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느새 이직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 바빴던 시기를 지나, 이젠 ‘일하는 나'의 정체성을 세울 때라고 느꼈다.
내가 가진 역량은 무엇일까?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강점 검사도 해보았고 업무 회고도 하고 있지만 보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보고 싶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듣기로 했다.
그래서 ‘입사 1주년 기념 피드백 레터'라는 이름을 달고 설문지를 사내에 뿌렸다.
이것도 결국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가 중요했다. 다들 바쁘신 중에,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도 아닌데 나의 개인적 성장을 위해 피드백을 요청드려야 했다. 그래서 최대한 쉽게, 오래 고민하지 않고 피드백을 주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또한 정량적인 통계도 가능했으면 했다.
일단 대상은 업무적 커뮤니케이션을 해봤거나, 같이 해본 일이 있는 분들. 도구는 무료 설문지 폼 중 가장 유명하고 익숙한 구글 폼을 사용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피드백 레터의 UX를 고민했다.
일반적인 역량과 함께 직무 특성에 맞는 역량 키워드들을 33개 선별하여 제시하고 이 중에서 나의 강점과 약점을 골라달라고 부탁드렸다. (중복 가능으로!)
객관식 질문은 답변하는 사람도 편하게 할 수 있고, 정량화하기에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약점 같은 경우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완할 점'처럼 부드러운 단어로 바꾸고 부담갖지 말라는 의도의 캡션을 달아두었다. 평가보다는 성장을 위한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고른 다음엔 간단하게 이유를 여쭤봤다.
아무리 대면이 아니라도 함께 일하는 사이에 직접적인 평가를 하는 게 불편할 수 있기에, 피드백은 익명으로 받았다. 다만 어떤 업무 접점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소속 파트(우리 회사는 기능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만 비슷한 것끼리 합쳐 선택하도록 했다. 아무래도 각자 직무나 업무 접점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것 같았다.
파트 선택 항목은 설문 맨 마지막에 두었다. 개인정보와 관련된 질문은 항상 설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맨 마지막에 물어보는 게 좋다. (이 경우 개인정보까진 아니지만, 솔직한 피드백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익히 알려져 있듯, 한 화면에서 요구되는 액션이 적을수록 더 쉽게 액션할 수 있고, 심적 부담도 적어진다. 그래서 피드백 레터는 질문별로 총 4가지 페이지로 나누고, 메인이 되는 키워드 고르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심플하게 구성했다.
구글 폼은 페이지 구분을 '섹션'으로 할 수 있는데, 내가 구성한 질문별 섹션(페이지)은 아래와 같다.
1. 회사에서의 저는 한마디로 어떤 사람일까요?
2. 저의 업무적 강점 키워드를 고른다면? (+이유)
3. 제가 업무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을 키워드로 고른다면? (+이유)
4. 마지막으로 조언해주고 싶으신 게 있다면? + 소속 파트 선택
한 페이지에 질문 1,2개씩만 나오게 하고, 질문도 심플하게 정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꾹 참았다.
너무 날것의 데이터라 좋은 것(강점)만 올려본다.
모두 알겠지만, 구글 폼은 결과를 아래처럼 나름대로 그래프로 보여주고, 결과값은 구글 스프레드시트로도 뽑을 수 있다. 당연히 스프레드시트로도 뽑아 정리해 두었다.
총 15명의 고마운 분들이 응답해 주셨는데, 생각보다 다들 정성스럽게 적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인사이트라 직무 파트별로 나누어 꼼꼼하게 정리해 두었다.
이건 노션에 다시 정리해본, 내가 속한 파트에서 답변주신 나의 강점과 보완점 통계이다.
(아무래도 파트 특성상 개발자 비중이 높다보니 그건 감안해서 보아야 한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게 되면 책임감, 논리적, 성장의지, 계획적, 주도적 키워드가 가장 많이 나왔다.)
여기 올리진 못하지만, 강점&보완점의 이유와 조언들도 노션에 정리하고 코멘트를 달아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일하는 나'의 강점을, 많이 나온 키워드들과 그 이유를 중심으로 정의해 보았다.
다른 직군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원하는 바를 말과 문서로 잘 정리하여 표현한다.
본인 업무에 책임감이 투철하며 성장의지가 높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뛰어난 업무이해력 & 개발이해력과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업무 시에는 계획적이며 주도적으로 임하여 행동력을 가진다.
이런 걸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성장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직장에서의 나를 보다 객관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재미있는 부분은 직무 파트별로 많이 골라주신 역량 키워드가 달랐다. 프로덕트&개발 파트에서는 개발자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꼼꼼함, 디테일 등의 요소가 나의 보완할 점으로 나왔는데, 다른 파트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나왔다. 개발자분들의 디테일을 따라가려면 아직 더 노력해야 하나 보다.
다른 파트에서는 비즈니스적 시야가 보완점 키워드 중 가장 많았다. 아무래도 비즈니스가 중요한 파트들이라 그런 듯 하다. 나 스스로도 부족하다 느끼고, 더 키우고 싶은 역량 중 하나이다.
그리고 사실 여기에 공개하기엔 적어주신 분들께 허락을 구하지 않아 올리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칭찬과 격려와 조언이 쏟아져 감동이었다. 칭찬도 구체적인 이유를 적어주신 분들도 많고, 보완점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게 마음을 다해 조언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글 첫머리에 ‘나는 잘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을 받은 기분이었다.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해나가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