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또 Mar 31. 2024

시간이 약이라고 하여 일찍 잠에 든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회사 일엔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누가 뭐라 하든 간에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밥을 먹고. 최근 건강이 부쩍 나빠진 탓에 팀원분이 아침을 꼬박 챙겨주셨단다. 두통약을 먹는 횟수가 늘었고 그 까닭에 다른 약들은 줄여가는 중이다. 퇴근을 하고 나서는 누군가에게든 전화를 걸어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럼에도 충족되지 않는 헛헛함과 빈자리에 씁쓸히 통화를 끊고 만다.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잠을 잔다. 취미 생활도 손 뗀지 꽤 되었다. 열정을 다하는 일도 없어졌다. 무엇도 재미없고 무엇도 하기 싫어졌다. 지인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티가 난다며 한 소리 한다. 지질히 궁상맞은 내 모습을 걱정하는 걸 알아 달게 듣는다. 약속을 잡아도 즐겁지 않다. 술을 마시고픈데 건강상 문제가 될 우려와 굳게 잡아가는 마음을 자칫해서 흐트러지도록 할까 봐 마다한다.


얼마 전엔 도자기를 만드는 클래스에 참여해 보았다. 물레체험도 했었는데 자세와 힘 조절에 의해 변하는 모양이 신기하더라. 그리고 그러던 중에 그게 사람 마음 같았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엉망이 되어버리는 모양에 꼭 마음다웠다. 도자기를 빚듯 마음을 잘 잡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음 실수할 수도 있을듯했다. 남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불행으로 다시금 기어들어가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그런데 지금도 지옥이라면 다른 게 있을까도 싶다. 이런 식으로 나약해지는 타이밍에는 바짝 긴장해야 했다.


커튼을 치고 어둑한 방 안에서 주황색 조명을 켠다. 감성적으로 만드는 요인을 피해야 하는데 이미 가라앉은 기분, 좀처럼 신나는 걸 찾을 리 없다. 그래도 전에 듣던 노래는 듣지 않고 새로운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간다. 가사가 죄다 나를 말하는 것 같아 문제이다만 공감 가는 걸 가까이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저히 감정 컨트롤할 수 없을 듯한 날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잃을 게 두 배는 늘어날 것 같다.


서울을 못 가겠다. 더더욱 솔직해지자면 어디를 못 가겠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어디 멀리 떠나고 싶다. 하나 사람은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일 테지. 오히려 내가 겪은 슬픔이 남들 다 겪는 흔한 일들 중 하나라면 위로가 될 법하다. 못된 심보인 것도 같다.

주말이 지나갔고 다시 평일이 온다. 일곱시면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치고서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실어 갈 테다. 나쁜 쪽으론 빠지지 않아야 하나 현재 나는 누가 툭 치면 금방이라도 맥없이 그쪽으로 고꾸라질듯하다. 미래만 보고 나아가기엔 나의 지난 과거가 미래마저 얼룩지도록 보챘다. 지켜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얼른 시간이 가길 바라며 일찍이 잠에 든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결국 울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