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신경염
귀의 달팽이관에 인접한 전정신경은 우리 몸의 평형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전정신경 한쪽에 이상이 생기면 심한 어지럼증을 유발하며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전정신경염에 걸리고 나서야 우리가 이족보행을 하며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대단한 일이지 깨달았다.
왼쪽 귀의 전정신경에 이상이 생기자 바닥에 발걸음을 내딛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몸에 균형을 잡을 수 없으니 걷기는커녕 설 수조차 없었다. 처음 며칠은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소변줄을 끼우고 있었다. 일주일간 양치와 세수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머리를 감지 못하거나 샤워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건 다 살만해서 그런 거라는 걸 당시에 깨달았다.
전정신경염의 원인은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보는데 하나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정신경 감염이고 또 하나는 혈액순환 장애로 전정신경에 혈액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치료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생각해서 염증 치료를 위한 스테로이드 처방과 혈액 순환제인 은행엽 성분의 혈관주사를 놓는다. 스테로이드는 하루에 열 알씩 먹었고 뻑뻑해서 혈관이 막히는 주사제도 날마다 맞았다. 그 외에도 디아제팜을 10 미리씩 혈관에 넣고 다른 약들도 먹었으니 거의 약 폭탄을 투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정신경염에 대해 검색하면 어지럼증이 심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양성의 질환으로 이야기한다. 귀에 생기는 감기라고 가볍게 말한다. 같은 어지럼증이라도 뇌 질환이 아니니 전정신경염이 잔병치레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전정신경염을 겪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나는 전정신경염이 걸리기 전과 후가 완전히 나뉘는 삶을 살고 있다. 일 년 반에 걸쳐서 아주 조금씩 회복되었다.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의 형태로 좋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심각하게 어지럽고 그러다 보면 또 좋아지며 여기까지 왔다. 지난 팔월에 약을 끊으면서도 어찌나 조심스러웠는지 이틀 간격 사흘 간격으로 텀을 늘리며 약을 끊었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시월에 다시 극심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신경과에서 전정검사를 마치고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는 나를 간호사가 부축해 겨우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말한다.
“다시 시작이네요. 재발 맞습니다.”
전정신경염이 오면 몸에 균형을 잡는데 에너지가 많이 쓰여서 피로도가 무척 심하다. 조금만 움직이면 힘이 들어 자리에 누워야 한다. 거기다 소화에 쓰일 에너지가 부족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정신경염은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급하게 안달하지 않는다.
재발의 좋은 점은 그런 것이다. 이미 겪어봤고 지금 이 증상이 무엇인지 내가 먹는 약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아는 고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나링 정은 멀미약으로도 쓰는 히스타민으로 전정 억제제로 쓰인다. 한쪽 전정신경이 망가졌지만 다른 쪽은 정상이라 균형이 깨져 어지럽기 때문에 정상인 전정 기능을 일부러 낮추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약을 오래 먹으면 도리어 회복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디아제팜은 지난번에 이야기했듯 신경 안정제인데 약품에 대한 의존성,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약이다.
의사는 이제 내가 먹는 약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끔 여유 있는 처방을 한다. 필요할 때 먹고, 견딜만하면 중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외래 진료에서 보나링정은 여분으로 조금만 받았고 디아제팜은 아침에 반 알만 넣었다. 그것도 시기를 봐서 괜찮다 싶으면 중단하고 기본적인 순환개선제 기넥신 에프정과 메니에르 증후군 치료제인 메네스정만 장기적으로 먹을 계획이다.
방광염 때문에 서울대 병원에 가서 초진 접수를 하는데 옆자리에 오는 환자마다 어지럼증 때문에 왔다고 한다. 모두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너무 다양해서 원인을 찾지 못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방광염 증세로 고통받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염증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병명이 명확히 나온 질환은 치료가 쉽건 어렵건 마음이 편하다.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면서도 내가 전정신경염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기다리면 좋아지는 병이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다독이며 살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상이 나한테는 과로가 된다는 게 좀 아쉽다. 몸이 이러니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게 된다.
전정신경염 이외에도 이석증, 메니에르, 자율신경 실조증, 목디스크, 빈혈 등등 다양한 원인으로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뇌 질환이 아닌 어지럼증은 당장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건 아니지만 심각하게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차를 타지도 않았는데 일상생활에서 멀미에 시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일렁이는 어지럼증이 찾아왔을 때 겁을 먹지 않고 ‘또 왔구나? 왔으니 조금 머물다 가렴’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잔병치레에 시달리는 건강하지 못한 나를 측은하게 생각한다. 아픈 사람이라고 매번 아프기만 한 거 아니고 통증과 어지러움의 사이에서 또 나름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다. 그러니 혹시 어지러워서 고통받고 있는 당신이라면 우리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