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감성의 시간을 냉정하게 잘라주는 경계
뜨겁지도 너무 환하지도 않은 적당한 볕이 들어오는 오후 4시쯤이었을까.
어둑어둑한 방 안은 아직은 저녁으로 떠나기 서운한 듯, 기다랗게 늘어선 햇살 한줄기가 얼굴에 닿으며 긴 오후를 수놓았다.
볕이 내린 의자에 앉아 귀에 꽂은 유선 이어폰에서는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의 선율이, 방구석 구석 퍼져 숨은 그늘을 헤집어 놓은 듯, 퍽퍽하게 메마른 일상이 수년만에 내린 이슬을 본 듯 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빨아들인다.
그 시절 가요의 노랫말은, 잊고 있던 그 케케묵은 시간을 어떻게 잘도 끄집어내는지 아주 오래전에 정리해둔 서랍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연애편지처럼,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마음에 두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연유 없는 궁금증에 난데없이 두근대는 가슴은, 더 이상 그 시절의 설렘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이제는 닿을 길 없는 어느 유년기의 감성을 길러낸 뮤즈를 잠시 그리며, 이 생각 저 생각 별 의미 없는 상념에 미소 지으며 앉은자리에서 부비적 대다가.
은은한 노랫말로 은근히 과거로 송환당해 어쩔 줄 모르는 풋풋한 감정에서 나를 황급히 꺼내 준 건, 아뿔싸, 다름 아닌 의자 팔걸이에 걸려 귀에서 빠져버린 유선 이어폰.
딱 제한된 길이만큼의 추억을 허락한 유선 이어폰 덕분에, 망상에 빠져 과거를 유영하던 나는 더 이상 헛된 시간에 머물지 않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아 맞다, 세탁기!
아차차, 빨래 개기!
어떡해, 라면 물!
아참, 청소기 돌리기!
하이고야, 분리수거!
어느새 해는 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미뤄둔 집안일, 해야 할 회사일.
여기저기서 내 손길과 체온을 기다리는 현재의 것들에 다시 현실의 귀를 열었다.
유선 이어폰의 한정된 감성의 선율 덕분에 난 파스텔톤으로 지나치게 포장된 과거의 추억에 현혹되지 않고, 그저 이 공간, 이 자리, 이 노래 안에서 아주 잠시 동안만 현재의 과제들로부터 나를 쉬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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