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by 은예진

테드 창 지음, 행복한책읽기 펴냄


책으로도 읽고 영화 '컨택트'도 봤지만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햅타포드B의 언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읽을 때는 아는 듯하다 돌아서면 모르겠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해가며 수학 문제를 풀면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내가 풀려고 하면 막히듯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로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은 영 설명이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소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기 때문이다. 너를 잃을 줄 아는데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슬픔을 겪을 줄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낳고 기르고 잃을 것이다.


언어학자인 루이즈 뱅크스는 웨버 대령과 물리학자 게리 도널드의 방문을 받는다. 루이스는 그들이 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구 궤도상에 우주선들이 느닷없이 출현하고 목초지에 인공물들이 나타났다. 전 세계에 112개 미국에는 9개의 구조물이 있다. 그 구조물은 체경이라고 부르는데 일종에 쌍방향 통신장치다. 정부에서는 루이즈에게 그 체경을 통해 전달된 우주인들의 언어를 들려주고 해석을 부탁한다. 루이즈는 단호하게 직접 교류하지 않으면 언어 습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루이즈는 물리학자 게리 도널드와 함께 체경 하나를 맡아 우주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반원형 모양의 체경은 섬뜩할 정도 사실적인 삼차원 영상을 만들어내며 루이즈 앞에 우주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주인은 다리와 팔 기능을 하는 일곱 개의 가지를 가져서 게리는 그들을 헵타포드(칠족 생물)라고 이름 붙였다. 일곱 개의 가지 위의 몸통에는 눈꺼풀이 없는 일곱 개의 눈이 빙 둘러 자리 잡고 있었다. 유능한 언어학자답게 루이즈는 헵타포드와 소통을 시작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들의 퍼덕거림과 풋풋 거리는 음성 언어를 인간의 언어와 대입하며 순조롭게 소통을 시작했다.


문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는 헵타포드의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이스와 게리는 편리상 헵타포드의 음성 언어를 헵타포드A라 하고 문자 언어를 헵타포드B라고 지칭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B가 표어문자도 아니고 표의문자도 아닌 어의문자라고 정의 내렸다. 이 어의문자는 센텐스 크기가 커지면 서로 격자무늬처럼 달라붙어 최면적 영향을 끼치는 사이키델릭 포스터를 연상시켰다.


헵타포드B는 발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않은 언어였다. 그러니까 읽을 수는 있으나 그걸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언어다. 루이즈가 헵타포드B에 발이 묶여 끙끙거리고 있을 때 물리학자 게리는 그들이 헵타포드와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에 대해 소통했음을 알려준다.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는 빛이 두 지점 사이를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 가장 짧은 경로를 선택한다는 원리다. 그러니까 빛이 공기를 통과해 수면을 지나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굴절되는 현상이다. 빛이 A지점에서 출발해 수면을 통과해 B지점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기를 통과해 수면에 닿는 순간 굴절을 통해 꺾어지면서 가는 것이다. 빛은 수면을 통과할 때 가장 빠르게 B지점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 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 이제부터 나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적당히 이해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처럼 헵타포드B의 언어를 체득하는 순간 루이즈는 자신의 미래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루이즈의 사고는 그림을 통해 코드화되고 사고가 내적인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된 광경을 심안으로 보게 된다. 루이즈는 헵타포드B를 통해 자신의 인생 경로를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지금 엄청난 아픔을 겪어야 하는 그 시간 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시점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루이즈가 헵타포드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과정과 그녀가 게리 도널드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질구레하게 겪는 일들이 병치되어 서술되기 때문에 마치 추억담처럼 읽힌다. 그런데 실은 루이즈가 게리와 결혼해 딸을 낳고 키우는 일련의 과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헵타포드B언어를 체득하는 과정에 그녀가 알게 된 자신의 미래인 것이다. 지금 루이즈는 광선처럼 최단 시간에 자신의 미래를 통과해 마지막 지점까지 보고 있다.


그런데 그 미래가 지독하게 아픈 미래다. 루이즈는 물리학자 게리 도널드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 아이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자란다. 강아지와 놀면서 웃어대고 넘어져서 루이즈의 심장이 멎을 것만 같게 만들기도 한다. 딸은 이제 자라서 사춘기가 되고 엄마한테 툴툴댄다. 이미 게리와는 이혼했고 루이즈는 딸과 둘이 산다. 루이즈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스물다섯 살이 된 딸은 등반 사고로 죽는다. 루이즈는 게리와 함께 딸의 시신을 확인하러 간다. 눈앞에서 딸의 죽음을 확인한다. 이 모든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루이즈는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기에 피하지 않고 나아간다. 잃어버릴 줄 알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딸을 만나기 위해 나아간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지인에게 만약 네가 딸을 낳고 그 딸을 사랑으로 키우지만 아이가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는 그 길대로 갈 것이냐고 물었다. 지인은 가겠다고 말했다. 잃을 줄 알더라도 자신은 그 사랑을 만나겠다고 했다. 잃을 줄 알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겠다는 말이 조금은 비장하게 들렸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결국 어려운 SF소설이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루이즈의 사랑이야기다. 잃을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시간 속으로 발을 내딛는 용감한 루이즈의 딸에 대한 사랑 말이다. 루이즈는 헵타포드B로 인해 알게 된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지만 피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비록 잃어버릴 지라도 낳고 기르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했다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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