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초기화된 핸드폰을 들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험도 끝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취업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학교에서 개최하는 설명회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뛰어다닌 결과, 그녀는 TV드라마를 만드는 스튜디오 업체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입사하고 1년은 금방 지나갔다. 공부를 하는 것이든 일을 하는 것이든 밤을 새우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도 아직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환경에 맞추어 나갔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이 주는 의무는 어쩌면 개인의 권리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선결 조건일 수 있다. 시스템이 주는 개인 생활의 안정은 책임 있는 자유와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방송실 동아리 동기들과의 모임은 간혹 가졌다. 그러다 어느 날 모임의 대화 중에 황인성선배의 소식을 물었다. 동아리 동기 중 한 명이 그 선배는 조그만 지역 방송국 PD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그의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검색사이트에서 그 지역 방송국을 검색하여 대표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오후 그녀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보통 회사의 대표 전화라면 여성직원이 받아서 안내와 설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는 선배의 이름과 소속부서를 말하고 바꿔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혹시 중간에 전화의 연결이 끊길 수도 있으니 소속부서의 직통번호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부서별 직통번호는 없으며 대표전화를 통해서 교환된다고 하였다.
잠시 후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황인성 님 계시면 통화하고 싶습니다.”
“접니다.”
“선배님, 저 김민혜예요.”
“어어, 김민혜. 오랜만이네.”
“잘 계시는지요. 그동안 연락 없이 이렇게 불쑥 안부전화 드려요.”
“응, 그래 고마워.”
“선배님 보고 싶어 전화했어요. 언제 시간 되세요? 점심 함께 하고 싶어요.”
그는 그녀가 불현듯 왜 전화를 걸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1년 전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할 때 그녀의 핸드폰에서 스파이앱을 발견하고 초기화를 시킨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이후의 소식이 궁금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그녀는 그를 만났다. 대학교 때 같은 동아리의 선배와 후배라는 연결고리는 형식적인 만남을 뛰어넘는 친밀함이 있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중의 하나인 학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궁금했던 그 사건 이후의 일을 물어보았다.
선배는 1년 전의 그 일이 있었던 이후 그 사람들이 가게로 다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특히 국가관과 안보관 그리고 세계관까지 묻더라는 것이었다. 무슨 면접을 보는듯한 느낌이었고 질문이 일반 회사 입사 시 하는 질문과는 다른 시스템적인 거창한 물음이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엔 누구나 개혁진보가 되고 늙어서는 모두가 보수가 된다고 한다. 그랬다. 그 당시 선배는 그나마 자기 철학이 확고하게 있어서 신념을 나타내는 웅변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개똥철학이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묻는 국가관, 세계관, 안보관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확고한 자기 신념을 나타내었고 그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그 사람들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국가공무원 7급 특별채용이라는 제의였다. 선배는 의아한 생각에 이번엔 선배가 먼저 그 사람들과 연락하여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스파이앱을 풀어서 오픈한 사람이 궁금해서 선배를 찾았고 그리고 그 정도 실력이면 우리 회사에 소용이 닿을 것 같아 내부 회의를 거쳐서 특채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스파이앱은 오픈을 하게 되면 바로 회사의 감시컴퓨터와 자동연결되어 오픈한 장소의 위치가 표시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선배 가게에 들이닥친 것이다. 시간이 걸리니까 우선은 지구대 경찰을 보내어 시간을 끌고 뒤이어 회사원이 출동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핸드폰에 심어진 스파이앱은 한민족의 목소리라는 북한 매체에 접속한 것이 회사 감시컴퓨터망에 포착되었고 안보적 측면에서 우선 파악을 위해 회사의 업무 순서대로 그녀의 핸드폰에 스파이앱이 깔렸던 것이라고 했다.
일정 기간의 감시 후 이상징후가 없으면 스파이앱을 제거해야 하지만 그대로 두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녀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리고 대외비인 그 회사의 이름은 “한민족 공동체 방송”이라는 지역방송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의 특채를 결정한 가장 주된 이유는 돈과 인력이 드는 감시와 통제보다는 자기 조직에 끌어들여 재능과 머리를 활용하는 편이 시스템 전체로 봐서 이익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철저하게 신원조회는 거쳤을 것이다. 과거에는 신념이라는 관념적 투쟁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동이 현실적 일상이다. 자기표현보다 자기만족이 우선인 시대인 것이다.
그 모든 인간형의 공통적인 것은 한 개의 꼭짓점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결국 자기만의 독특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특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