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하완 Feb 21. 2019

굶어 죽지 않을 거야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젊은이가 농촌에 내려가서 밥 해 먹는 얘기라니. 벌써부터 지루하다. 영화 포스터의 밝은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살인사건도 섹스도 없을 게 분명해 보이는 이 영화. 모처럼 생긴 무료 관람권을 버릴 순 없으니 보긴 본다만,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다. 


착각이었다. 완전 내 취향이었다. 이래서 뭐든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는 거다. 나이가 들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 이놈의 편견. 아무튼.

어떤 영화는 첫 장면만으로 느낌이 온다. 전체를 다 보지 않았음에도 사랑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드는. <리틀 포레스트>가 그랬다. 눈 내리는 겨울날, 한 여자가 시골 빈집에 들어선다. 밤이 되자 배가 고파진 그녀. 집안을 뒤져 먹을 걸 찾아보지만 쌀 한 줌이 전부다. 그걸 본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이거면 됐어, 하는 표정이다. 그녀는 한 손에 부엌칼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이봐, 뭘 잡으러 가는 거야? 섬뜩) 다음 이어지는 장면에 나는 안도하는 동시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달밤에 칼을 든 여자가 눈 쌓인 밭을 마구 헤집는 장면이라니.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럽다. 그나저나 눈 속에 뭐가 있긴 있을까? 놀랍게도 싱싱하게 잎이 붙은 배추가 나온다. 그걸 잘라다가 된장국을 끓인다. 이 여자, 굶어 죽진 않겠다. 배추 된장국과 하얀 쌀밥, 그게 전부인 초라한 밥상인데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고 있는 내 배가 다 따뜻하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농촌 생활이 필요 이상으로 예쁘게 그려지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으로 오세요.” 손짓하는 귀농 판타지는 확실히 아니다. 농촌 생활에 대한 리얼함이 떨어진다는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적어도 나에겐). 애초에 이 영화는 그런 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도망치는 이야기로 읽었다. 

주인공 혜원은 도시로부터 도망쳤다. 도시에서의 일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 쪽팔리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속으론 큰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피를 뚝뚝 흘리며 나고 자란 고향 집으로 숨는다. 엄마도 떠나고 아무도 없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동굴로. 철저하게 고립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더 다치는 것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보이기도 싫은 마음. 그럴 땐 동굴이 제격이다.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냐는 친구의 물음에 혜원은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배가 고파서.”

도시에서도 밥은 먹고 다녔지만 그녀는 늘 허기가 졌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는 무엇이었을까. 도망쳐 내려온 고향에서 혜원은 돈을 벌지 않는다(그곳엔 돈 벌 곳이 없다). 대신 진짜 ‘먹고사는’ 일에 몰두한다.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것들로 음식을 만들고 자신을 먹인다. 재료를 기르고, 거두고, 그것으로 적절한 음식을 해 먹는 것을 통해 그녀는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상처를 보듬는다. 그렇게 동굴에서의 일 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됐을 때, 혜원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도시로 향한다.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다시 일으킨 힘은.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을 보며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가 떠올랐다. 퇴사 후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신작 <먹고사는 것에 대하여>에서 밝히길 퇴사 후에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한다. 완벽히 자유롭고 평온하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준 것은 모아둔 저축도 글 쓰는 재주도 아닌 ‘요리’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 시장에서 저렴하게 산 재료들로 직접 요리를 해서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것. 하루 세끼, 매일매일. 그런 삶을 통해 인간이 진짜 먹고사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더 많은 돈이 자신을 자유롭게 할 거란 믿음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돈이 많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녀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돈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이런 게 진짜 ‘경제적 자유’가 아닐까. 

누군가는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욕심이 우리를 허기지게 하는 건 아닐까. 사실 밥만 먹고도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걸 아는 게 힘이라는 거다. 


다시 <리틀 포레스트>로 돌아와서, 동굴 속엔 타인이 없다. 조언도 없고 비교도 없다. 한마디로 잡음이 없는 세계다. 그런 상태라야 제대로 보인다. 숨겨졌던, 어쩌면 대단치 않다고 여겼던 내 안의 큰 힘이. 혜원이 동굴에서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먹이며 느낀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도,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살아남았구나. 심지어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 않았구나. 나에겐 어떻게든 살아내는 힘이 있구나 하는 자신감 아니었을까.


그래. 굶어 죽기야 하겠어?


힘들 때마다, 혹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 사실을 되새길 수 있다면 동굴 밖 세상도 그리 무서운 곳만은 아닐 거다. 그녀는 절대 굶어 죽지 않을 거다. 나는 그녀가 부엌칼을 들고 눈 속을 헤집을 때부터 그걸 알아봤다. 그러니 더 이상 겁내지 말고 걸어가길. 무엇을 하든 그녀를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외인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