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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브라운 Jan 08. 2020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

국내 대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 유형 (6)

[사진 출처: 영화 '82년생 김지영']





Question


이번 팀장 승진에서 또 안됐습니다. 저는 입사 5년 차 여직원입니다. '여직원'이라는 말도 웃기죠. '남직원'은 없는데요.


저는 제가 여자라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저 대신 팀장이 된 분은 실적으로 보나 리더십으로 보나 저보다 못하거든요. 물론 제 주관적인 판단일 수는 있지만...


사내에 여성 팀장이 한 명도 없는 건 아닙니다. 몇 분 계시기는 해요. 여성 임원도 한 분 계시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회사에서는 남녀 간 차별이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남녀 간 차별이 심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리고 그런 회사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Answer


그러네요. 회사에 '여직원'은 있어도 '남직원'은 없네요. 학교에 '남학생'은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그만큼 우리 기업문화에 남녀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는 얘기 아닐까요? 여직원은 다른 직원들과 구별해서 분류할 만큼 소수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표현일 수도 있고요.


평사원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임원이나 팀장급 중에서는 여성을 차별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드러내 놓고 표현하시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죠.


이처럼 여성을 차별하시는 분이 많아지면 여성 차별이 하나의 기업문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떠스(Thus), 여성 차별 회사죠.  


여성을 차별하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과 그러한 분들이 충분히 많아서 여성은 리더가 되기 어려운 회사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 또는 사람들의 특징


1. 은연중에 넌지시 비춘다.


사실 여성 차별을 대놓고 당당하게 하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훈련을 잘 받은 거죠.


심지어 여성 차별주의적 행동이 몸뚱이 곳곳에 배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로는 "요새 여성 차별하는 회사가 어디 있어?"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앞에서 대놓고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하시는 분들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가끔씩은 그런 발언을 하시는 분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언제? 남자들끼리만 있을 때. 또는 은밀한 술자리에서. 또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열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낼 때.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여자들은 말이야"하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열 받아도 속내를 다 까는 행동은 'A Few Good Men'과 같은 20년도 훨씬 더 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죠.


보통은 여성 차별적인 발언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게 얘기합니다. 그것도 은연중에 넌지시 하죠.


"걔가 뭐 실력으로 승진했겠어?" (실력은 없는데 단지 여자라서 승진한 것 같다는 뜻)

"여자들은 너무 원칙적으로 한단 말이야." (유도리가 없다는 뜻. 실제로는 비리를 눈감아주지 않는다는 의미.)


톰 크루즈가 자꾸 깐족깐족 대니까 너무 열 받은 나머지 속내를 다 까보인 잭 니콜슨 [사진 출처: 영화 'A Few Good Men']



2. 여성의 외모를 갖고 평가한다


신뢰감을 주는 외모는 남녀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사기꾼처럼 보이는 분이랑 일하고 싶어 하는 분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모를 평가할 때 여성과 남성을 다른 잣대로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여성의 경우 실력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외모만 중시한다든가. 아니면 여성으로부터는 신뢰감을 주는 외모가 아니라 매력적인 외모를 요구한다든가. 아, 제가 말씀드리고도 참 민망하네요.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 여성의 외모를 갖고 점수를 매기는 '위험한' 놀이를 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실화입니다. 여성 직원분들 한분씩 앞에 나가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한 뒤 그것을 지켜본 남성 직원분들이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점수에 따라 돈을 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한 회사가 실제로 있습니다.


제 지인은 5점 만점을 받아 5만 원을 받고도 기분이 더러웠다고 합니다. 하긴,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네요.


아니다, 나는 2만 원도 못 받았겠다. 


아참, 나는 여자가 아니지.


그런데 여성분들 중에는 5만 원 받고 "좋아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실제로 좋아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저씨들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아니면 지저분한 환경의 회사에서 서바이브 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좋아라" 하면 안 됩니다. 남성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으니까요.


"거봐, 여자들도 좋아한다니까?"



3. 여성을 도매급으로 비난한다


팀장님 중에는 여성 팀원을 혼내시면서 또 다른 여성 팀원의 잘못을 함께 언급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번에는 이대리가 실수하더니 이번에는 또 김대리가 실수를 하네."

"이게 제대로 된 분석이라고 생각해? 재무팀 박 과장도 분석할 때 꼭 이런 실수를 하더라.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거야?"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님께서는 제가 아주 작은 실수를 해도 저를 한참 동안 혼내셨습니다. 그러다가 말미에 꼭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너희 아빠도 똑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에 대한 불만을 제게 푼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빠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빠 대신 혼난 것이었죠. 뒤늦게 울컥하네요.


앞서 말씀드린 팀장님도 속으로는 '여자들은 다 똑같아'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요? 생각만 그렇게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잘못된 생각에 따라서 어느 여성 팀원 한 분의 실수를 전체 여성 팀원의 평가에 반영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 팀원 한 분의 실수로 여성 팀원 전체가 함께 욕을 먹으면 여성들은 얼마나 불리하겠어요? 한 분의 실수가 모든 여성분들의 실수로 기록되니까요.



4. 여성은 명확한 실적이 있어야만 인정해준다


혹시 이런 말씀 들어보신 분 있나요?


"관리직은 승진이 어려워. 영업을 해야지."

"필드가 중요해. 영업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승진은 어렵다고 봐야 돼."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은데... 문제는 이러한 표현을 여성분들에게만 한다는 거죠.


어떻게 모두가 영업만 해요? 어떻게 모두가 필드에서 뛰어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남자 직원들은 관리직에만 있어도 승진 잘 하더만. 남자 직원 중에서는 평생 현장 경험 한 번도 없이 팀장도 달고 임원도 다는 사람 많더구먼. 왜 여성분들에게만 이런 잣대를 들이대죠?


핑계 아니에요? 핑계! 여성분들은 승진시켜주기 싫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 아니에요?


아니면, 팀장님은 정말 남녀 차별주의자가 아닌데 회사 방침이 그러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팀장님을 아주아주 좋게 봤을 때 이야기이고요.


아무리 여성이더라도 영업 실적이 우수한 분은 승진시킬 수밖에 없겠죠. 여성분의 실적이 월등히 높은데 그보다 낮은 다른 남성분을 승진시키면 그건 명백한 남녀 차별이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명백한 비교 자료가 없을 경우에는 웬만하면 여성을 잘 승진시켜 주지 않는 게 많은 기업의 현실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런 회사에서는 영업 뛰어야죠.



5. 특정 부서에 여성들이 몰린다


"우리 회사에는 남녀 차별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몇몇 팀들은 팀장 자리를 여성분들이 계속해서 맡아왔다고 얘기합니다. 디자인팀, 마케팅팀 등.


얼핏 보면 그럴듯한데 자세히 보면 이것 또한 문제입니다. 여성분들이 특정 부서에 몰린다는 것은 그 외 부서에서는 여성들을 차별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여직원들은 특정 부서나 역할에 더 잘 어울린다"는 식으로 남녀의 역할을 구분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사에서 여기자들은 주로 문화부 또는 생활부에 배치됐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자들은 술자리가 많은 정치부나 산업부, 또는 터프한 사회부와는 잘 안 어울린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죠. 당시 CNN에서는 크리스티안 아만포(Christiane Amanpour)가 최고의 종군기자로 맹활약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제는 우리나라 언론사도 더 이상 그렇지 않죠. 정치부, 산업부, 사회부 곳곳에서 여기자들의 활약이 대단한데요. 변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물론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언론사도 변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은 왜 아직도 그 모양이죠?


'98년 보스니아 내전을 취재 중인 크리스티안 아만포(Christiane Amanpour) [사진 출처: CNN]



6. 여성이 임원이 되면 뉴스가 된다


임원 인사 발표 때마다 여성 임원은 별도로 발표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회사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여성 임원이 뉴스감이 될 정도로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죠. 여성 CEO도 아니고 여성 임원이 뭐 그리 특별한 거라고.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특별합니다. 특히 보수적이 기업문화를 가진 대기업일수록 그렇죠.


이처럼 여성이 임원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는 기업은 남녀 차별이 심한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 차별이 심한 회사에서 임원 자리에까지 오르신 여성분들은 정말 높이 살 만합니다. 아마 남성분들보다 배 이상으로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입니다. 유리 천장을 뚫을 만큼 실력도 뛰어나시고요.


하지만 실력에 따른 결과보다는 쇼잉 차원에서 여성을 임원으로 발탁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여성 직원들을 육성하는데 너무나도 소홀했던 나머지 임원 후보군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럴 경우에는 부랴부랴 외부에서 여성 인재를 영입해 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임원으로 승진시키죠. 마치 내부 승진인 것처럼 포장해서요. 이 경우에는 사내에서 아직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분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건 별로 좋지 않죠. 남성분들에 대한 역차별 이슈가 불거질 수도 있고요. 남성 직원들의 여성 직원들을 향한 반감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에서 여성 직원들의 육성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올바른 기업이라면 여성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힘들게 뭐하러 그래요? 그냥 외부에서 임원 후보 스카우트 해오면 되는데?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2017년 그래프]


7. 여자 임원은 대부분 미혼이거나 싱글이다


회사에 여성 임원이 몇 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분들이 거의 대부분 미혼이거나 싱글입니다. 그런 회사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여성 임원들이 싱글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가정과 양립할 수 없을 만큼 회사 일에만 전념해야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더 심한 경우는 대표님과 편하게 술자리에 갈 수 있어야만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술자리에 불려 가는 게 남성들에게는 그닥 생소한 일이 아니죠. 아무리 늦어도, 설사 새벽 한 시일지라도 대표님께서 찾으시면 강남 술집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것이 어렵죠.


제가 괜히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지어내서 하는 게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툭하면 여성 직원분들을 불러내서 술 마시러 가자고 하는 회사를 저도 여럿 봤습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대표님과의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시는 분들이 소위 '실세'로 불리죠.


남녀 차별이 없는 정상적인 회사라면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성분들도 열심히 일하면 임원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싱글 여성분들만 임원이 된다면 그건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대표님과 편하게 술자리에 갈 수 있어야만 임원이 된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고요.


가정을 지키면서 실력만으로 여성이 리더가 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데요.




이상으로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 또는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보다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남성 직원으로만 직장 생활을 해와서 이해 못하고 놓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만약 이러한 회사에 다니시는 여성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부터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여차' 상사는 무조건 피해라


'여차'는 '여성 차별주의자'의 약자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매일 쇼비니스트'(Male Chauvinist).


'여차' 상사와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피하십시오.


무서워서? 농! 더러우니까요. 아니, 소리 지르면서 가르쳐줘 봤자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쯤은 들이받아야 속이 좀 시원하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방 먹여봤자 시원한 것은 그때뿐. 결국 자기 손해더라고요. 그냥 피하세요.


부역을 해서도 안 됩니다. 여차 상사에게 잘해드린다고 그 넘이 승진시켜 줄 것 같으세요? 절대 안 시켜줍니다. 유년시절 얼마나 심한 아픔을 겪었기에 그렇게 배배 꼬이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차 상사는 그냥 생각 자체가 지지리 못났습니다. 자기의 못남을 남성우월주의로 보상받으려는 아주 비뚤어진 심뽀의 소유자입니다.


여차 상사는 여차하면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앗, 유치했네요. 죄송합니다.


문제는 여차 상사가 너무 많아서, 아니면 전부 다라서 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럼 저한테도 한방 맞으셔야죠"로 그 순간에는 시원했지만 결국은... [사진 출처: 영화 '82년생 김지영']



2.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잘 나가는 여성분이 한분 있으면 비슷한 연차의 다른 여성분들은 대부분 그를 못마땅해하죠.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뒤에서는 욕하시는 분도 있고요. 칭찬하는 것처럼 디스 하시는 분도 있고요. 뭐, 이런 식이죠. "이 팀장님의 영업 실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해. 정말 몸을 사리지 않는다니까. 나 같으면 애 아빠 보기 무서워서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는 못할 것 같은데."


제발 여성분들끼리 필요 이상으로 헐뜯지 마십시오. 일 잘해서 승진하신 여성분들을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첫 여성 임원은 위험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남성분들의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회사에서 잘 나가시는 여성분들은 이미 시기하시는 분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여성분들까지 거기에 합세하실 필요는 없지요.


물론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어차피 여성분들을 위해서 주어진 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누가 그 자리를 선점하면 다른 분들은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줄어드니까요. 그래서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그 자리를 차지한 여성분을 디스 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분들 사이에서 성공 스토리가 계속 나와야지만 여성분들을 위한 자리가 늘어납니다.


제발 잘 나가는 여성분을 끌어내리지 마십시오. 적어도 같은 여성분들끼리는.


그런데 주변 남성들이 자꾸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어떡하죠?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고. 막 경쟁시키고.



3. 반칙 쓰지 말고 실력으로 승부해라


고등학교 수학여행 당시 멀미에 약했던 저는 기차 타기 전에 귀 밑에 키미테를 붙이고 탔습니다. 그래서 다른 반 여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죠. "야! 전교 1등이 키미테 붙였다. 쟤 바본가 봐." 당시 저는 공부 쫌 했습니다.


기차 타고 가면서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같은 칸 애들이랑 '아이엠 그라운드' 게임을 했습니다. 물론 여자애들이랑 같이 했죠. 남자애들만 있으면 그런 것 절대 안 하죠.


'아이엠 그라운드' 게임은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하면서 닉네임과 거기에 상응하는 모션을 하는 대땅 유치한 게임입니다. 마땅한 놀이 문화가 없었던 80~90년대에 한창 많이 했죠. 다양한 닉네임과 모션이 있는데 보통은 "킹콩 샤워"나 "캡틴 큐" 같은 외우기 쉬운 뉴트럴한 모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대땅 예쁜 여자애가 제 바로 앞자리에 와서 앉더니 닉네임으로 "아이~ 더워"하면서 한쪽 어깨를 내려서 보여주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모션을 선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제 바로 앞에서요.


아마 20대의 제가 이 모습을 봤다면 열광했겠지요. 하지만 당시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의 전교 1등 착한 학생이었던 저는 이 동작을 보고 "헉"한 나머지 그다음부터 이 여학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먹었던, 당시 우리 학교 최고 인기스타 중 하나였던 '찰리브라운'을 너무나도 흠모한 나머지 가냘픈 어깨선까지 꺼내 보이며 저를 꼬시려 했던 이 여학우의 작전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지금은 이런 유치한 게임 안 하겠죠? [사진 출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 여학우처럼 나름 미인계를 쓰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 따라서는 술자리 때마다 이런 모습을 경쟁적으로 펼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죠. "어머, 대표님! 넥타이가 삐뚤어지셨어요"에서부터 "대표님, 저랑 러브샷 한번 더!"까지. "재킷 벗고 편하게 술 마시지"라는 대표님 말씀에 살포시 끈 나시를 보여주시는 분들까지.


이런 것은 반칙입니다. 제발, 실력으로 승부하십시오. 이런 반칙쟁이들 때문에 열심히 일로만 승부 보려고 하는 정직한 여성분들까지 도매급으로 욕먹는 겁니다. 영어로 치면 "You give woman a bad name"입니다.


물론 남자들 중에서도 반칙을 일삼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딸랑딸랑"하면서요.


"남자들은 허구한 날 반칙을 밥 먹듯이 하는데 여성들에게만 반칙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도 남녀 차별 아니야?"라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도 반칙을 쓰니까 여성들도 반칙을 쓰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것보다는 "남녀 모두 반칙을 쓰지 말자"를 추구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요?


여성분들이 반칙을 쓸 경우 단기적으로는 남성 경쟁자들을 재끼고 승진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분들을 욕 맥이게 됩니다. 설마 '너도 나도 반칙하는 반칙의 왕국'을 꿈꾸시는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남성분들도 반칙 쓰지 마세요! 더 나빠요!


문제는 나 혼자만 반칙을 안 쓰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모든 여성분들이 '레이디 협정'을 맺고 다 같이 반칙을 안 써야 하는데요.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86년 "You Give Love A Bad Name"이라는 대표적 'Guilty Pleasure' 곡으로 메탈 붐을 몰고 온 Bon Jovi [사진 출처: Bon Jovi]



4. '아저씨 문화'를 개혁해라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아저씨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저씨 문화가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남성들만 존재한다면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여성분들도 존재하잖아요? 그리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분들도 우리랑 같이 회사에 다니잖아요? 그렇다면 아저씨 문화는 당연히 타파해야죠.


그렇다고 기존 아저씨 문화에서 여성 중심의 '레이디 문화'로 바꾸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기득권층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자기편으로 채우는 작업을 무슨 대단한 개혁인 양 설파하시는데 그건 엄밀히 말해서 개혁이 아닙니다. 그냥 내편으로 물갈이하는 거죠. 그냥 똑같은 넘 되는 겁니다.


진정한 개혁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그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남녀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해서 평가받을 수 있는 '남녀 차별 없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죠.


우리의 목표는 '여차' 상사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모두 여성으로 채우는 게 아닙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됩니다. 남성과 여성 리더의 비율을 동수로 맞추는 것도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성과 여성 리더의 비율을 동수로 맞추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저씨 문화를 그대로 둔 채 남녀 비율만 맞추면 경우에 따라서는 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를 위해서도 좋지 않지만 여성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게 아닙니다.


"비록 능력이 부족한 여성이 발탁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남녀 간 비율을 억지로라도 맞추는 게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경우, 오히려 일 잘하는 여성분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비뚤어진 아저씨 문화 하에서는 일 잘하는 여성분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반칙을 일삼는 여성분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인 일을 똑 부러지게 완수하는 분보다는 "어머, 대표니~임. 오늘 너무 멋있으세요"하시는 분이 승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 직장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으로 바뀌겠죠. 그렇게 되면 여성 직장인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일 잘하는 여성분들도 "나도 일만 하지 말고 반칙을 써야 하나?"라고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 리더는 모두 다 그런 방법을 써서 승진했나?"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죠. 절대로.


우리가 추구할 바는 '여차'도 '남차'도 아닌, 여성이든 남성이든 관계없이 남녀 모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분들이 사내 주요 요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별에 관계없이 일 잘하고 리더십 있는 분들이 리더로 인정받는 정상적인 회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소위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한 기업문화를 만들자는 것이죠.


우리가 추구할 바는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


남녀 모두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 그게 더 좋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는.


문제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세대가 바뀔 때까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 노력하면 직장 내 여성차별이 없어지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현실이라는 것이죠.




이상으로 남녀 차별이 심한 회사에 다니시는 여성분들의 대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드린 제안이 '51% 정답'이 아니라 '51% 오답'에 가깝다는 것이죠. 저조차도 각 단락의 말미에 제가 드린 제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만큼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죠.


하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러한 날이 오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설사 그러한 방법이 먹히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그게 옳은 것이니까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


죄송합니다.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가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2. 그러한 회사에 다니는 여성분들은 '여차' 상사는 무조건 피하고, 여성들끼리 지나치게 경쟁하지 말고, 경쟁을 하더라도 반칙을 쓰지 말고, 소위 '아저씨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매우 어렵다... 죄송합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떤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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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랑 맞지 않으면... 내가 못난 게 아니다. 단지 기업문화랑 맞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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