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완 Mar 12. 2019

나는 왜 열등한가



지금도 그런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오도록 했다.


그 종이를 들여다보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한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듯 심각한 얼굴. 한참을 고민하던 엄마는 아빠의 직업란에 ‘노가다’라고 적었다. 노가다가 뭐야 엄마? 엄마는 답이 없었다.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답하기 곤란한 것이라는 건 눈치로 알 수 있었고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정환경 조사서엔 한 달 수입을 적는 칸도 있었다. (지금의 상식에선 의아하지만 그땐 그랬다.) 얼마를 적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관련된 항목엔 자가, 전세,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는데 또 한참을 고민하던 엄마는 옆에다 ‘사글세’라고 적었다. 역시 모르는 단어였지만 이번엔 묻지 않았다. 조사서 맨 아래엔 집에 있는 물건들에 체크하게 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자가용? 없고. 전화기? 없고. 냉장고? 없고. 없고, 없고, 없고……. 우리 집엔 없는 게 많았다. 칸을 많이 채우지 못해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이들은 각자의 가정환경 조사서를 비교하며 떠들어댔다. 철수네 집에 자동차 있대. 와, 좋겠다. 영희네 아빠는 경찰이래. 우아, 멋있다. 응? 너희 아빠는 노가다구나? 근데 노가다가 뭐야? 곤란했다. 나는 엄마처럼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내가 가난해진 순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가난해졌다. 그전엔 가난하지 않았다. 집이 갑자기 망했냐고? 아니, 입학 전과 입학 후의 집 사정은 똑같았다.

허름하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촌에 우리 집이 있었다. 대대적인 재개발로 강제철거되고 쫓겨나기 전까지 그 집에 살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각하’께서 우리 동네를 깨끗이 정리하라는 명을 내렸다. 곧 88올림픽이 열리는데 외국인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부끄러운 우리 동네는 ‘정리’되었다. 아무튼. 슬레이트를 대충 얹은 지붕, 벽은 있지만 제대로 된 문이 없어 맘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았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다. 몇몇 가구가 공동으로 쓰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냄새나고 더러운 것은 둘째 치고 항상 안에 사람이 있어 곤란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급한 상황이 오면 멀리 떨어진 다른 공동 화장실을 찾아 달렸다. 거기도 비어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딱히 불편하거나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곳이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모두가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았고 가난하다는 느낌이 무언지 알지 못했다. 입학하고 다른 환경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알던 세계는 무너졌다.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세계는 재구성됐다. 그리고 나는 절망했다. 재구성된 세계에서 나의 위치는 저기 아래였다. 그전까지 가난하지 않던 나의 삶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쾅! 내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대부분이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기준을 나보다 못한 사람에 두지 말고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두라고 배웠다. 아니, 그건 배울 필요도 없이 저절로 되는 것이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만 눈에 보였고 그래서 늘 불행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산다. (무려 수세식이다.) 아버지처럼 험한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문화생활도 즐긴다. 큰 발전이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겨우 이정도야? 나는 여전히 빈곤하다 느낀다.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아직도 내 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까? 절대적으로 가난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나는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을 본다. 한 청년이 스님에게 질문을 한다. 남들보다 못난 자신 때문에 너무 괴롭다는 그. 스님은 조용히 자기 앞에 있던 물컵을 손목시계 옆에 두더니 그에게 물었다. “이 컵이 커요, 작아요?” “커요.” 젊은이가 답했다.

이번엔 컵을 물병 옆에 두더니 물었다. “이 컵이 커요, 작아요?” “작아요.” 스님은 컵을 들고 손목시계와 물병을 오가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했다. 젊은이는 그때마다 커요, 작아요, 답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스님은 컵을 높이 들었다.

“이 컵이 커요, 작아요?”

공중에 홀로 떠 있는 컵을 보며 젊은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크다 작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컵은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다. 컵이 크다고 생각했을 때도, 작다고 생각했을 때도 컵(본질)은 항상 그대로였다.


열등함은 ‘존재’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존재가 열등한 게 아니라 열등하다고 의식할 뿐이라는 말씀. 아아, 젊은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내가 느끼는 빈곤 역시 마음의 문제. 나는 물병 옆을 떠나지 못하는 컵이었다. 물병을 기준으로 삼고는 나는 작다 울부짖고 있었다. 컵이 물병보다 작다고 해서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것뿐이다. 크기가 다르고, 재질이 다르고, 쓰임이 다르다. 비교를 통해 알아야 할 건 그게 전부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하필 컵일까요? 나는 물병이 좋은데. 아아, 도로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