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변곡점 03화

가끔 네 생각이 나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풋풋한 떨림의 한 조각

by Rooney Kim

밤늦은 시각


아마 9시는 넘었을 거야. 학원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길을

혼자 돌아가는 네가 너무 불안해져 걱정이 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네게 다가가 같이 걷기

시작했어. 어쨌거나 우린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고,

넌 아무 대꾸 없이 그냥 앞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 보였지


우린 항상 어색한 눈인사만 나눈 채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걸었어


유난히 80년대 가요를 좋아하던 네 자리엔 언제나 빛바랜

앨범 재킷이 서너 개는 놓여있었고, 팝과 락으로 가득찼던

듣던 내 이어폰엔 언제부턴가 지나간 유행 가요가 흘러나

오기 시작했지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쳐 어색한 웃음으로 지나칠 때면

수줍게 쪼르르 나를 지나 돌아가는 네 모습 뒤로 향긋

하게 스치는 샴푸 냄새가 좋았고,


검은 운동화는 신지도 않던 내가 네가 자주 신던 검은색

운동화 때문에 부모님을 졸라 처음으로 검은색 운동화를

신기도 했어


그렇게 바라만 보던 1년은 어느새 마치 어젯밤 꿈처럼

지나가버렸고 곧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어


이 시간이 흘러가버리면 아마 다시는 널 보지 못하겠지


이제는

내 음원 목록의 상위를 차지하는 오래된 가요와

혹여나 때가 탈까 한 달에 한두 번 신을까 말까 했던

검은 운동화를 보며 그 시간들을 떠올리곤 해


그렇게 잊은 줄 알았는데

사실, 아직도 네 생각이 나

그 시절에 투명하게 투영된 네 모습에

여전히 가끔 네 생각이 나


하지만 이 마저도 학창 시절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흐르면


소파에 기대 불현듯 떠오른 망상처럼 피식 웃고 추억하고

마는 날이 올 테고, 삶에 쫓기고 시달리며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 날도 있을 테고, 그렇게 다른 시간들이 켜켜히 쌓여

더 이상 기억도 잘 나지 않게되면서 그저 주름진 눈가 사이로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더 이상 또렷이 떠오르지도 않는

낡은 시절의 한 페이지가 되고 말겠지


풋풋했던 우리의 지난날도 결국 조용히 바래어 가겠지






[이미지 출처]

Unsplash: https://unsplash.com/s/photos/sunset

keyword
이전 02화볼트, 너트 그리고 드라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