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당신은 미래에서 왔다

그렇다면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

by Rooney Kim

2014년 가을이었다.


그 날 역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가을이다 보니 해는 이미 져서 밤에 가까운 시간이라 주변은 금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진지도 오래고 밤하늘은 어느새 별과 달이 지배한 지 오래였다. 그 시절, 난 결혼 준비를 거의 끝냈었고, 30년이 훌쩍 넘도록 함께 살았던 어머니와 형과 같이 지낼 날이 두어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형과 함께 반지하, 옥탑방을 전전하며 여름엔 열대야와 곰팡이로, 겨울엔 보일러 동파와 혹한으로 고생했고, 어머니가 서울에 오신 뒤로는 그나마 강동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살며 좁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 이 시간들이 문득문득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의 삶은 또 그대로 새로운 추억들과 일상의 패턴들로 즐거울 테지만 그동안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조금은 생경한 떨림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시 주공 3단지는 엄청나게 큰 규모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로 그만큼 큰 또 다른 여러 주공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게다가 옛날 아파트답게 적어도 3단지 내에만 수 천 그루는 될 법한 5층 높이 이상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잎이 울창하게 핀 여름에는 해를 다 가릴 정도였고 잎이 모두 진 겨울에도 무수한 나뭇가지들로 마치 거대한 숲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가뜩이나 나무도 많고 길도 좁았는데 그 양 옆으로 차들은 또 어찌나 많이 주차되어있던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 마저도 약간은 그리울 정도다. 참, 그런 사소한 것들도 그리운데 더 중요한 것들은 어떠랴.


내가 살았던 강동의 주공 3단지 재개발 확정 후 단지는 더 어수선해졌고 그리움은 벌써 시작되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약간의 아쉬운 감정과 미묘한 생각들로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이, 내 눈 앞에 보이는 도로 위의 오래된 나뭇가지와 아침, 저녁으로 분주한 까치와 참새들과 그리고 길 양 옆으로 빼곡히 주차된 차까지. 이 아파트 단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차피 내가 이사 가버리면 보기 힘든 것들이고 나중에 3단지가 재개발이라도 되면 아예 볼 수 없는 것들일 텐데.


'만약, 내가 방금 막 미래에서 왔다면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반가울까? 이런 사소한 것들도 반가울 텐데, 어쩌면 다시 같이 살기는 힘들 어머니와 형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우리 집은 또 얼마나 반가울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미래에서 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1분 1초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가 얼마나 반갑고 눈물 나도록 그리웠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현재 사소한 모든 것 소중하게 느껴졌다. 옛날 아파트 단지답게 여기저기 나있는 작은 길들이 소중했고, 낡아빠진 아파트지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주는 주공 3단지가 소중했고, 무엇보다 항상 나를 지탱해주는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언젠가는 바뀌는 것들, 내 주변, 사소한 일상들, 그리고 가족 까지. 10년, 20년 뒤면 많은 것들이 변해있겠지만 만약, 당신이 20년 후로부터 지금에 와있다면 20년 후에는 그 어떤 비용과 방법으로도 누리지 못할 '몹시 그리운 나의 옛날'이 지금 실시간으로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고 당신은 지금 어쩌면 후회하지 않을 과거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또 나중에 그리울 시간'이라는 걸 깨달으면 삶은 달라진다

지나간 것, 지나는 중인 것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옛말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는 일상이, 내 가족이,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당신이 종종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그 동네, 자주 가던 그곳이 미래의 당신에게는 바로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 역시 더 후회하지 않게, 더 즐겁게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느라 이해심 깊은 와이프와 함께 좁은 빌라에서 꾸역꾸역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문득 4년 전에 떠올렸던 그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간 더 넓고 안락한 집에서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며 그리워할지도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순간을 즐기며, 마치 '미래에서 온 나'처럼 매일이 다시 주어진 것처럼 산다면 어쩌면 좀 더 잘, 좀 더 여유롭게, 또, 좀 더 세심하게 하루하루를 그리며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당신도 똑같이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당신에게 다시 주어진 그토록 그립던 과거'라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럼 지금 건강한 가족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지루해 보이던 일상이, 불만족스럽던 내 삶이 마치 '재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에 있어 시간이라는 것은 그 시간에 맞춰 따라가라는 의미보단 스스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미래를 제어하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더 이상 시간에 쫓겨'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시간을 얼마나 더 소중하게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Epilogue


아, 내가 살았던 강동의 그 주공 3단지는 3년 전부터 예상대로 재개발에 들어가서 이제 새로운 아파트가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주변의 다른 단지들에는 이미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된 곳도 있다. 그래서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면 형과 함께 그 동네를 가보는데 마치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가 재개발되어 사라진 마냥 낯설고 서글픈 아쉬움이 한동안 내 가슴에 맴돈다. (실제로 내가 살았던 아파트들은 거의 대부분 재개발되어 사라져 갔다.)




[이미지 출처]

메인 이미지: https://pixabay.com/ko/시간-시계-분-2943681/

이미지 1: 직접 촬영

이미지 2: https://www.entertales.com/childhood-memories-nostalgic-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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