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슬비 Apr 28. 2020

등산이 좋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지난주에 등산을 다녀왔다. 원래 등산을 자주 다녔냐고? 그렇진 않다. 친구의 권유로 등산을 다녀왔을 뿐이다. 등산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부모님세대가 좋아하는 운동인 만큼 등산을 고리타분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 나이에 등산을 시작했다고 하면 이런 소리 듣기 십상이다. “너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자존심 때문인지 운동만큼은 멋있고 트렌디한걸 하고 싶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 철부지인게 분명하다.


그래도 이왕 해보는 김에 좋은 정기를 얻어오고 싶었다. 끊임없이 걷고 오르다보니 등산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등산의 매력이 떠올랐다. 산에선 멋진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이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의 나무들, 푸릇한 야생화, 꿀 같은 향기를 내뿜는 꽃들은 탄식을 자아냈다. 이 말이 떠올랐다.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친구들과는 신선이 된 것 같다며 휘파람 풍류를 불어댔다. 그러나 그 휘파람 소리는 어느새 잠잠해졌다. 점점 자연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힘들어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연예찬은 매우 잠깐이었다. 등산 예찬론자들에게 이렇게 반박을 하고 싶어졌다. 자연을 예찬하고 싶다면 등산보다는 여행이다.


그래도 결국은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이르니 등산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다른 이야기가 생각났다. 바로 산은 인생과 같다는 말이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결국 성취를 이뤄낸다는 것, 방향이 옳으면 방황하는 것 같아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 등이 그런 말이다. 나 역시 오르내리며 인생을 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하산하자마자 무효해졌다. 뒤풀이겸으로 한 잔씩 들이킨 맥주 때문이었다. 나에겐 차라리 술 한 잔에 인생이 담겼다는 말이 더 깊게 느껴졌다. 실제로 술자리에서 오고간 희노애락과 삶의 추락과 상승의 이야기가 훨씬 교훈적이었다. 인생은 산보단 술 한 잔이다.


그럼에도 나는 산을 두어 번 더 다녀왔다. 산 예찬론자들이 말하지 않은 등산의 매력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산 밑 세상과는 달리 산에는 논리나 합리가 없다. 자연의 섭리만 있다. 정신없이 오르다보면 주위엔 딱 두 가지만 있다. 알아서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과 거친 숨을 내쉬는 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것이구나. 내 삶의 쓸모를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산에서는 그 사실이 마음을 풍족하게 하고 평안하게 했다.

산 밑으로 내려가면 이 마음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불만족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다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목적을 찾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갖가지 논리와 합리를 들먹이며 머리를 굴린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삶이 불만족스러워진다. 그럴 때 산이 주는 마음은 나의 살아있음을 존재 이유의 최상위로 올려준다. 그 이유만으로 만족감을 준다. 제일 좋은 것은 산에 오르지 않고도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하는 것이지만 나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자연예찬은 산보다 여행, 인생철학은 산보다 술이지만 불만족의 균형은 산이 짱이다. 나는 종종, 아니 더 자주 산에 오를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하와이 매력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