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어졌다

by 은예진

시누는 쉰아홉에 죽었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어느 날 문득 쓸쓸한 눈빛을 보일 때면 보는 사람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물을 아무리 부어도 채울 수 없는 독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결국 그 독에서 흘러나온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비싼 옷과 연인들로도 채울 수 없던 그 빈자리에 집착하던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에 소홀했던 것 같다. 딸과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와 여독을 풀기 위해 잠든 그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퇴근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던 나는 시누가 죽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자동차 시동을 걸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동 거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같은 건물에 있는 카센터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시동을 걸었야 했다. 시누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의 급사는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두렵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남편 바로 위의 누나였고 나는 남편과 나이차가 제법 나서 여덟 살이 더 많은 손윗시누였다.


급사의 경우는 대부분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일 텐데 시누는 그 나이까지 혈압이나 고지혈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남편을 포함해서 시댁식구들은 관리하고는 좀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는 했다. 남편이 제멋대로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끊고 말을 하지 않아서 나한테 심하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당신 쓰러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 버릴 거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차라리 누나처럼 자다 죽으면 감사해야 할 거라고 말이다.


시누가 죽고 오십이 넘은 나는 그때부터 맹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 기간을 버텨내자니 어느 순간 자다 죽은 그녀가 부럽게 느껴지는 날들이 늘었다. 쉰아홉은 호상은 아니지만 요절도 아닌 나이 아닌가?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아픈 날만 남았다면 죽어 없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게 여겨졌다. 사실은 죽고 싶었다.


인간은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어서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본 장면중 가장 공포스러웠던 예측은 스티븐 킹 원작 소설의 영화 '미스트'였다. 세상은 정체불명의 안개에 덮이고 그 속에서 괴생명체들이 사람들을 공격한다. 공격에 대항하던 주인공 데이비드가 계속된 실패에 더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를 결심한다. 그 포기는 괴생명체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아들을 총으로 쏘고 자신도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들을 죽인 후 마지막 총알을 쓰려는 찰나 안개를 뚫고 다가오는 구원병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데이비드도 시청자인 나도 무너졌다.


우리 삶은 영화 미스트의 안갯속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끝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박했던 데이비드의 포기가 비난받을 일인지 알 수 없다. 죽고 싶다고 징징 거리던 것은 그나마 그렇게라도 떠들며 그 순간을 넘기고 싶었던 거다.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고 지금은 죽을 수 없고 칠십까지만 버티겠다는 나의 말은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칠만한 소리였다.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 쉰아홉이 되었다. 시누가 죽었던 그 나이가 된 것이다.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던 내가 새로 걸어놓은 달력을 보고 말했다.


"나, 이제 쉰아홉 됐어. 내년에 육십이야."

"그러네."

"누나가 죽은 나이야."

"......."

"나, 죽기 싫어. 오래 살고 싶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직 어지러운 날들이 더 많다. 몇 달 괜찮더니 다시 어지러워서 누웠다 일어나려면 애를 써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지러워 약을 먹고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런 날은 매일 하던 스트레칭도 포기하고 약 기운이 퍼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청주 공항에서 히로시마 가는 에어로케이가 할인을 한다는 소식을 동생이 알려왔다. 12만 원이면 히로시마행 왕복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히로시마에는 히로시마현 미술관과 히로시마 시립 현대 미술관이 있는데 전시가 좋아 보였다. 미술관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비행기를 잡으려는 순간 그 약간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광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수백만 원을 들여 안정시켜 놓은 방광 상태가 무너지는 게 무서워서 당장 포기했다. 이렇게 상태가 뭐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 견딜만하니까 살고 싶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살고 싶은 게 본능인데 그게 녹녹지 않으니 죽고 싶다는 푸념을 하는 것이다. 요절은 아니라고 했던 시누의 죽음은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일의 내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살아서 남들 눈에 대수롭지 않지만 내게는 소소한 기쁨들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


지금 오래 살고 싶은 이 마음은 소중하다. 삶은 한결같지 않아서 또 어떤 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주저앉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런 날은 지금 쟁여놓은 이 마음을 꺼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시켜 먹은 아몬드크림라테가 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서 재빨리 담아두었다.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은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이런 작은 기쁨은 차곡차곡 쌓여 나를 살고 싶게 해 준다.


요즘 화가들의 생애를 보며 장수가 얼마나 축복인가를 느끼는 것이 마르크 샤갈은 97세까지 살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환갑 넘어 세상에 이름을 알린 통영의 화가 전혁림은 95세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가 90살에 그린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은 200X600cm의 장대한 풍경화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그랜마 모지스다. 시골 할머니였던 그랜마 모지스는 78세(어떤 책에서는 75세라고 한다)에 더 이상 눈이 아파 바느질을 할 수 없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01세까지 16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림은 미국에서 크게 사랑받았으며 전 세계 미술관에 전시되고 광범위하게 상품화되었다. 이러니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런 요지의 간략한 글을 스레드에 쓰고 내 낙서장 같은 곳에서 좋아요를 600개 넘도록 받았다. 댓글에 '나도, 나도 오래 살고 싶어'라는 말들이 넘쳤다. 나는 정말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새 브런치 북의 제목이 '아프지만, 오래 살고 싶습니다'가 되었다. 우리 같이 오래 살아요. 혹시 압니까. 7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스타가 된 그랜마 모지스가 될지 말입니다. 인생 알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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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마 모지스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