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회적일 때 가장 개인적이다
최근 이사를 했다.
큰 짐들은 이삿짐에서 정리해줬지만 막상 다시 둘러보니 할 일이 제법 많다.
짐 정리도 해야 하고, 옷도 다시 정리해야 하고, 크고 작은 가구 배치를 새로 해야 하는 경우도 역시 많다. 그런데 이사하는 동안 가구들은 헌 집과 새집을 오르내리고, 트럭 안에서의 진동과 떨림을 겪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수년을 꼭 조이고 있던 나사들이 빠지거나 풀려 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사를 마친 뒤에는 항상 우두커니 서서 내가 고쳐주기만을 바라는 가구들을 쳐다보노라면 애잔한 기분을 느끼며 마음에 짠한 감정마저 돈다.
새로운 가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조립해주지 않으면 원래 설계되었던 ‘그 무언가 특별한 기능을 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만히 박스 안에 들어앉아 ‘저 사람이 언제쯤 나를 조립해주려나?’하는 따가운 눈총을 피하고 피하다 눈이 마주치게 되면 그제야 서둘러 장비를 챙겨 들고 녀석들을 박스에서 꺼낸다.
원래 가구나, 물건들을 고정하고 조립할 때는 볼트와 너트가 필요하다. 요샌 너트가 없이 나오기도 하지만, 볼트를 정석대로 제대로 고정하려면 너트가 꼭 있어야 한다. 이 조그마한 볼트와 너트는 언뜻 보면 맨손으로 쉽게 조립할 수 있어 보이지만 얘들을 제대로 조립하려면 이 둘을 단단하게 붙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3의 존재, ‘드라이버(십자 or 일자)’가 필요하다.
즉,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사람의 삶도 볼트, 너트 그리고 드라이버와 비슷하다. 볼트가 '나'고, 너트가 '너'라면 드라이버는 '제삼자', 즉, 나와 너 사이에 생긴 문제를 풀거나 조여주는 역할을 하는 가족, 친구, 지인 등이다. 즉,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기능하기 위해서 이 셋을 분리한 삶을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내 마음 같아서는 ‘너’와 함께 평생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낼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는 흔들리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아주 멀어지며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마치, 오래된 가구의 볼트와 너트처럼.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드라이버다. 너와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는 제삼자의 역할이 필요한 법. 양자 간의 격앙된 감정이 섞이지 않은 차분한 이성을 가진 제삼자 덕분에 관계는 다시 만나고, 엮이며, 꼭 붙들어 맨다.
그래서 우리는 제아무리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오늘날에도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볼트이자 너트이며 동시에 드라이버다. 이 세 조합이 제대로 기능할 때 가구는 무너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제대로 서 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원하는 방 안 한쪽 구석에 자리 잡아 내 옷과 물건을 적재하고 보관하며 또 수년의 시간을 미동 한 번 없이 지켜준다.
그렇게 이삿짐 정리가 거의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