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한 고등생물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두 컴컴한 저녁에 흉가나 폐가 같은 곳에 가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고층 아파트의 옥상 위에서 1층의 바닥을 바라볼 때 등골이 오싹하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생존본능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신체에 보내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이 위험 신호는 뇌에서 보내는데, 두뇌 안의 변연계에서 지시를 내린다.
가령,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우리는 즉시 손을 뗀다.
빗길에 지나가는 차가 흙탕물을 튀기면 우리의 눈커플은 자동으로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우리의 본능은 생존을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만약 변연계가 다치거나 고장 난다면?
당연히 변연계가 고장 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편도체는 영어로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한다.
왜? 이름이 아미그달라 일까?
아몬드 같이 생겨서 그렇다.
실제로 아몬드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크기는 1센티 정도이며 외부자극은 이곳으로 수집된다. 아미그달라가 불쾌, 유쾌, 호불호, 공포, 분노 등으로 분류해 감정을 일으킨다.
유명한 실험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쥐의 편도체를 제거한 실험이다.
편도체가 제거된 쥐는 겁이 없어져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면서도 공포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편도체를 제거한 여섯 마리의 원숭이를 정글에 풀어놓고 관찰을 했다.
실험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 빼고 모두 잡아먹혔다고 한다.
왜? 겁이 없어진 원숭이는 자신보다 강한 동물이나, 뱀과 같은 맹독을 지닌 동물에게도거리낌 없이 다가가거나 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편도체가 고장 난 인간은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잔인한 영화를 봐도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이고, 주사바늘에 찔려도, 마취 없이 치아를 뽑아도 통증을 못 느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해서, 변연계 편도체 제거 수술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일반적인 삶 속에서는 신체적 죽음을 느낄 만한 환경이 많지 않다.
기껏해야 차에 치일 정도?
직접적인 본능, 살해나 죽음에 의한 공포보다는
불안, 걱정, 불확실성, 스트레스에서 등에서 오는 심리적/ 정신적 두려움이 더욱 크다.
우리는 환경적 위협 보다는
정신적 위협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있다.
2021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이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너무 슬픈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10세부터 39세 까지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에 의해서 압도적인 사망률을 보였다.
나도 극단적인 선택.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던 때가 딱 3번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4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 나는 <집지니>라는 시공업체를 운영했다.
집지니는 '마법처럼 집을 바꿔주는, 요술램프 지니'라는 의미였다.
사업분야는 인테리어/건축 사업을 이었고, 온라인 홍보를 잘 한 덕분에 공사 계약이 물 밀듯 들어왔다.
돈을 벌 욕심에, 작은 공사건 큰 공사건 되는대로 계약을 계속 체결했다.
인원이 3명 남짓한 회사에서, 현장이 4-5개씩 돌아가니 새벽부터 신나서 일을 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과유불급.
하나둘씩 현장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몸은 하나고, 관리 현장이 늘어나다 보니, 현장관리와 퀄리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면, 바로 문제가 터졌다.
도배사가 남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서 물건이 안 와 인부들은 멍하니 담배 피우다 집에 가기도 했다. 어느 작업자는 작업현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버리고, 실내에서 담배를 펴 벽지에 냄새가 찌드는 등 등 하루에도 수십 건씩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문제가 터지면, 직업지, 고객, 거래처 등에서 전화가 와서 악을 쓰고 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중 압권은 염창동에 A 아파트에서 철거를 하다 배관을 건드려 물이 터지고,
광명에 B 현장에서는 공사 인부가 잠적했으며,
용인에 있는 C 상가에서는 문을 거꾸로 달아놓기도 하며강남에 있는 D현장에서는 화장실이 멀다며, 페인트통에 인부가 오줌을 싸 놓고 가는 일이 같은 시간대에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다.
공사 잔금을 주지않고 안하무인인 건축주들도 있었고, 일을 부풀려서 임금을 받아가는 인부도 있었으며, 직원의 실수로 견적 가격을 잘못 내는 일들도 많았다. 문제의 연속을 넘어, 문제가 폭포수 처럼 쏟아졌다.
하루에 기본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고, 대부분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는 언제나 나를 덮쳤다.
전화의 내용들은 주로 "대표님 문제가 터졌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 주세요."라는 식의 내용들이었다.
이런 일상이 매일, 매시간, 매순간 발생하다 보니
나는 운전하면서 가는 도중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졌다.
머리가 터질 듯하니, 집중력이 낮아졌고, 귓속 달팽이관에서는 삐- 하는 고주파 이명소리가 하루종일 들렸다.
길을 걷다. 멍하니 한 자리에 서있을 태도 있었고,
대장이 꼬인건지, 항상 설사를 했다.
새벽에 울리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잠을 뒤척이다. 새벽 5시에 뜬 눈으로 다시 일어나 현장으로 움직여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몸과 마음은 항상 곤비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띠링하고 울리는 벨소리는 그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 공황장애 증상도 동시에 일어났다.
주변 공간이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며,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의 내면에는 항상 헐크처럼 화가 나있었고, 짜증이 파리때 처럼 들끓었다. 이런 상태는 곧 무기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번 자리를 잡으니,
머릿속에 똬리를 튼 뱀처럼 도저히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이렇게 극도의 스트레스는 죽음의 문턱까지 나를 떠밀었다.
그때 나는 문득, 두려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살다 간 정말 죽겠구나.."
"아..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 모른다는 것. '무지'로부터 오는구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누군가로부터 어떤 전화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다.
어떤 암초가 나를 가라 앉힐지 몰랐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주변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상사의 뒷모습에서 내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고,
연인의 만남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다.
내일 주식장이 어떻게 폭락할지 모르기에 두렵고,
10년 뒤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에 두렵다. 도저히 내 삶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다.
모두가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듯 보였다.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했을까?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난 후, 나는 자신의 미래가 보였다.
이렇게 반복해서 삶을 살다 간 몸이 죽던, 영혼이 죽던, 정신이 죽던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노려보며 혼잣말로 읊조렸다.
"그만, 그만해야겠다. 내가 졌다."
어금니 꽉 깨물고, 하던 현장들을 끝까지 마무리 지었고, 모든 직원을 내보내고 2021년 건축 사업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