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완 Mar 03. 2019

대책은 없습니다만






가끔 퇴사 질문을 받는다. “퇴사하는 게 좋을까요? 안 하는 게 좋을까요?”부터 “퇴사하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죠?”까지. 그런 질문을 받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나도 앞날이 캄캄하다고요. (웃음)

아마 내가 성공한 퇴사자의 좋은 본보기쯤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건 100퍼센트 오해. 나를 퇴사의 교본으로 삼았다가는 인생이 이상하게 꼬이는 수가 있다.


나는 잘 준비해서 퇴사한 케이스가 아니다. 내게 질문을 던지는 많은 사람과 똑같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대책 없이 퇴사한 경우라 누구에게 조언을 할 처지가 못 된다. 다행히 어쩌다 보니 책도 내고 또 그 책이 잘 팔리게 되어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그럭저럭 일상을 꾸려갈 수 있겠다 싶지만 처음부터 그걸 계획하거나 가능하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단순하게 말해 그냥 운이 좋았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퇴사 고민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퇴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에요.”


퇴사 후 삶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반대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좋아질 경우야 아무런 문제가 안 되지만 나빠지면 어쩌나. 책임질 수도 없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퇴사하고 싶으면 해라, 무책임한 말을 해선 안 되는 거다. 먹고사는 일은 언제나 무겁다. 그럼 회사에 남아 무조건 버티는 게 답이냐 물어오면, 그건 또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퇴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두렵다. 이유는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이 선택으로 삶이 더 좋아질까? 아니면 나빠질까? 아무도 모른다. 결과를 알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 길로 가보는 것. 그 방법밖에는 없다.


사실 나는 타고난 겁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살았다. 이젠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좀 지긋지긋하다고 할까. 잃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겁내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어차피 망한 인생인데, 뭘 더 걱정하는 거야? 없던 용기가 났다. 어쩌면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들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쨌든, 살면서 처음으로 막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결과 인생이 이렇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앞으로도 잘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우리에겐 ‘될 대로 돼라’ 정신이 필요하다. ‘될 대로 돼라’는 진짜 되는 대로 막살겠다는 말이 아니다. 겁내지 않겠다는 얘기다.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가보겠다는 담대함이다. 또한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책임감이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무서워’가 아닌, 어떻게 될지 몰라서 ‘궁금해’로 살면 인생은 한결 재미있는 것이 된다.


인생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인간이 아무리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마련하려 애를 써도 미래를 완벽히 준비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불확실성을 즐겨야 한다. 그럼으로써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설령 무겁고 무서운 것이라 해도 벌벌 떨면서 살고 싶지 않다.

가볍게 살고 싶다. 두려움보단 호기심으로 살고 싶다. 나는 어떻게 될까? 인생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놓는다 해도, 설령 그곳이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곳일지라도, 나는 거기서 또 잘 살아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아아, 밑도 끝도 없는 이 믿음. 정말 대책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