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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on Lee Apr 15. 2018

#5. Family Health History

가족력과 유전체의학 이야기

이번장에서는 유전체의학과 가족력(Family health history)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가족력은 제 포닥 시절 연구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분야라 할수 있습니다


가족력이란 한마디로 나와 내 가족의 질병 이력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직계가족들은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족 중에 특정 병의 이력이 있으면 나에게도 있거나 앞으로 생길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족의 병력 (병의 종류와 발병시기, 사망원인 여부)을 종합하면 나에게 어떤 병이 (몇살때) 생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는)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족력이라고 하면 특정한 병이 생길 확률이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보이긴 하지만 역으로 어떤 유해요소에 특별나게 강한 체질인 정보도 중요합니다. 흔히 볼수 있는 예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평생 흡연을 해도 폐암은 고사하고 기침도 안 하는 반면 그 옆에서 간접 흡연한 가까운 사람들은 폐암에 걸릴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튼튼한 폐를 만들어주는 유전자를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내는 담배가 보약이닝께 내걱정말고 너그들이나 챙기그라


우리나라는 일차의료(Primary care)라는 것이 거지반 붕괴되었다라고들 합니다만, 원래는 어디가 아파서 외래환자로 클리닉에 약속 잡고 가면 닥터가 가족력을 물어봅니다. (혹은 접수할때 설문지에 적어내고 간호사나 의사가 필요한 경우 확인차 물어봅니다) 가족력은 환자가 뭔가 특정한 종류의 문제를 안고 있을때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물어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쪽이든 암으로 돌아가신분 계세요?

친척 중에 유방암 / 난소암 앓으신 분 계신가요?

몇살때 돌아가셨나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가족은 직계가족을 말합니다. 가족력이라는 것을 알게 될수록 내가 어떤 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생활방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폐암 가족력이 있고 발병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 피우던 담배를 퍽이나 끊을수도 있습니다. 바랄걸 바래야지 필자의 동료였던 David Talyor는 이러한 과정을 삼단계로 구분하였는데, 1) 가족력의 수집, 2) 위험도의 평가, 3) 임상의사결정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의료정보학 관점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환자의 가족력을 정확하게 수집하고 체계화된 정보로 저장하며, 이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후 위험도를 계산하고, 이 정보를 효과적으로 임상의사결정에 활용함으로써 환자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력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실제로 병이 가족에게 나타난 결과이고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어떤 유전인자 + 환경인자가 그걸 초래하였는가의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유전체 분석 가격이 여태까지와 같은 추세로 계속 저렴해지고 유전인자와 병력과의 관계를 밝히는 알고리즘이 발전한다면 궁극적으로는 개인 유전체 분석 정보가 현재의 가족력 정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유전정보는 어디까지나 인자일뿐 가족력의 많은 부분 (병력, 사망정보, 발병내역, 사회적 관계 등)을 완전 대체할 수는 없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리라 봅니다.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저 위의 3단계의 좋은 예는 안젤리나 졸리입니다. 졸리에게는 10여년 동안 암 투병 끝에 56세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셨으며 유전자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이 BRCA1 보유자임을 알게 되었고 (1단계), 어떤 알고리즘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술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것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당시 나이로 계산했다고 보입니다: 2단계)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양쪽 유방 절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3단계). 수술 후에는 확률이 5%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연예인은 역시 뭘해도 간지가..

이렇게 일차진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족력이지만 임상의사결정에 필요한 정확한 가족력을 수집하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보 수집과 모델링의 어려움만 놓고 보면 임상의료정보 종류를 통털어 가장 까다로운 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첫째로 가족력은 환자의 개인적인 기억에 대부분 의존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는 일반인이지 의료인이 아닌지라 모호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는 심장 쪽이 항상 안 좋으셔서 여러번 응급실에 가셔야 했는데 정확한 병명이 뭐였더라... 뭐 이런식으로들 기억합니다. 필자의 포닥 연구중 짧은 파트 하나는 환자의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가족력을 기억하는 패턴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는데, 여성환자는 남성환자에 비해 부모/조부모의 가족력을 기억하는 정보의 양이나 정확도가 확연히 높습니다. 아들들이 다 그렇죠 뭘바래 아무튼 기억이라는게 영 믿을게 못되고 부모 정도만 되어도 그래도 괜찮으나 조부모, 친척까지 가면 정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둘째로 가족력은 일반적으로 꽤나 복잡하고 정보량이 많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한 형태로 축약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혈관계 가족력 있음" 등으로요. 어떤 경우에는 이 간단한 표현으로도 임상의사결정에는 충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가족력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보통 아래와 같은 형태로 족보를 다 그린 후 각각의 사람마다 병력기록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위의 간단한 예를 Narrative text family history, 아래의 예를 Pedigree based family history라고 합니다. 



문제는 저런 형태의 가족력을 다 수집하는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문헌상 알려진 바로는 일차진료에서 필요한 가계도 기반의 가족력을 충분히 수집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0분 남짓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차진료의들이 가족력 관련하여 환자와 대화하는 평균시간은 2.5분이라고 합니다 (Acheson, 2000). 한국에서는 그리고 30초후면 환자분 집에 가실 시간입니다  또한 응급상황에서는 한가하게 가족력 물어보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닥터얭: 혹시 가족중에 심혈관 질환 있는 분 계신가요?


따라서 환자가 평소에 가족력을 미리미리 작성해 놓는다면 이 정보는 나중에 필요한 때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잇습니다. 다들 살기 바쁜데 누가 그런걸 평소에 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미국사람들은 이런데 관심이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필자의 연구 중에서 특정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가족력을 잘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인터마운틴의 경우 환자대상 포털 사이트 안에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이 있어 자기 가족력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툴 이름은 OurFamilyHealth이고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인터마운틴의 Active patient가 40만명정도인데 반해 여태까지 수집된 정보는 1만명 정도이니 꽤 참여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툴을 보면 가계도의 가운데에 위치한 필자를 기준으로 윗쪽에 조상들, 아래쪽에 후손들이 있으며 성별에 따라 색이 다르고 그외에 나이, 생존여부, 질병 이력들이 요약되어 표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입력된 정보는 인터마운틴 시스템에 저장되어 위험도 분석 등에 쓰이거나 의사의 Problem list 등에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Family Health History란 결국 Family(Pedigree)와 Health 두 정보의 통합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Health를 빼고 Family만 보자면 이는 사실 가족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족보와 다름 없습니다. 이제 다시 아까 "가족력은 정보량이 많고 수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로 돌아가봅시다. 만약 기존에 이미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는 곳이 있다면 굳이 전체 가족력을 백지부터 수집하기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데이터베이스이던지 이미 나의 가계도가 저장되어 있다면 그 위에 각 가족들의 질병이력만 추가로 입력하면 됩니다. 여기에서 가족력의 의료정보학적으로 재미있는 특성을 알수 있는데, 다른 정보들에 비해 통합/연결의 여지가 매우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력이라는 정보 자체가 Social network 나 Social history를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일명 조상찾기 사이트로 가장 잘 알려진 Ancestry.com이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역사적으로 인구집단의 이동이 극히 드물었던 한국인에 비해 미국인은 국가의 탄생 자체가 이민에 의해 이루어졌고 초창기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자기 땅 갖고 싶어 온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예나지금이나 내집마련이 꿈 우아하게 족보를 따지고 유지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3대만 지나면 조상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되었고, 미국인들이 먹고 살만해진 현대에 와서 IT기술을 활용해 조상찾는데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많은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왔기에 이 시기의 이민선의 승선기록은 아주 유용한 정보원입니다.


알고보면 우리보다 더 족보따지는 미쿡사람들
Ancestry.com의 Family tree. 병력이 없는 대신 사진을 넣거나 생존년도 등의 정보가 더 강조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Ancestry.com)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가계도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서비스는 두 곳인데, Ancestry.com와 FamilySearch 입니다. Ancestry는 원래 조상찾기 서비스로 시작하여 자체적인 DTC (Direct To Customer) 유전체 분석 서비스인 AncestryDNA로 비즈니스를 확장하였고 2015년 기준으로 시퀀싱 볼륨이 이 분야의 강자 23andMe를 두배나 압도하면서 개인유전체정보 및 가족력 서비스의 일인자로 등극합니다. 작년부터는 인터마운틴의 OurFamilyHealth처럼 가계도에 병력을 추가할 수 있는 AncestryHealth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것이 상용화되면 가계도 / 유전체 / 병력의 골든 트라이앵글을 완성하리라 예상됩니다.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Ancestry DNA 키트 (부스 뒷쪽)


또다른 가계도 데이터베이스인 FamilySearch는 몰몬교회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이며 원래는 신도들의 교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데이터는 의외로 유전체 관련 연구하기에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유는 대상 인구집단인 유타주와 그 인근주의 주민들이 백여년 이상 외부와의 교류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인 인종집단의 유전적 형질이 꽤 잘 유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교류가 있을래야 있을수가 없는 동네의 모습


FamilySearch는 비영리기관이 보유하고 있기에 Ancestry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운용하지는 않지만 가족력 데이터 소스의 확보와 기존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기 위해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즉 FamilySearch 데이터를 활용해 웹이든 모바일이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수 있으며 현재는 앱스토어 형태의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프로젝트 중 하나는 API를 이용하여OurFamilyHealth와 FamilySearch 두 시스템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이번 챕터도 마지막은 제 자랑으로 마무리합니다


유전체의학 및 Social history와 결합된 가족력은 많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유망한 연구분야로 보이는 데 이유는 두가지 정도입니다. 첫번째로, 인간 지놈 시퀀싱이 최초로 완성된 이래 우리는 인간이 기계론적 결정론, 즉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유전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습니다. 여기서 운명이란 비단 유전형질 뿐 아니라 성격, 생활습관, 페이스북 중독 등의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는 많은 것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결과로는 유전자는 극히 일부 요인에 불과하며 후생유전학, 환경요인, Social history, 아버지 직업 등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족력 연구는 이러한 복잡한 인과관계를 밝히는 어려운 연구이자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수 있는 큰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정보학적으로 미래의 가족력은 대량의 정보를 처리해야하는 도전이 예상되는 분야입니다. IBM은 이전에 Health 데이터는 10%의 의료, 30%의 유전체, 60%의 Lifelog 데이터로 이루어질것이라 한바 있는데, 가족력 연구는 이 세가지를 모두 다뤄야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는 이런 분야에 얼마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포닥을 마친 지금에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이며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함께 연구하는데 관심있는 분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참고문헌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5/2013051500819.html 


Acheson LS, Wiesner GL, Zyzanski SJ, Goodwin MA, Stange KC. Family history-taking in community family practice: implications for genetic screening. Genet Med 2000;2: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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