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편도체

by 은예진

남편은 편의점을 운영한다. 어쩌다 보니 인수했고 해 보니 장사가 남편의 적성에 은근히 잘 맞았다.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상처받아 침소봉대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혀를 끌끌 차게 하는데 이런 성격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게 촉이 좋은 편이다. 남편이 편의점 근무 중이었다. 계산을 하는 중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고 했다. 손님은 곧장 ATM기를 향해 걸었다. 계산대에서는 ATM기가 보이지 않고 그 아래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계산을 끝내는 시점에 냉동고가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듣고 손님이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ATM기 이용객이 구매 없이 나가는 것은 다반사고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열었다 원하는 것이 없거나 비싸서 그냥 닫고 나가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뭔가 묘한 기분을 느낀 남편이 CCTV를 확인했다. 화면 속 손님은 냉동고를 열고 오른손으로 아이스크림을 꺼내 왼손에 바꿔 쥐고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른손이 다시 아이스크림 냉동고 속으로 들어갔다가 주머니를 향했다. 몇 번을 돌려본 남편은 그가 아이스크림을 훔쳐 갔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신이 잘 못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교대하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교차 검증했다. 아르바이트생이 보기에도 이건 확실한 절도였다.


우리 편의점은 시골 작은 공단 지역에 있어서 스쳐가기보다 머무는 곳이다. 남편은 손님이 주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 나섰다. 근처 식당과 부동산 그리고 당구장을 방문해 비로소 그를 찾았다. 당구를 치고 있는 손님에게 잠시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는 남편의 말에 그는 거절하며 여기서 말하라고 했다. 남편이 CCTV 확인한 내용을 이야기하자 그가 화를 버럭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타인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예의를 지키는 남편은 남의 무례에 취약하다. 무작정 욕을 내뱉기 시작한 상대방에 대해 남편도 분노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일순 당구장 손님들의 시선이 쏠렸다. 남편이 찾아간 손님의 일행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골프를 치고 이차로 당구장에 들렸다는 일행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CCTV확인을 요청했다. 화면을 본 일행은 정확하게 아이스크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애매함을 주장하며 아이스크림값을 결제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갔던 트러블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남편은 자신이 들은 욕설 때문에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살인 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어이없는 상황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차 시비로 또는 층간 소음으로 분노한 사람들이 흉기를 휘둘러 자신과 상대의 남은 삶을 모두 날려버리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다. 그런데 그 순간 분노로 인해 편도체가 마비된다는 글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로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에 대한 학습 및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 편도체다. 위험상황이나 공포상황에서 대뇌피질이 관여하기 전에 신속히 반응하여 피해야 할지 부딪혀봐야 할지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편도체 덕분에 우리는 감정을 조절하고 위험상황에서 신속한 판단을 내려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노 때문에 편도체가 마비되면 흉기를 휘둘러 저 사람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몸싸움까지 갈 수 있었던 상황에 남편을 자제시킨 것은 설날을 맞아 할비를 보러 올 그 쪼그만 아기였다. 하루하루 손을 꼽아 손녀를 기다리는 남편은 자신이 거기서 몸싸움이라도 해서 꼴사나운 모양새가 되면 어쩔 뻔했냐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비록 욕설을 들은 것에 상처받았지만 불미스러운 일 없이 상황을 종료시킨 것에 안도한 남편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울만한 일이 생기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분노가 극에 달한 순간 남편의 편도체가 과잉반응하지 않도록 잡아 준 것은 그의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었다면 그는 욕설을 내뱉는 사람과 같이 흥분해서 나잇살이나 먹어서 당구장 바닥을 뒹구는 흉한 모습을 연출했을 것이다. 몸싸움을 하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아이스크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날뛰는 분노의 포로가 되어 승자 없는 싸움을 하게 될 뿐이었다. 남편은 그 순간 설에 만날 손녀를 생각하며 분노를 잠재웠다.


남편이 자신이 얼마나 열받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기에 손녀를 가져다 붙일 때 나는 또또 침소봉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마음이 바뀌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속에서 자신을 잡아주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진정시킨다. 그럴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무서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편도체가 날뛰는 순간 그걸 잡아줄 사랑이 없는 건 슬픈 일이다.


가족이 때로는 짐이 되고 마주 하면 곤혹스러운 상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 살게 하는 것 또한 가족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벌써 명절 이삼주 전부터 온라인에는 명절에 얽힌 속상했던 이야기들이 넘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런 탓에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 주고받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 덕분에 내 자리를 지킨다. 그건 사랑이었다. 편도체를 안정화시킨 건 결국 사랑이구나 싶다. 그러므로 사랑 가득한 명절 되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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