는 명품에 질려가는 즈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 '취향'이 아닌가 싶다. 이제 명품이 아니라 사치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물건보다는 내 마음이 가서 소중히 여길만한 물건을 소유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다. 이지은 작가의 '봉비방'과 장류진 작가의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그렇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취향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봉비방'은 프랑스에서 삶의 기쁨을 발굴하는 이야기고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에서는 영혼의 쌍둥이 같은 친구와 핀란드를 여행하며 자신들의 취향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나라는 다르지만 결국 그네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그래야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당신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을 발굴하고 그 속에서 기쁨을 얻으라!
그런데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 명품을 소비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다이소 물건으로 내 취향을 드러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장류진 작가는 핀란드에서 자신이 열광하는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마리메꼬의 스커트 하나를 오십만 원에 샀다. 마리메꼬를 상징하는 유니꼬 패턴의 에코백은 우리나라 공식몰에서 육만 칠천 오백 원에 판매된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에코백을 다이소에서 산다면 오천 원이면 가능하다.
취향이란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도록 아껴 쓰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단어다. 취향은 결코 사치스럽지 않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년의 유투버들이 평생 간직한 물건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네들은 수십 년 전에 구입한 명품 스카프와 유럽의 중고 거래시장에서 산 스카프를 똑같이 소중히 여기며 잘 보관해서 마치 어제 산 물건처럼 보이게 관리한다. 돈이 들고 시간이 필요한 취향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제대로 된 취향을 가질 만큼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고 여유가 부족한 나는 아직도 취향의 불모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긴 추석 연휴기간에 찜질팩을 아랫배에 올려놓고 쿠션에 기대서 '봉비방'과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었다. 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핀란드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집에 초대를 해야 진짜 친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집에 초대를 받지 못하면 지인쯤 되는 모양이다. 내가 집에 초대했으면 상대방도 나를 초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깨진다고 한다. 나도 연휴 마지막날 통증이 좀 가라앉는 기색이라 친구와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번에 그 친구가 계산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기브 앤 테이크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핀란드는 사우나의 나라이고 사람들은 대체로 순박한 모양이다. 영혼의 쌍둥이 같은 친구와의 여행은 즐거웠으나 매번 그 친구를 강조하는 작가의 서술은 좀 사변적으로 느껴졌다. 에필로그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봤다. 장류진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은 팬을 만나 그와 같이 업무를 진행한 적이 있을 만큼 친분을 쌓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초창기부터 작가를 따라다니던 악플러였다는 에피소드. 인기를 조금 얻으면 대부분 인류애가 사라질만한 일을 겪게 되는 모양이다.
우울증 약을 새로 처방받아먹으며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남의 여행기에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 고생은 그들이 하고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 독서로 하는 여행이다. 긴 휴일 그렇게 나는 여행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