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겨울이 오자 노천탕 노래를 불렀다. 전에 안면도 아이랜드 리솜에서 인피니티풀을 즐겼던 기억에 다시 찾아보니 당시에 비해 비용이 터무니없이 올라있었다. 갈만한 곳을 찾다 생각난 게 아이가 어렸을 때 다녀온 아산스파비스였다. 아산은 친구가 살아서 일 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가는 곳이다. 고향인 청주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다녀 본 곳이 아산인데 남편을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에 아산스파비스에서 노천탕을 즐기고 친구와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싶어 전화했다.
남편과 같이 가서 숙소는 따로 잡을 테니 밥이나 먹자는 말에 친구가 자기 집 이 층에 빈 방이 두 개나 있는데 뭐 하러 숙소에 돈을 쓰냐고 집에 와서 자라고 했다.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하자 영 불편한 기색이다. 워낙 성격이 서글서글하거나 무던하지 못한 사람이라 불편할 게 뻔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아무래도 숙소는 잡는 게 좋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화를 버럭 냈다. 네가 그렇게 남편을 어린애처럼 감싸고 도니 불편한 건 조금도 못 참아서 어쩌고 저쩌고..... 남편의 치부를 잘 아는 친구가 그의 어리광이 전부 내 잘못이라며 질책했다. 결국 나는 알았다고 가서 자면 될 거 아니냐고 친구를 진정시켰다. 이쯤 되면 남편은 불편해도 불편한 내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니 이십 년도 더 됐을 것이다. 눈발이 날리던 날 뜨끈한 유스풀에서 튜브를 타며 놀던 기억은 오래도록 좋은 추억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튜브 탈 아이도 없이 방문한 스파비스는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었다. 물은 뜨겁지 않고 아이들은 바글바글해서 우리 같은 중년부부가 있을 곳이 못되었다. 전체 이용권이 아깝기는 했지만 바로 야외풀을 포기하고 온천탕으로 각자 헤어졌다. 온천탕으로 들어가자 뜨끈한 맥반석 자리도 있고 한적한 노천탕도 있었다. 남편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노천탕을 즐기다 나가자 그는 벌써 나와 있었다.
"노천탕 좋지?"
내 말에 남편의 동공이 흔들린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친구 말이 맞기는 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겨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이 사람은 온천탕 안에서 자기가 그렇게 가고 싶다고 노래한 노천탕 하나도 찾지 못해 그냥 나온 것이다. 내가 노천탕 좋은데 쯧쯧 혀를 차자 아쉬운 얼굴로 내일 다시 올까를 연발한다. 이런 순간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이 남자를 그냥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
"아직 키 반납 전이니까 다시 들어가서 노천탕해. 나는 친구네 집에 가 있다가 전화하면 데리러 올게."
친구가 스파비스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다고 했으니 그래도 괜찮겠다 싶었다. 남편은 그 말에 고맙다며 다시 탕으로 들어갔다. 말로는(말로만) 언제나 천냥 빚을 갚을 만큼 표현을 잘하는 남편은 나의 배려 덕분에 노천탕 마감 시간까지 충분히 즐겼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전날에 비해 날이 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 추웠다. 쨍하게 파란 하늘과 코 끝에 차가운 바람이 부딪치는 야외에서 만병을 치유하는 탕이라고 쓰여 있는 뜨거운 온천수 안에 들어가 있으니 지친 마음과 몸이 녹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많은 야외 놀이 시설과 다르게 온천탕은 한가했으며 남탕의 노천탕은 더 조용해서 한 시간 내내 혼자 즐겼다고 했다.
다섯 시 마감 시간이 되어서 아쉬운 마음에 정리를 한 남편이 전화했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친구가 정한 식당으로 향했다. 친구가 해물탕집인 줄 알고 갔다가 민물 매운탕집이라 망설이고 있는데 주차관리하는 분이 맛을 장담하며 잡사봐를 연발했다고 했다.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에 어느새 들어가 앉았고 특이한 조리방식과 가성비에 반하고 맛에 두 번 반했다고 했다. 메기 매운탕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온천하고 나와 반드르르한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솥뚜껑 매운탕이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드럼통에 가마솥뚜껑을 엎어 놓고 거기에 메기 매운탕을 끓인다. 대부분 매운탕이 중자, 대자로 나뉘는데 여기는 1인분씩 팔며 밥은 무한리필이다. 새우를 추가해 끓인 매운탕에 직원이 얇게 편 수제비를 넣어준다. 남편이 소주를 시킨다. 술을 같이 마셔주는 사람 없어도 노천욕 후 먹는 메기 매운탕에 소주 한 잔 이라니. 남편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인생이 단박에 행복해졌다. 그에게 아산은 행복의 도시로 각인되어 버렸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싶다.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우리지만 이런 순간이 왔을 때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듯싶다. 아마도 이런 기분은 젊어서 가지긴 어려울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선 자리를 인정한 후에 찾아오는 삶의 소소한 기쁨이다.
오지랖 넓은 친구 덕분에 그녀의 집 이층에서 자고 일어나니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2026년 겨울이었다.
덧붙임
아산에서 같이 모이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때였을 것이다. 어느 해 여름, 각자 남자 친구를 데리고 화양동 계곡에 놀러 갔었다. 한 친구를 제외하고 다들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날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은 우리는 모두 옆에 있던 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니까 그해 여름 화양동에서 찍은 사진은 삼십 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아산의 친구가 갑자기 그 사진을 다시 찍어보고 싶다고 한다. 사진 속 스물몇 살의 우리는 몇 년 뒤면 환갑이 될 것이다. 그 사진을 화양동 너럭바위 위에서 다시 찍으면 어떨까? 그동안 다들 아이 키우고 직장 생활하며 살아 내느라 고생도 많았고 삶의 희로애락을 겪을 만큼 겪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가 되었다. 어쩌다 나온 소리였지만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니 그 사진 꼭 다시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