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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Oct 17. 2017

국밥

늦은 나이에 젊고 이쁜 연예인을 색시로 얻은 재력있는 음식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있다.  

그 양반이 하는 맛집 프로그램이 요즘 TV에 자주 나온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 라서 인기가 있다기 보다는

먹는 모습이 너무 복스러워서 그럴거라는 생각도 든다.


밀양에 있는 시장.

그 시장안에 나이드신 할머님 한분이 하시는 돼지국밥집이 소개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캠핑을 다녀오는 길에 밀양에 들렀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라는 작은 호기심,

캠핑 장소가 밀양과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도 크지 않았다.     


시골 시장이 다 그렇듯, 좁은 골목이 얼기설기 열려있어

초행길, 블로그에 소개된 작은 약도만으로는 찾기가 싶지 않았다.

인상 좋아 보이는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서너차례 물어물어 찾을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 가기 쉽지도 않고,  그다지 위생스러워 보이지 않는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간 것은 TV에 나와서도 아니고, 가까워서도 아니었다.     



지금의 아내는 돼지국밥을 참 좋아한다.     

대학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경북 구미에 있었고,  

아내는 경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대중교통도 편한시절이 아니어서 아내가 나를 보러 올려면,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학생신분에 뭐그리 여유가 있었겠는가.

먼길 찾아온 아내, 아니 여자친구에게 뭐라도 사먹여야 했다.

그 시절 굶고 살만큼 형편이 나쁜시절도 아니었고, 자취방에 쌀이 떨어질 정도로

궁핍하게 부모님은 나를 키우시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요즘처럼 작은 돈으로도 뭘 먹을지 몰라 선택장애를 주는 그런 시절은 아닌지라,

학생신분에 둘이 같이 편하게 식사 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동문 선배들을 따라 두어번 갔던 시장골목에 있는 돼지국밥집이 생각났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던 나이.      

골목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육것의 누린내

집집마다 돼지 대가리를 넣은 솥에서 토해내는 희뿌연 김.

기름이 둥둥 뜬 뜨끈한 국물, 

부위를 알 수 없는 삶은고기, 

어린아이 주먹만한 깍두기에

지금보다는 많이 독한 소주한잔은 

그 시절 나에게는 정말 호사스런 한끼였다.     



지금의 아내는 그때 그 골목의 냄새가 싫었다고 한다.


깨작거리는 여자친구 앞에서  ‘이 좋은걸...이 맛있는걸...’  하면서 

깨작거리던 여자친구의 국밥까지 다 먹었다.  

사줄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었다.

배도 채우고 술도 한잔할 수 있는 값싼 아니, 

그때 나에게는 감내할 수 있는 가격의 메뉴는 

누린내 나는 골목에서 파는 돼지국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였을거다. 그래서 더 맛있게, 양이 모자른 듯,

기껏 두어번 본 주인아주머니와 마치 수십년 단골인 마냥 친한척 했을 것이다.     



국밥에 돌맹이라도 빠진 듯 깨작거리던 그 여자친구는 돼지 수육을 잘 삶는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구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때 그집의 돼지국밥이 제일 맛있었다며,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고 한다.     

그동네가 재개발이 되어 지금은 빌딩들이 다 들어서서 찾을래도 찾을수가 없으며,

찾는다해도 그 친한척한 아줌마는 장사도 안하고 빌딩에서 월세나 받으며,

맛사지나 받으러 다닐거 같아 찾아볼 생각을 나는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겐 그때의 돼지국밥이 어쩔수 없는 데이트 메뉴여서 그런지

다시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고 느낄만큼의 맛은 아니었던거 같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오일에 한번씩 장이 섰다.

오일에 한번씩 장이 서는 전날은 앞집의 아저씨가 가장 바빴다.

다른 장사치들은 장날에만 바빴지만,

그 아저씨는 그 전날만 바빴다.


평소에는 고기만 끈어 팔았지만, 장날에는 고기도 구워팔고, 

순대국밥도 말아서 같이 팔았다.

장날에 팔 고기와 음식재료로 쓰일 고기를 장만하기 위해 

그 아저씨는 매번 오일장, 전날 돼지를 잡았다.     


우리집 앞 신작로 바로 건너 그 아저씨의 집이었고, 

그 집에서 그 아저씨는 돼지를 잡았다.  

어린시절 내일이 장날인지는 그 아저씨가 들려주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장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어머니가 손을 잡고 이끄신다.

시커먼 아궁이 옆 부뚜막에는 따끈한 순대국밥이 노란 양은냄비에 담겨 있었다.     

없는 형편에 가족들을 다 먹일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기억에 한냄비 오백원 이었다.


그때의 아궁이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피던 

내가 살던 고향은 재개발도 되지 않았지만,

그 잊을수 없는 순대국밥을 만든 아주머니도 

돼지 멱을 따던 아저씨도 다 돌아가셨다.          


아마 한수저 맛도 안보신 어머니 앞에서 난 양은냄비를 다 비웠다.


그날 저녁을 남긴 나는  

아버지에게도 누이들에게도 점심때 먹은 돼지국밥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2017.8.16.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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