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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보다는 무심함

by 천동원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에 익숙해진다. 찾아볼게요, 언제 만나자, 등의 약속이 그냥 하는 소리로 듣고 굳이 확답을 주고받지 않는다.



귀가 순해지니 답하는 말도 순해진다. 일상에 익숙해진 버릇이 언행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대답이 유순해지니 기억도 희미해졌다.



서로 말을 할 때는 좋았지만 뒤돌아 서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무심코 말하는 재미만 느꼈을 뿐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와 재잘거리는 것이라고 한다. 주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서로 이야기함으로써 좋지 않은 기분은 나아지고 나빴던 감정은 풀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무관심하게 먼 산을 보며 뜻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노년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멍한 노인이라고 보이는 것은 자체 기분 전환 중이며 에너지 보충 중이라는 것이니 가만히 내버려 두자. 무심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지인이나 친구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이다.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봐왔기에 친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도 그다지 슬픔이나 비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죽음을 봐왔던 익숙함이기에 무심함으로 나타나는 것일 게다.



삶과 죽음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초연함이 그런 무표정의 무관심을 드러내게 한다. 더욱이 얼굴과 목덜미의 주름은 감정이 점차 메말라가는 세월의 흔적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함이 무심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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