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지금부터 하지 뭐

시작

by 세상 사람


얼마 전 볼일이 있어 도심에 나갔다가 마침 도래한 퇴근시간에 맞춰 고층빌딩을 나오는 직장인들의 틈바구니에 놓이게 되었다. 9 to 6의 삶에 기대를 품지 않은 지 꽤 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인의 삶이 다시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규칙적인 생활과 그에 따르는 안정적인 수입, 반듯한 정장은 아니더라도 속한 조직에 걸맞은 사회적 자아가 반영된 외출복, 꼿꼿한 긴장감과 한 손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 어쨌든 서로 최적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매너인 일적인 관계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직의 일원으로서 얻는 소속감. 이런 이미지가 빌딩 숲 사이사이에서 스며 나오던 이날 역시, 다시 저 이미지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든 것 같다. 물론 비정기적인 돈벌이와 그에 따른 불안에 대한 싫증 때문도 있다.


며칠 후인 오늘 면접 때문에 광화문에 나왔다. 신발장에 깨끗하게 보관했다가 면접 때만 신는 구두를 오랜만에 신고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이런 차림으로 도심을 걸으면 갑자기 촌스럽게 도시인이 된 듯하다. 그런 들뜬 기분도 잠시, 광화문까지 왔는데 면접을 얼른 끝내고 근처 카페에서 책을 좀 읽어야겠단 욕구가 간절해졌다. 어젯밤만 해도 안정적인 수입이 목표였던 오늘 면접은 이렇게 한 순간 시내 나올 구실로 전락한다. 커피숍 창가 자리에 앉아 베이글과 커피를 시켜 놓고 창밖을 지나는 사람들, 자동차들, 가로수, 높은 건물과 그 사이의 각진 하늘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다가 ‘도시의 일부가 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또 들고 만다.


많은 이들이 팬데믹 기간에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 ‘코로나 블루’를 얻기도 했다지만 나의 경우 전염병이 돌기 몇 해 전부터 이미 우울증으로 자발적 격리를 시행하고 있었다. 삶은 이미 끝났고 벌 받는 일만 남은 것 같았던 때였다. 나는 매일 성실히 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돌연 등장한 바이러스. 그로 인해 전 세계가 다 같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내 무기력도 함께 멈출 수 있었다. 나에게는 코로나19가 그랬다. 그때 시작한 일 중 하나는 주식투자다. 나도 금융치료의 수혜자라면 수혜자다. 그때는 누구나 들어가면 돈 버는 시장이었다. 프리랜스도 직장생활도 여의찮은데 전업투자를 해야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투자 대가들의 책을 독파하기도 했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특히 감명 깊게 읽었다. 그래서 내가 큰돈을 벌었냐고? 하하하, 그럴 리가. 다만 내 심장이 야수의 것이 아니었구나를 확인했을 뿐. 굳이 비유하자면 내 심장은 가젤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한 돈 공부가 이후 본격적인 자산관리의 계기는 되어 주었다. 수입이라고 해 봐야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정도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관리가 필요했다. 그전부터 나는 내 비정기적 경제활동에서 비롯되는 가계의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일명 예적금 풍차로 돈을 모으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매월 하나씩 새로운 적금에 가입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매월 만기되는 적금이 생긴다. 처음에는 부담 안 될 만큼 소액으로 시작해서 이 사이클을 꾸준히 돌리다 보면 나중에는 만기금으로 스스로 월급을 주는 시스템으로 정착할 수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 돈은 ‘급여’ 같은 것이라서, 수입이 적거나 없는 시점에는 생활비로 사용해야 한다. 자산을 모으는 역할이 아니라 자금을 분산하는 용도인 셈.


워낙 물욕이 없는 데다 꼼꼼한 성격 덕에 가계부라든지 적금풍차 같은 관리는 할 수 있었지만 인생을 통틀어 뚜렷한 경제관념을 가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투자를 하기 전에는 돈에 어떠한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게 그런 나도 변하게 한 걸까. 상관없는 줄 알았던 ‘연금’이나 ‘노후’ 같은 키워드에 반응하게 된 걸 보면. 그래서 한참 주식투자를 관리하며 사용하던 스프레드 시트의 제목을 ‘자산관리’로 바꾸었다. 그때부터는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연금, 예적금, 기타 자산 등등을 모두 기록하여 관리 중이다. 관리라고 하기에 미미한 자산이기는 하나, 이렇게 하고부터는 재정 불안감이 현저히 감소했으므로 나에게는 꽤 필요했던 일인 것 같다.


그때 연금 앱에서 나중에 받게 될 수령액을 모의계산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의 숫자를 본다. 24.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도를 셈해 보니 2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뭐라고? 24년?

그 시간이면, 오늘부터 아무거나 시작해도 충분하잖아?

이제껏 한 게 없어도 앞으로 24년이라면.

아니,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때까지는 더 길게 남았을지도?

끝난 줄 알았던 건 큰 오산이었군.

음,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겠네.

뭘?

뭐가 됐든.

그래, 지금부터 하지 뭐.

안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라고.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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